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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하는 뽀통령님께

전 당신이 촌스럽다고 떠들고 다녔어요. 제게 아이가 생겨도 절대 당신을 가까이하지 않을 거라 결심했죠.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세련된 것을 추구하니까요. 안타깝게도 그런 결심은 아이가 두 살이 되자 무너지고 말았어요. 죽은 생선 같은 눈빛으로 징징대는 아이를 달래던 날, 전 당신에게 항복했어요. 당신은 '밤바라 밤바라 바라바라밤' 경쾌한 노래를 부르며 나타나 나를 정복했죠. '너는 우리를 필요로 한다.' 당신은 안경 너머의 까만 눈알을 번득이며 내게 굴욕감과 휴식을 안겨줬어요.

며칠 전 딸과 함께 뽀로로파크에 다녀왔어요. 당신의 분신, '잠실점 뽀통령'을 만난 딸은 환희에 가득 찼죠. 제 딸과 어린 관객들이 기쁨의 괴성을 지르며 당신에게 달려들었지만 당신과 친구들은 침착하게 공연을 이어갔어요. 역시 스타답더군요. 어린아이를 둔 부모라면 모두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당신 모습이 인쇄된 도시락, 칫솔, 가방, 팬티, 장난감.... 좋든 싫든 당신 모습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봐야 하는 부모들은 당신이 가진 권력과 인기를 절절히 실감하죠(제가 존대하는 이유예요). 그리고 우리가 당분간 당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란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광란의 유년기가 끝나기 전까지 우리 부모들은 '또 뽀로로... 더는 견딜 수 없어, 제발 그만!' 한탄하겠죠. 당신의 리듬에 맞춰 아이들과 춤을 추면서요.

솔직히 전 당신을 한번도 좋아한 적이 없어요. 당신이 등장하는 패션을 비웃었죠. 무자식 시절에는 아이들의 패션 테러가 부모 탓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래요. 전 당신이 촌스럽다고 떠들고 다녔어요. 제게 아이가 생겨도 절대 당신을 가까이하지 않을 거라 결심했죠.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세련된 것을 추구하니까요. 안타깝게도 그런 결심은 아이가 두 살이 되자 무너지고 말았어요. 죽은 생선 같은 눈빛으로 징징대는 아이를 달래던 날, 전 당신에게 항복했어요. 당신은 '밤바라 밤바라 바라바라밤' 경쾌한 노래를 부르며 나타나 나를 정복했죠. '너는 우리를 필요로 한다.' 당신은 안경 너머의 까만 눈알을 번득이며 내게 굴욕감과 휴식을 안겨줬어요. 그날 이후, 제 안의 저항군은 무력해졌어요. 끊임없이 웅성거렸으나 반란은 꿈꾸지 못했죠. 딸에게는 뽀통령, 제게는 필요악. 당신은 애증의 대상이 되었어요.

아이가 자라자 상황이 변하긴 하더군요. 문제의 엘사가 혜성처럼 등장했죠.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소피아와 토이 스토리의 캐릭터들도 아이의 관심을 얻었어요. 당신이 독재하던 시절이 끝나고 만 것이에요. 다양성에 따른 심적 여유가 생기자 난 당신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어요. 유익한 교훈이 흐르는 에피소드들을 감상하며 당신의 미덕을 찾으려 애썼어요. 아이와 함께 즐거워하고 싶었으니까요. 진득이 노력한 끝에 발견한 당신의 매력은 뜻밖에도 음악이었어요. 나는 당신 앨범에 수록된 '새근새근 코'를 제일 좋아해요. 아이가 잠들 때 듣던 음악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감미롭고 착한 멜로디는 아이와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내 입안을 감돌아요. 뽀로로파크에 도착해 전투적으로 내달리는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그 노래를 불렀어요. '뽀로로 낮잠 파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죠.

언젠가 당신의 '한없이 선명한 블루'를 그리워하게 될 날도 올 것이라 믿어요. 터질 듯 뛰던 딸의 작은 심장과 당신의 춤사위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겠죠. 그때까지 제 딸을 잘 부탁해요. 저와 달리 그녀는 당신을 무척 사랑한답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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