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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동자의 산재보상을 가로막기 위하여 기업과 국가가 벌인 짝짜꿍

사업주는 노동자의 산재보상에 조력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삼성이 하는 짓은 어떤가요. 1심 판결이 유해물질의 노출 가능성을 인정하며 산재를 승인하자, 삼성은 그 노출을 부인하기 위한 반대 증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산재보상에 조력하기는커녕 그 보상을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꼴이죠.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공단은 삼성이 그러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줍니다.

  • 임자운
  • 입력 2017.07.13 11:07
  • 수정 2017.07.13 11:14

1.

이번엔 '난소암'입니다.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난소암도 산업재해가 맞습니다. 지난해 1월 받아낸 1심 승소 판결이 2심에서도 유지되었습니다.

이 사건 1심 판결이 꽤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많은 언론이 보도를 했고, 저는 이 판결로 서울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UN 화학물질 특별보고관 방한 보고서에도 (좋은 사례로) 언급되더군요.

그래도 불안하긴 했습니다. 좋은 판결이 아무렇지 않게 뒤집히는 경우를 많이 봤으니까요, 특히 노동사건에서. 항소심이 시작되자마자 피고 측이 마치 중요한 자료가 나올 것처럼 얘길 하기도 했구요(막상 열어 보니 역대급 엉터리 자료였지만요. 이 얘기는 뒤에 자세히..). 생각보다 항소심이 길어진 탓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항소는 기각되었고, 판결문의 내용도 아주 좋습니다.

5월 서울고법에서 나온 삼성반도체 '다발성경화증' 판결에서 처음으로 '희귀질환'에 대한 완화된 산재인정 기준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요컨대 희귀질환은 연구 자체가 어려워 발병원인도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렇다고 만연히 업무관련성을 부인해선 안 되고, 산재보험제도의 취지, 사회형평의 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그래서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거론된 발병요인들이 정상적인 업무상황에서 존재했고, 발병 시기도 업무와 밀접하며, 업무 외의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인과관계가 추단된다는, 꽤 획기적인 판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난소암 고법(다른 재판부) 판결문에 이 판시가 거의 그대로 다시 등장하더군요. 이대로 굳어지면 좋겠습니다.

또한, 산보연 역학조사의 문제점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했고, 유해인자 복합노출에 따른 상가작용(여러 유해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면 유해성이 상승한다는)을 주요하게 언급했으며, 소송에서 받아낸 삼성 보상절차 자료(난소암 접수 10건)를 산재 인정 근거의 하나로 받아들인 점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아가 이 문장,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하여는 증명책임에 있어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를 불리하게 취급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금까지 반올림 사건 1심 판결에서나 간간이 등장하던 이 멋진 문장이 고법 판결에 처음 등장한 것이 개인적으로는 제일 기뻤습니다.

2.

이 사건에서는 특히 근로복지공단 측 재해조사(산보연 역학조사)에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산보연은 망인의 업무환경을 조사한답시고 사업장에 가서는 자체적인 분석이나 노출평가 없이 삼성이 전달하는 자료만 들여다 보았습니다. 재해자 측이 주장하는 유해요인들은 별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배제해 버렸구요. 특히 어이없는 부분은 '작업환경측정 결과'였습니다. 삼성은 망인이 담당했던 공정에서 측정 대상 물질이 쓰이지 않았다며 아무런 측정 결과를 내놓지 않았는데, 망인이 취급한 화학제품의 성분 물질 중에는 산안법상 측정 대상 물질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보연은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았고 추가 조사도 벌이지 않았습니다.

압권은 망인이 취급한 '접착제'를 특정하는 문제였는데, 가장 유해한 물질로 꼽혔던 '접착제'에 대해 망인의 동료와 삼성 측 진술이 엇갈렸습니다. 동료들은 A, B를 썼다고 했지만, 삼성은 C를 주장한 거죠. 근데 산보연은 역시 별 근거도 없이 삼성 측 주장만 받아들였습니다. 소송에서 밝혀진 진실은? 망인이 취급한 제품은 A, B였다는 것이고. C는 정체 불명의(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제품으로 밝혀졌습니다.

1심 판결문에서부터 이러저러한 문제점들이 꽤 구체적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산재소송 판결문에 산보연 역학조사의 문제점이 상세히 기재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죠.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항소를 했고, 그래서 나온 2심 판결은 그 문제점들을 더 구체적으로 기재하였습니다. 주심 판사가 작정하고 썼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근로복지공단도 이제는 승복하리라 믿습니다. 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은 설마 하지 않겠죠.

3.

이 사건에서 삼성전자의 활약도 대단했습니다.

항소심이 시작되자마자 피고(근로복지공단) 측이 그러더군요. 망인의 업무환경에 관해서 삼성전자가 조사한 내용이 있을지 모르니, 사실조회 해 보자고. 저는 황당했죠. 그런 자료가 있었으면 산보연 역학조사 때 이미 나왔어야 하고, 1심 소송 과정에서도 삼성은 관련 자료 다 폐기했다거나 영업비밀이라며 제출하지 않았는데, 이제서 또 뭘 물어보냐고. 그러자 피고 측 하는 말이, 최근에 새로 조사 했을 수 있다고. 그제서야 알았죠. 이들이 또 짝짜꿍을 하는구나...

아니나 다를까, 피고가 사실조회 신청한 지 한 달 만에 삼성전자가 무슨 조사결과라는 걸 제출하더군요. 1심 판결문에 기재된 유해물질들이 망인의 업무 환경에서 실제 노출되는지 조사해 봤더니, 아니더라는. 누가 봐도 1심 판결 뒤집기에 철저히 타겟팅된 조사 결과였습니다.

