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어느 한국 대학생이 디자인한 개발도상국 아이들을 위한 ‘책상'(인터뷰)

  • 강병진
  • 입력 2017.07.12 09:46
  • 수정 2017.07.19 13:24

공부하는 학생에게 책상은 대부분의 하루를 보내는 업무공간이다. 책상에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게임도 하고, 원하는 것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아직 자기만의 책상을 갖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

홍익대학교 프로덕트 디자인 4학년 생인 이하영씨는 바로 그런 아이들을 위한 책상을 만들었다.

이 책상의 이름은 ‘레터 데스크’(Letter Desk)다. ‘레터 데스크’는 최근 미국 ‘매셔블’과‘디자인 택시’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놀라운 디자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레터 데스크’에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접으면 종이 가방 모양이 된다. 그리고 펴서 4단계의 조립을 거치면 책상이 된다. 카드보드 재질로 만든 거라 가볍고, 비용이 저렴하며 재활용도 가능하다고 한다. 책상 면에 한국의 ‘우체국’ 마크가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하영씨는 ‘behance’에 이 책상을 공개하며 “인도를 여행하던 동안 길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숙제하는 아이들”을 본 후 레터 데스크를 디자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때 그는 어떤 모습의 아이들을 본 걸까? 허프포스트코리아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이용해 그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아래는 그 인터뷰 내용이다.

- 현재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 홍익대학교 프로덕트디자인 전공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 인도를 여행하던 당시 어떤 아이들을 만났던 건가요?

= 인도에서 정말 많은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갱단에 끌려다니며 구걸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갱단은 그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혀 더 불쌍하게 보이도록 만든다고도 하더군요. 부잣집 아이들도 많이 봤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전통시장을 갔는데, 그때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시장에 소떼들이 있었는데, 그 중 발정난 숫소가 암소에 올라타려고 한 거예요. 놀란 암소가 사람들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그랬는지, 제가 있는 쪽으로 막 달려오더군요. 저도 무작정 뛰다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골목을 헤매고 있었는데,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을 보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교복을 입은 채로 더러운 흙바닥과 계단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습니다. 학교 숙제를 하고 있던 거였습니다.

아이들은 하얀색 교복이 더러워졌는데도 신경을 안쓰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길을 헤매고 있던 때라 정신없이 그곳을 벗어났는데 그때 본 광경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렇게 책상도 없는 아이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나는 왜 그동안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불만을 가졌을까, 하고요. 그때는 제가 2학년이었습니다. 이제 막 디자이너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어떤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을 때 였죠. 그때부터 저는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후 전공 수업에서 이 인도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편집자 주 : "‘유니버설 디자인’은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에도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뜻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범용(汎用) 디자인'이라고도 불린다."- 네이버 두산백과)

- 레터 데스크를 디자인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건 무엇입니까?

= 저는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온 컨셉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였어요. 그래서 이 책상을 접었을 때의 형태를 ‘편지’처럼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고, 버리기 쉽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튼튼해야 했죠. 자동차 부품을 포장할 때 쓰는 하드 골판지를 소재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 이 책상의 내구성은 어느 정도인가요?

= 성인 한 명이 밟고 올라서도 끄떡없을 정도의 내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 레터 데스크를 써본 사람이 있나요?

= 전공 프로젝트로 진행한 거라, 최종 프리젠테이션을 거쳤고 심사도 받았습니다. 반응은 모두 좋은 편이었습니다.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면 좋을 것 같아서 이후 도면과 지게구조를 모두 온라인에 공개한 것입니다. 혹시 이 책상이 정말 필요한 사람이거나, 저에게는 없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려고 했습니다.

- 왜 우체국 마크가 붙어있는지 궁금합니다.

: 우체국 마크도 편지를 쓴다는 컨셉의 일환으로 들어간 디테일입니다. 인도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의미였습니다. 사실 저 디자인을 한지 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보면 손을 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 이 데스크를 실제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쓸 수 있게 하려면 이후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요?

= 일단 디자인 최적화가 이루어져야 할 겁니다. 저는 사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으면, 휴학을 하지 않는 이상 어떤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만큼 여유롭지는 못하니까요. 이 프로젝트가 몇몇 매체에 소개되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에도 필요한 디자인’이라며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만약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서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되거나, 후원기업이 나타난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인도 및 중국, 동남아 등에서 책상없이 공부를 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상을 보내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책상 #교육 #개발도상국 #미담 #청년 #이하영 #레터 데스크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뉴스 #보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