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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돌아온 〈트윈 픽스〉를 환영하며

새로운 시즌의 여덟 번째 에피소드가 방영된 지금 시점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쿠퍼 요원은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다. 자신이 온전히 기획하고 연출할 수 있는 작품에만 참여했던 데이비드 린치는 이번 시즌 역시 파맛 첵스 같은 미감으로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가장 전위적인 이야기를 고집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연출자가 가장 나이 많은 감독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묘한 신비함을 느끼며 이번 시즌을 챙겨 보고 있다.

  • 허지웅
  • 입력 2017.07.14 12:24
  • 수정 2017.07.14 13:02

우리는 청춘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착취하는가?

"25년 후에 다시 만나요."

로라 팔머가 말했다. 〈트윈 픽스〉를 사랑했던 우리 모두는 그 붉은 방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사춘기는 여전히 그 붉은 방 안에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FBI 요원 데일 쿠퍼는 그대로 붉은 방 안에 갇혔다. 시간이 흘렀다. 정확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밝혀두자면, 빼고 더할 것 없이 25년 11개월 11일 전의 일이다. 쿠퍼는 여전히 붉은 방에 갇혀 있다. 그런 그 앞에 로라 팔머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말했다. "이제 여기서 나가도 돼요." 이제, 데일 쿠퍼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쓸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고 벅차다. 〈트윈 픽스〉의 새로운 시즌이 공개되었다. 1991년 두 번째 시즌이 종영한 이후 정확히 25년 만의 일이다.

1991년에 방영된 시즌2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데일 쿠퍼의 인격은 둘로 나뉘었다. 본래의 쿠퍼 요원은 붉은 방에 갇혔다. 살인마 밥이 빙의된 악한 데일 쿠퍼가 세상 밖으로 나갔다. 잠에서 깨어난 쿠퍼는 이를 닦고 싶다며 화장실에 가서 세면대에 치약을 뿌려댔다. 그러고는 거울에 이마를 박고 피를 흘리며 박장대소했다. 거울에는 쿠퍼가 아닌 살인마 밥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쿠퍼의 비명 같은 웃음은 충격적이었다. 이 마지막 모습은 〈트윈 픽스〉를 사랑하는 모든 시청자의 기억에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

〈환상특급〉과 〈전원일기〉가 만난다면

〈트윈 픽스〉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한국의 1970, 80년대생들에 〈트윈 픽스〉는 대단히 이질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였다. 금발 미녀의 죽음. 이를 둘러싼 미스터리. 단 한회도 빼놓지 않고 펼쳐지는 코드와 복선들. 그리고 악령이 출몰하는 신비주의. 지금이야 〈곡성〉 같은 영화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로컬을 기반으로한 이야기인데 그 중심에 오컬트가 있다는 구성은 당시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환상특급〉에 〈전원일기〉를 더할 수 있다면 그것이 〈트윈 픽스〉였다.

매주 토요일 밤 10시55분이었다. 〈트윈 픽스〉는 1993년 6월 KBS2에서 방영되었다. 당시 논란이 많았다. 이미 세계적으로 신드롬이라 할 만큼 질적 우수성이 확인된 이후였음에도 국내 언론은 "근친상간을 다루어 안방에 부적합하다",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트윈 픽스〉"(〈경향신문〉)라며 경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당 채널의 심야 외화 시리즈 코너를 통해 〈환상특급〉을 이미 맛보았던 젊은 시청자들은 〈트윈 픽스〉에 완벽하게 매료되었다. KBS2의 심야 외화 시리즈는 〈환상특급〉을 소개했고 〈트윈 픽스〉를 거쳐 이후 〈엑스파일〉과 〈제3의 눈〉을 방영했다. 나 같은 이상하고 어긋난 애들은(나는 내가 이상하고 어긋났다는 사실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이 시간대가 길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를 탓하려거든 공영방송을 탓하라!

〈트윈 픽스〉의 신화와도 같은 아름다움을 논하기 위해서는 극장판 〈트윈 픽스: 불이여 나와 함께 걷자〉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기 어렵다. 이 극장판은 당대에 처참할 정도로 무시당했다. 〈트윈 픽스〉는 기록될 만한 시청률을 보이며 승승장구했으나 시즌2 중반에 로라 팔머의 살인범이 리랜드 팔머, 즉 그녀의 아버지임이 드러나면서(물론 리랜드의 자의가 아니라 살인마 밥이 빙의되어 내밀한 욕망이 현실화된 것었으나) 패드립에 짜증을 느낀 시청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어 해당 시즌을 마지막으로 종영됐다.