사업주는 노동자의 산재보상에 조력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삼성이 하는 짓은 어떤가요. 1심 판결이 어떤 유해물질의 노출 가능성을 인정하며 산재를 승인하자, 삼성은 그 노출을 부인하기 위한 반대 증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산재보상에 조력하기는 커녕 그 보상을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꼴이죠.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공단은 삼성이 그러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줍니다(만일 공단이 사실조회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삼성이 해당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이미 삼성은 산재소송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대대적인 선언까지 했으니까요.).

앞서 얘기했듯, 이 사건은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조사부터 엉망이었습니다. 1심 판결이 지적한 그 유해물질들은 망인의 유족 측이 산재신청할 때부터 강조했던 것들인데, 산보연은 그 부분을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았죠. 그래놓고 심지어 해당 물질의 노출가능성을 긍정한 판결이 나오자, 그걸 다시 부인하는 자료를 회사로부터 받아내겠다는 겁니다.

한 노동자의 산재보상을 가로막기 위하여 기업과 국가가 벌이는 짝짜꿍이 이토록 졸렬합니다.

4.

하지만 삼성의 이 조사 결과는 2심 판결문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조사 내용이 형편없이 부실했기 때문이죠.

망인이 근무했던 공정은 현재 모두 폐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공정 방식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삼성은 그 공정과 유사한 업무환경을 놓고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느냐, 망인이 취급했던 화학제품과 유사한 제품(A, B)을 특정하여 그 제품의 성분을 분석하고, 현재 그 제품이 사용되고 있는 공정에서 유해물질 노출 실태를 평가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A, B가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더라는 거죠. 제품명은커녕, 성분, 제조사 등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원고 측으로서는 그 A, B라는 제품이 실재하는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는 겁니다.

또한 반도체 공정은 어느 산업보다 생산기술의 변화가 빠릅니다. 특히 삼성은 '황의 법칙'(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이란 것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틈만 나면 세계 반도체 생산기술을 선도하고 있다고 자평하죠. 그토록 대단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망인이 퇴사한 때는 1999년 6월이고, 이 조사가 시행된 때는 2016년 3월입니다. 무려 17년이 지난 시점에 망인의 업무환경과 유사한 공간이 공장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면 이제까지 숱한 소송에서 삼성이 "과거의 업무 환경은 알 수 없다", "관련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해 왔던 것은 다 거짓인가요?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그 A, B 제품의 성분분석을 '한국SGS'라는 외부 전문기관에 맡겼다고 했습니다. 나름의 공정성을 기한 것인데, '한국SGS'는 어떤 곳일까요? 지난해 떠들썩했던 '갤럭시 노트 7 폭발사태' 때 이름을 널리 알린 회사입니다. 당시 삼성은 노트 7 출시 후 한 달도 안돼 폭발이 발생하자 배터리 결함을 인정하고 전량 교환을 실시하였는데, 교환된 새 노트 7에서도 폭발이 또 발생하자, 그때는 외부 기관의 조사 결과를 앞세워 판매를 강행합니다. 그 외부 기관이 '한국SGS'였고, 조사 두 시간 만에 "배터리 결함이 아닌 외부 압력에 의한 발화"라고 발표하여 공정성 시비가 있었죠. 어쨌거나 그 후에도 폭발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삼성은 뒤늦게 판매 중단을 선언했으며, 올해 초 배터리 결함이 맞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당연히 '한국SGS'에게도 책임론이 불거졌고, 어느 언론 기사에 따르면 '한국SGS 기흥시험소'라는 곳은 삼성전자 사내 개발팀이 분사해서 만든 회사라고 하더군요.

저는 삼성이 1심 판결을 뒤집어 보겠다며 이 정도 수준의 조사 결과를 내놓는 걸 보고, 이 자들이 법원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최근 다른 산재 소송에서도 삼성이 비슷한 수준의 뻘짓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른 글로 엮어 보려 합니다.

5.

고 이은주 씨는 만 17세이던 1993년 4월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하여 6년 2개월간 근무한 후, 건강 이상으로 퇴사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 난소 종양 진단을 받았고, 12년간의 투병 끝에 결국 2012년 1월 난소암 전이에 따른 직장 출혈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나이 36세.

고인의 아버지는 80이 다 된 연세에 막내 딸을 보냈습니다. 산재신청을 하며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그때 아버지께서 목을 놓고 오열을 하셔서 다른 참가자들이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합니다. 고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은주 씨 사망 후, 속세와 연을 끊겠다며 산속으로 칩거하셨고, 아직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살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사건 1심 판결이 나오기 직전, 삼성 보상위원회 담당자라는 사람이 갑자기 아버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합의를 권했다고 합니다. 삼성이 교섭 약속을 파기하며 강행했던 그 보상절차에 들어오라는 것이었고, 삼성이 사과와 보상의 내용을 모두 일방적으로 정해서 통보하는 식의 합의를 그저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소식을 들은 고인의 오빠가 "어떻게 아버지 핸드폰 번호를 알았냐"며 따졌지만, 삼성 측은 답을 하지 않은 채 그저 합의만 종용했다고 합니다. 유족들은 현재까지 삼성과의 합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지난해 3월, 고인의 아버지, 어머니께서 반올림 농성장에 오셔서 유미 씨 아버님과 함께 피켓 시위를 하던 모습입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딸을 잃은 분들이 나란히 영정사진을 안고 삼성 건물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사진 속 은주 씨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 봅니다. 유미 씨와 은주 씨의 죽음이 삼성반도체 공장의 업무환경에 기인하였다는 것은 법적으로 분명해 졌습니다. 하지만 이날도 삼성은 유족들 뒤로 펜스를 쳤습니다. 알면 알수록 참 나.쁜. 삼성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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