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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다

탁현민씨는 계속 청와대에서 근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든 말든 저의 관심은 한 개인으로서의 탁현민씨가 아닙니다. 탁현민씨가 몇 권에 걸친 책에서 쏟아냈던 "더러운 말"들은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지난 10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깨닫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가 범죄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그런 말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며, 변화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 여기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양보 없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없어져야 할 것은 성차별주의이지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BeholdingEye via Getty Images

*이 글은 2017년 함께서울정책박람회 〈서울, 민주주의를 배우다〉 민주주의 특강의 강의원고입니다. 페이스북에 공유한 원고를 허프포스트의 요청으로 다시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저는 페미니즘과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러 나왔습니다. 먼저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슬로건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이 티셔츠는 아주 질이 좋고 잘 만들어졌고 색깔도 아주 예쁜데요. 사실 저는 이 슬로건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완성 혹은 완벽하고는 거리가 먼 사상이거든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배우인 윤여정씨가 언젠가 토크쇼에서 나와서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특유의 쿨하면서도 다정한 말투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인간은 너무 다양해. 그래서 민주주의가 어려운 거야~" 윤여정씨는 다른 인터뷰에서도 종종 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담으시는데요. "대화하는 상대가 겸손하면 저도 겸손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대해요. 예를 들면 인터뷰라고 하면, 어린 기자가 나에 대해 공부고 안하고 와서 어이없는 질문을 하면 나는 화를 낼 권리가 있어요. 나는 인터뷰에 열심히 임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민주주의 국가인데 할 말 못하고 살면 어떡해"라는 말을 하신 적도 있죠. 화낼 권리가 있다는 말과 할 말을 하는 게 민주주의라는 말을 마음에 새겼었어요.

윤여정씨는 인터뷰마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하세요. 저는 민주주의라는 말을 거창하거나 엄숙하지 않게 생활용어로 이렇게 정확하고도 명징하게 사용하는 윤여정씨의 태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이거야말로 민주주의의 정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2017년 5월의 대선 개표방송 JTBC에 나온다고 해서 많이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윤여정씨는 별다른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광장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축제"였으면 좋겠어요. 라고 대답한 것이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윤여정씨는 광장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신 거라는 걸요.

이해와 공감이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니라 바로 이 차이와 갈등을 대하는 태도가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닐까요.

한편 윤여정씨와 함께 나왔던 유시민씨는 촛불이 만들어낸 광장의 "현재"에 대단히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지난 겨울,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딱 하나 대통령 탄핵만 갖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온갖 살아가면서 당하는 억울한 일, 고통스러운 일을 얘기했다"며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부당한 차별, 억압을 다들 털어놨다. 서로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저도 광장에서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선결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건 갈등이 제대로 드러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해와 공감이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니라 바로 이 차이와 갈등을 대하는 태도가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닐까요. 저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핵심은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 차이 그 자체가 아니라 의견 차이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는 의견 차이를 지워버리고, 진보는 의견 차이를 존중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과정을 만들죠. 하지만 성차별과 성평등 문제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별 차이가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남자는 원래 그래"라거나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거나 "사소한 문제에 집착한다"는 식으로 의견 차이를 지워버리곤 합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광장 이후 대선 과정에서는 어떤 목소리와 존재가 지워졌습니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는 정말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던 것을 저는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광장에는 없었지만 지금 일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팻말을 들었던 알바노조원들의 행동도 기억하고, 그 중 한 명이 연단에 올라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현실을 이야기하던 것도 기억에 남고, 성소수자 여러분을 부르는 사회자의 목소리도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그저 행복하게 공존했던 것은 아닙니다. 유례없는 비폭력 평화시위였다는 세계적인 찬사가 있었지만, 여성혐오 논란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엉덩이 만지고 튀고 가슴 만지고 도망가는 등의 직접적인 길거리 성추행과 괴롭힘도 있었고,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을 '은유'로 사용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여성성을 조롱하는 팻말을 든 촛불시위참가자들은 자신의 말이 박근혜가 아니라 광장에 나온 다른 여성들을 모욕한다는 것을 (문제제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광장의 목소리는 다양했지만 평등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공감하기보다는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내는 긴장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DJ.DOC는 가사가 여성혐오적이라는 문제제기를 받아 무대에 오르는 것이 미뤄졌고, 결국 논란이 된 가사를 개사한 끝에 그 다음 주에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광장에서 우리는 실제로 차이를 경험했고, 봉합하지 않고 갈등이 드러났으며, 그로 인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모습까지도 목격했습니다.