〈트윈 픽스〉 극장판에 대한 변론

데이비드 린치는 이후 극장판을 만들어 칸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 이 극장판은 엄청나게 폄훼당하면서 묻히다시피 사장되었다. 그러나 극장판 〈트윈 픽스〉는 누가 뭐래도 걸작이다. 나는 당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을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거의 증오한다. 보지도 않고 욕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밉살스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극장판이 데이비드 린치의 가장 훌륭한 영화보다도 앞서 있다는 항변뿐이다. 당신이 〈트윈 픽스〉를 볼 시간이 없어 단지 두 시간밖에 할애할 수 없다면 시즌1도 시즌2도, 25년 만에 시작된 지금의 시즌3도 아닌 극장판을 보라고 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트윈 픽스〉라는 가상의 공간이 얼마나 정확한 세계의 거울인지, 동시에 비틀어진 상식의 투영인지, 그러므로 세상이란 얼마나 상식을 배반하고 있는지, 그곳이 우리 모두가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욕망이 활보하는 악령의 운동장인지, 더불어 우리가 시종일관 청춘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착취해왔는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마지막 문장이 중요하다. "우리가 시종일관 청춘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착취해왔는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트윈 픽스〉는 그것을 말하는 드라마다. 〈트윈 픽스〉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로라 팔머의 시체를 비춘다. 그리고 이후 내내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고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추적한다. 이 이야기에서 로라 팔머는 시종일관 하나의 상징이었다. 어른들의 사정에 유린당하는 젊음의 명징한 상징이었다. 나는 데이비드 린치와 같은 초로의 광인이 이런 종류의 문제의식에 관심을 끊지 않고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끊임없이 감동한다. 우리 인류가 최종 소비자로서 군림하는 세계는 망할 이유가 너무나 많다. 너무나 많았다. 그럼에도 망하지 않는 이유는 저런 종류의 성찰을 놓치지 않는 소수의 기성세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데이비드 린치와 같은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존경하고 존중해야만 한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트윈 픽스〉의 세 번째 시즌은 2016년 4월 14일에 촬영을 끝냈다. 극장판에 이어 데이비드 보위가 필립 제프리스 요원으로 다시 등장할 계획이었다. 시나리오 초고도 그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데이비드 보위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대사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늘 한결같이 재수 없지만 결코 빼놓을 수 없었던 알버트 요원 역할의 미겔 페레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드라마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트윈 픽스〉 세 번째 시즌은 그의 유작이다.

많은 배우와 스탭들이 1991년 〈트윈 픽스〉가 종영한 이후 은퇴하거나 사망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서 아직 생존한 사람들은 은퇴를 번복하고 이 드라마에 합류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데이비드 린치 자신 또한 극장판에 이어 고든 콜 FBI 지역국장으로 다시 등장한다. 〈트윈 픽스〉로 주류 방송에 데뷔해 〈엑스파일〉로 꽃을 피운 멀더 요원(데이비드 듀코브니) 또한 그대로 등장한다. 그는 〈트윈 픽스〉에서 트랜스젠더 FBI 요원을 연기했다. 새로운 시즌에서 그는 여전히 여자다. 그리고 FBI 총괄국장이다.

새로운 시즌의 여덟 번째 에피소드가 방영된 지금 시점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쿠퍼 요원은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다. 자신이 온전히 기획하고 연출할 수 있는 작품에만 참여했던 데이비드 린치는 이번 시즌 역시 파맛 첵스 같은 미감으로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가장 전위적인 이야기를 고집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연출자가 가장 나이 많은 감독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묘한 신비함을 느끼며 이번 시즌을 챙겨 보고 있다. 나는 내 나이 또래가 IMF를 겪으면서 자주 느꼈을, 리셋 버튼을 향한 충동을 자주 느껴왔다. 그러나 지금 〈트윈 픽스〉의 새로운 이야기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힌다. 여태 살아 있어 다행이다. 여러분, 〈트윈 픽스〉가 돌아왔습니다!

* 이 글은 씨네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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