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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빈 죽이기, 코빈의 복수

코빈은 자신의 실제 모습을 숨기거나 사회주의 신념을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담대했고 집요했으며 구호는 단순했다. "중도사민주의는 끝났다. 체제를 변혁하기보다는 관리하려 했기 때문이다." 노동당 선거강령에 담긴 정책들(대학등록금폐지, 보편적 무상급식, 철도와 우편 등 재국유화, 부자 증세, 최저임금인상 등)은 진지했고, '나토탈퇴와 일방적 핵비무장'의 포기를 공약함으로써 상대진영의 안보장사를 선제할 정도로 실용적이었다. 이런 약속들은 마르크스주의보다 케인스주의에 훨씬 친밀했으니, 코빈을 위험한 극좌라며 법석을 떨었던 일도 실은 영국사회가 얼마나 깊게 신자유주의에 침윤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 고세훈
  • 입력 2017.07.11 06:42
  • 수정 2017.07.11 06:43
ⓒStringer . / Reuters

유럽 중도좌파정당들이 일제히 쇠락의 길에 들어선 시점에 영국노동당의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 1949~ ) 당수가 진보정치의 새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68세의 코빈은 1983년 총선을 통해 하원에 발을 들인 이래 34년 동안 런던 이즐링턴 노스에서 내리 9선을 했다. 그는 처음 집권당 의원이 됐던 1997년 이후에만 530여 차례 당론을 거역했던 '상습적 반란자'였다. 만년 평의원(backbencher) 신분을 스스로 고집했거니와, '거룩한 바보'가 따로 없는 셈이다. 그가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은 오히려 거리,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보통사람들 틈에서였다.

코빈이 2015년 노동당의 총선패배 직후 전격 당수자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지도부구성에 관한 권력이 원내에서 당원과 활동가 중심의 원외로 급작스럽게 이전한 덕분이다. 그 전해에 노동당은 당수선출방식을 의원들이 1/3 권한을 행사했던 선거인단제도에서 일인일표제로 바꿨고, 비당원도 3파운드(지금은 25파운드)만 내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코빈이 당권경쟁에 나서자 지지자들이 조직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당원 수십만 명이 늘었고 당 밖에서 수만 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두 차례, 코빈은 압도적으로 당수에 선출되었다.

코빈 죽이기, 코빈의 복수

영국정치에서 동료의원들로부터 그처럼 적게, 당원들로부터 그리도 많게 지지받았던 당수는 없었다. 의원 80% 이상이 등을 돌렸고 예비내각 각료들의 사임이 줄을 이었다. 진보언론인들은 하나둘 지지를 철회했고, 주류언론의 일상적 폄하와 조롱 가운데 여론조사에선 거의 모든 연령층, 계층, 지역에서 보수당이 앞서는 상황이 지속됐다. 보궐선거 패배가 잇따랐으며 노동당이 영원한 야당으로 추락하리라는 전망이 무성했다. 이 모두가 '설익은 사회주의자, 가장 무책임한 당 파괴자', 코빈 탓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탈진해서 소멸해 주길 원했다.

과반의석 불과 5석으로 힘겨워하던 메이 총리가 서둘러 조기총선을 발표한 것이 이 상황에서다. 두 당의 지지율 격차 21%는 1983년 이래 최대였다. 메이는 EU와의 협상에서 '강한 브렉시트'(관세동맹과 단일시장 모두 탈퇴)의 성공적 관철을 위한 보다 확실한 '위임'을 원했다. 선거압승이 필요했고 이참에 노동당은 궤멸돼야 했다. 우익언론의 성원 속에 메이의 인기는 치솟았고 보수당은 유례없이 단결했다. 코빈 '에피소드'는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코빈은 자신의 실제 모습을 숨기거나 사회주의 신념을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담대했고 집요했으며 구호는 단순했다. "중도사민주의는 끝났다. 체제를 변혁하기보다는 관리하려 했기 때문이다." 노동당 선거강령에 담긴 정책들(대학등록금폐지, 보편적 무상급식, 철도와 우편 등 재국유화, 부자 증세, 최저임금인상 등)은 진지했고, '나토탈퇴와 일방적 핵비무장'의 포기를 공약함으로써 상대진영의 안보장사를 선제할 정도로 실용적이었다. 이런 약속들은 마르크스주의보다 케인스주의에 훨씬 친밀했으니, 코빈을 위험한 극좌라며 법석을 떨었던 일도 실은 영국사회가 얼마나 깊게 신자유주의에 침윤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청년들이 투표소로 몰리면서 투표율이 급등했다. 그리고 선거결과에 모두가 경악했다. 노동당은 30석을 늘려 2005년 이후 가장 많은 262석을 얻었고, 10% 증가한 득표율 40%는 2001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 13석을 잃고 과반마저 상실한 보수당은 군소정당인 북아일랜드 DUP(민주통합당)의 양해 하에, 아슬아슬하게 정권을 꾸려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요컨대 선거는 패했지만 코빈은 승리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청년들은 투표를 꺼리고 정책유세는 별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는, 영국정치에 대한 전통적 가정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진보언론이 돌아왔고, 동료의원들이 모여들었으며, 코빈은 차기총리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강한 야당, 강한 민주주의

코빈은 영국 사회주의를 회생시켰는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사회주의가 침체의 늪에 빠진 영국노동당과 영국 민주주의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강한 야당이 없으면 어떤 정부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 정치가·작가)의 경고다. 대처 정부는 대처 혁명의 상승세 속에서 인두세를 밀어붙이다 좌절했고, 잇단 선거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라크침공을 감행했던 블레어 정부는 재앙을 맞았으며, 노동당을 항구적 불구로 만들려는 메이의 시도는 코빈과 그 지지자들의 역풍을 맞았다. 모두 여론의 흐름을 과신한 오만이 빚은 참사였다.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 정권은 종종 스스로 최악의 적이 된다. 뭉텅뭉텅 다가온 여론은 또 그렇게 달아나는 법이다. 야당이 빈사상태면 억지로라도 일으키고 살려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도 산다. 사안의 경중에 민감하되 100%를 모두 취하려는 짓은 어리석다. 작금의 한국정치가 걱정되는 지점이다. 케인스의 말을 빌리면, 번영은 언제나 누적적으로 온다.

* 이 글은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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