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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두고 '부자증세'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부는 조세저항을 우려해 세율을 올리지 않고 세율구간을 조정하는 증세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선 때 문 후보가 내건 공약, 즉 최고소득세율을 42%로 올리겠다는 공약으로부터도 후퇴하게 된 셈입니다. 나는 최고세율 적용구간을 5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내리는 미봉책보다는 아예 아주 높은 소득에 대해 지금보다 더 높은 최고소득세율을 신설하는 정공법을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과세표준 10억 이상이라는 새로운 구간을 설정하고 여기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50% 정도로 높이는 방안 말입니다. 일년에 가만히 앉아 몇 백억원씩 버는 재벌이나 부동산 부자들에게 50%의 세율이 부당하게 높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이준구
  • 입력 2017.07.11 06:23
  • 수정 2017.07.11 06:24
ⓒjxfzsy via Getty Images

새 정부가 부자증세를 실천에 옮길 거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그 대표적 예가 40%의 최고소득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을 5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내린다는 거랍니다.

그러니까 과세표준이 연 3억원에서 5억원에 이르는 구간의 소득이 현재보다 2% 포인트 더 높은 세율의 적용을 받는다는 게 부자증세의 핵심 내용이라는 뜻이지요.

이달 내놓은 세법 개정안에 이를 반영하겠다는 것인데, 이걸 두고 '부자증세'라고 부르기엔 조금 부족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과세표준이 3억원을 넘는 종합소득자는 4만 5천 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 자료에 기초해 그와 같은 변화로 인한 세수증대 예상액을 계산해 보면 그 금액이 매우 작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수증대 예상액을 계산할 때 그 4만 5천 명 중 과세표준이 3억원에서 5억원 사이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정확한 계산이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만 5천 명 모두의 과세표준이 5억원이 넘는다고 가정해 세수증대 예상액의 최대치를 구해 보겠습니다.

매우 극단적인 가정이기는 하나 세수증대 예상액의 최대치를 구한다는 점을 감안하고 생각해 보면 큰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과세표준 3억원에서 5억원 사이의 세율이 2% 포인트 올라간다는 뜻이니까 납세자 1인당의 소득세 추가부담액은 4백만원이 됩니다.

그 구간의 소득 2억원에 2%를 뜻하는 0.02를 곱하면 바로 그 추가부담액이 계산되어 나오니까요.

이 1인당 추가부담액에 4만 5천을 곱하면 최상위소득계층이 추가로 부담하는 소득세의 총액이 계산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계산된 최상위 소득계층의 추가부담 총액의 최대치는 고작 1,800억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2016년도 소득세 총수입이 70조원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비율로 따진 증세폭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걸 두고 '부자증세'라고 부르는 게 민망하다는 느낌입니다.

정부는 조세저항을 우려해 세율을 올리지 않고 세율구간을 조정하는 증세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선 때 문 후보가 내건 공약, 즉 최고소득세율을 42%로 올리겠다는 공약으로부터도 후퇴하게 된 셈입니다.

지금 언론이 예상하고 있는 세법 개정안은 그저 부자증세 흉내만 낸 것일 뿐, 공평한 조세부담이나 세수 증대 어느 잣대로든 만족스럽지 못한 조세개혁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최고세율 적용구간을 5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내리는 미봉책보다는 아예 아주 높은 소득에 대해 지금보다 더 높은 최고소득세율을 신설하는 정공법을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과세표준 10억 이상이라는 새로운 구간을 설정하고 여기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50% 정도로 높이는 방안 말입니다.

일년에 가만히 앉아 몇 백억원씩 버는 재벌이나 부동산 부자들에게 50%의 세율이 부당하게 높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세계 여러 나라들의 최고소득세율이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내려온 것은 사실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전 세계를 휘몰아치면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소득세율을 낮춰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50%의 최고소득세율이 약간 낯설게 느껴질 것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황당무계하게 높은 세율은 절대로 아닙니다.

미국만 보더라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최고소득세율이 90%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뒤 약간씩 내려 레이건(R. Reagan)이 등장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70%의 수준에 유지되었습니다.

레이건이 두 번에 걸친 조세개혁을 통해 28%로 낮추었고, 그 뒤 다시 상향조정되어 지금의 39.6%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를 보면 소득세가 부과된 긴 역사 전반의 관점에서 보면 50%라는 최고세율이 결코 예외적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들 중에 최고소득세율을 큰 폭으로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얼마 전 작고한 영국의 대표적 경제학자 앳킨슨(A. Atkinson)을 위시해 현재 최고수준의 경제학자로 추앙받고 있는 사에즈(E. Saez), 피케티(T. Piketty) 등이 모두 최고소득세율을 50% 내지 60% 수준으로 올릴 것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스티글리츠(J. Stiglitz)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구요.

이 경제학자들은 이 수준의 최고소득세율이 경제적 효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바람직한 세금부담의 분배를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신주유주의자들은 소득세율을 조금이라도 올리면 경제가 크게 망가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이들의 냉철한 이론적 분석은 그와 같은 주장에 하등의 근거도 없음을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가 늘 주장하듯, 이제는 신자유주의의 신기루를 집어내던질 때가 왔습니다.

지금 내가 제의하고 있듯 연소득이 10억원이 넘는 구간에 대해 50%의 세율을 적용한다 해서 고소득자의 경제적 활동에 무슨 변화가 오겠습니까?

그들이 덜 열심히 일할 것이고 그 결과 경제가 침체될 것이라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즐겨 부르짖는 헛된 구호일 뿐입니다.

증세가 정부에 부담이 된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새 정부도 약속한 것을 실천에 옮기려면 상당한 증세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조세 저항을 피하기 위해 지금과 같는 미봉책으로 일관한다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든가 나라 살림을 빚더미 위에 올려 놓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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