페미니스트인 저에게 지난 겨울의 촛불시위와 광장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억눌려졌던 목소리가 나오고, 그 목소리들이 갈등하고 반목하지만 다시 그 다음 주에 다시 광장에서 만나는 그런 경험 말이죠. 저는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힘있는 정치적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그런 불완전한 상태를 견뎌내는 능력치가 커지는 것 말이죠. 이것이 소위 말하는 시민들의 성숙이고, 일방적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조심하고 서로를 한 명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불완전함이 지속가능한 것", 저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권자"이고, "약하고 불완전하고 못나고 가난한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을 맘껏 불편하게 만드는 것, 그런 게 민주주의잖아요. 윤여정씨의 말씀대로,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소중한 것이죠. 그러니까 저는 저 슬로건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시킨다"는 말은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좌파' 남성들은 항상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어하거나 보호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촛불이 꺼지고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면서 이토록 다양했던 광장의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주권자는 사라지고 유권자가 남았습니다. 정치가 아니라 전략이 앞자리를 차지했고, 표계산이 남았습니다.

꽤 익숙한 풍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광장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목소리들, 이런 장면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3.1운동을 시작으로 광장에는 항상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추모하고 기억하자고 다짐하자던 2002년의 촛불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노무현 탄핵을 반대하는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여성은 분명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이명박 정부 내내 가장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집단은 20대와 30대의 여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정부시위를 주도했습니다. 독재정권타도가 아니라, 밥상의 문제가 정치의 장에 들어왔습니다. 광장에서는 식량주권과 생활 정치의 목소리가 퍼졌습니다. 누군가의 급식에, 더 취약한 사람들의 밥에, 학생들과 군인들의 급식에, 광우병 감염위험이 있는 연령대의 소고기가 배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시민들을 움직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2008년의 촛불시위를 주도한 것은 누가 뭐래도 여성들이었고, 고등학생들이었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위 '좌파' 남성들은 항상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어하거나 보호하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들의 팬클럽쯤으로 생각하고 각성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했지 동등한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터지도록 정봉주 나와라!를 외친 여성의 생물학적 가슴의 완성도를 운운하며 여성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굳이 다시 한번 성적 표현으로 지정하며 외모평가를 해댔고, 자신들의 계몽에 의해 여성들이 처음으로 정치적 주체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설쳐댔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늘 정치적으로 참여해 왔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여성의 역사를 싸그리 무시하면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여기는 수많은 남성우월론자들은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의 주역을 자처하면서, 여성의 목소리와 존재를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자리로 이동시켰습니다.

당시 촛불시위의 주역이었던 삼국카페의 운영진들이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라며 공동성명을 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2008년의 광장은 다시 쫄지마 시바!를 외치고, 강남좌파라는 이름으로 부유함을 과시하며, 진보집권플랜을 출판하고, 전통적 386 운동권 출신들의 엄숙하고 권위적인 얼굴을 대중정치의 문법에 맞게 변형시키는 "빅픽쳐"가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나는 꼼수다 - 386 운동권 정치 세력 - 노무현/문재인 지지자들의 연합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종종 그렇게 말하기도 했구요. 청취자 여러분, 시민 여러분으로만 호명된 여성들은 다시 정치의 장에서 주변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다른 곳에서 꽃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광우병 촛불시위의 문제의식은 다른 무엇보다도 식량주권과 생활정치에 있었고, 촛불소녀와 유모차부대, 배운 여자들은 분명히 광장의 주역이었습니다. 2008년 쏘아올린 광우병 촛불시위의 문제의식은 무상급식과 보편복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은 교육부총리가 된 김상곤 장관은 2009년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내세워 당선됩니다. 2011년 전 서울시장 오세훈씨는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시장 직을 그만두게 되고,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살림을 맡게 됩니다. 2012년의 대선에서는 청소노동자 출신의 김순자 후보,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 금속노조 기륭분회 출신의 노동자 대표 김소연 후보 등이 출마하는 등 여성 대선후보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았습니다. 여자가 아니라 아버지를 대리하러 나온 후보, 지금은 503호에 계신 그분을 포함, 역대 어느 대통령 선거보다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었던 선거였습니다.

촛불시민들의 광장민주주의가 어째서 룸싸롱 연대로 바꿔치기된 겁니까.

하지만 선거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참혹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치러야할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세월호-강남역-구의역 세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일-가족 양립은 커녕 일도 없고 가족을 꾸릴 가능성도 없으며, 여자라서 살해당하고, 비정규직 청년으로 삶을 갈아 넣으면서 오늘만 겨우 살아가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번의 큰 경제위기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1997년 구제금융위기였고, 또 한번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였습니다. 이 두 번의 경제 위기에 가장 많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1997년에는 15세에서 19세 사이의 여자청소년들이었고, 2008년에는 같은 나이의 남자청소년들입니다. 경제위기의 가장 큰 충격은 가장 취약한 집단이 감당했습니다. 20대 여자들의 자살율은 2008년 이후 남자보다 높습니다. 유례가 없는 일이죠. (이 부분은 배은경 선생님의 다음 논문 참조, 배은경, '경제위기'와 한국여성-여성의 생애전망과 젠더/계급 교차, 페미니즘 연구 9(2), 2009, 39-82쪽) 이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은 정말 벼랑 끝에 서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바로 젊은 여성들에 의해, 그 여성들이 한국 사회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완전히 엉망이 되었을 때,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도화선이 되었고, 강남역 추모공간에 모인 여성들은 "바로 지금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당장 죽을 수도 있다"며 모였습니다. 저는 이들의 절박한 심정이 한국 사회를 정말 변화시키는 정치의 순간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촛불에 참여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선을 거치면서 몇몇의 목소리로 대의되는 과정에서 급격히 축소되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돼지발정제를 먹여 강간공범을 모의했다고 자서전에 썼고, 국민의당의 박지원 전 대표는 향후 100년간 여자대통령을 꿈도 꾸지 말라며 박근혜의 실정에 모든 여성들을 연대책임 지웠습니다. 대선 후보로 출마한 17명 중에 여자는 단 1명에 불과했습니다. 청와대의 행정관은 알려진 것만 총 3권에 걸쳐 룸싸롱 출입 경험을 자랑하고 자신이 말할 자유를 위해 여자를 일상적으로 모욕하는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남성들은 이를 통해 '그래도 되는 선'을 배울 것입니다. 지난 정권의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은 영상까지 있었으나 유야무야 되었습니다. 전전 대통령은 마사지사의 얼굴을 운운하고 식당 여주인은 언제든지 희롱해도 되는 대상으로 생각했죠. 2000년 광주 항쟁 기념일 전날 새천년 NHK 룸싸롱에 출입했다는 것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던 386 남성 국회의원들은 화려하게 재기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남성 연대는 확실히 룸싸롱 연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나봅니다. 이거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이지만, 심지어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되기까지 합니다.

촛불시민들의 광장민주주의가 어째서 룸싸롱 연대로 바꿔치기된 겁니까. 페미니스트 정권이 되겠다는 약속은 어디로 갔습니까.

저는 10년 전 그리고 5년 전에 책에 쓴 글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제대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말 뒤에 숨지 마세요. 대의명분과 국익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서,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마치 대의가 아니라 국익과 위반되는 것처럼 구도를 만들지 마세요.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지만, 그 잘못을 덮는 과정에서 진짜 문제가 만들어집니다. 왜 "남자들 원래 그래. 그렇게 세상물정을 몰라?" 이런 종류의 말을 2017년에도 듣고 있어야 하나요. 바로 그 세상물정을 바꾸지 않고서 대체 무슨 희망과 변화를 말합니까.

이런 시시하고 비겁하고 사소한 남성들 간의 의리야말로 민주주의의 주적입니다.

공기처럼 퍼져있던 여성혐오문화에 대한 문제제기,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계속 커질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습니다. 대체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 집착하느냐, 왜 자꾸 남자와 여자를 편가르기를 하려고 하느냐. 여자 남자 이전에 우리는 같은 사람 아니냐. 이런 얘기들 말이죠. 페미니즘이 너무 엄숙해서, 너무 검열을 해서, 너무 사소한 데 집착해서, 너무 여자편만 들어서, 너무 불편하게 말해서, 무섭고 불편하고 싫다는 분들 많습니다. "문제는 페미니즘이야!"라고 하면 페미니즘이 없어지고 평화로운 세상이 올까요?

2015년 1월,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씨는 한국의 페미니즘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칼럼을 하나 썼습니다. "IS보다 무서운 건 무뇌아적 페미니즘"이란 제목의 글이었죠. "문제는 페미니즘이야!"라고 하면 페미니즘이 뿅하고 사라질까요? 아닙니다. 놀랍게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나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개그맨 장동민이 예능프로그램에서 "말하고 설치고 생각하는 여자는 질색"이라는 말은 여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는 커녕 21세기 한국 페미니즘의 대표 슬로건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김태훈 퇴출운동, 장동민 퇴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지금도 자리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공기처럼 퍼져있던 여성혐오문화에 대한 문제제기,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계속 커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탁현민씨는 계속 청와대에서 근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든 말든 저의 관심은 한 개인으로서의 탁현민씨가 아닙니다. 탁현민씨가 몇 권에 걸친 책에서 쏟아냈던 "더러운 말"(이 표현은 작년에 문제가 되었던 "더러운 잠" 패러디를 다시 패러디한 말입니다)들은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지난 10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깨닫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가 범죄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그런 말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며, 변화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 여기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양보 없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없어져야 할 것은 성차별주의이지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윤여정씨는 광장의 미래가 "축제"이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이 민주주의다"라는 이 행사가 열리는 2017년 7월 8일, 오늘의 이 광장은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축제로 만들어진 자리이죠. 2017년 7월 15일, 다음 주 이 자리에서는 퀴어 퍼레이드가 개최됩니다. 문재인 정부가 선거 기간에 가장 먼저 내쳤던 성소수자들의 축제가 바로 이 자리에서 열릴 겁니다.

저는 쉬운 민주주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누군가의 목소리를 지워버린, 가짜 민주주의입니다. 저마다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을 독재정권처럼 없애버릴 수도 없으니까 민주주의가 어려운 거예요. 저는 이 정부가 민주주의를 계속 견지하기를, 그래서 계속 어려운 길을 가기를 응원하려고 합니다. 지난 겨울 우리는, 단지 정권을 교체한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찾고, 주권을 찾은 거니까요.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믿음입니다.

때문에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고,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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