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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최면에 빠진 평양' 어떻게 다뤄야 하나

두 달 정도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그 이전까지는 제대로 화내라 :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우리의 미사일 능력 시현을 지시한 문 대통령의 대응, 깔끔했다. 이렇게 되면 이분 자체의 중심에 대해서는 우려가 덜해진다, 일부 참모들의 조바심을 경계해야겠지. 북한의 일탈행위에 대해 함께 화내고, 함께 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몇 달이라도 보여야 그 다음 진짜배기 대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아마 한ㆍ중 정상회담이 기점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표정관리로라도 제대로 화를 내라.

  • 차두현
  • 입력 2017.07.06 11:58
  • 수정 2017.07.06 11:59
ⓒKim Hong-Ji / Reuters

5월부터 북한이 언제 또 사고를 치고 나오나가 궁금했는데, 결국 한ㆍ미 정상회담 닷새 만에 ICBM 발사라고 '주장'된 '화성-14호' 미사일 발사를 선택했다. 난 점쟁이가 아니다, 그냥 북한 문제 연구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경우 북한의 행태에 대해 예측성 멘트를 자주 날려 왔다. 아래는 그와 관련된 설명이자 내 바람이다.

평양은 무엇을 노렸나?

뭐, 이미 다른 분석가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디글디글하게 내고 있다. 일단 평양이 이번 미사일 발사를 통해 던지고자 하는 서울과 워싱턴에 대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① 한ㆍ미 정상회담과 한ㆍ미 공조? 그런 것으로 나를 흔들 생각하지 말아라, 나는 '핵대국'으로서 내 길을 간다.

② 한국의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주도'? 그거 웃기는 소리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주도'하는 것은 우리다.

③ 제재와 대화의 병행 해보라, 날 바꿀 수 없다, 대화를 하자고 니들이 먼저 수그리면 모르겠지만, 내가 먼저 목매달고 날칠 이유 없다 등이다.

북한은 이미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만 6월초까지 다섯 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한국에서 보수 정부가 들어서든 진보정부가 들어서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이기도 하다. 즉, 한국 정부가 어차피 대화의 주(主)타깃이 아닌 이상 그쪽에서 무슨 정책을 펴든, 뭘 집어준다고 선언하든 연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었다. 참 뻔뻔스러운 발상이기는 하지만, 북한은 한국 정부를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니 최소한 속내는 어떨지 몰라도 대남전략상으로 그런 인상을 주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ICBM 발사나 6차 핵실험은 시간 문제였다. 5월부터 쟤들이 반드시 사고 칠 텐데라고 전망한 배경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이 2번과 3번이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체제의 내구성에 대한 판단이 각기 다른 보수와 진보가 그래도 비슷하게 공통으로 가진 생각이 있다. 한국이 '갑(甲)'이라는 것이다. 보수가 '저 거지들 곧 무너질 텐데, 저거 한 주먹감인데'라는 턱도 없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면(그러면서도 곧 핵 사고 칠 것이라는 모순적 두려움도 가지고 있다), 진보는 '야 그거 가진 것이라고는 핵 하나인 불쌍한 애 왜 자꾸 왕따하고 미국 애들이랑 '압살'하려 드냐, 우리가 대국적으로 먼저 손 내밀면 쟤들은 잡을 거다'라는 식이다. 이게 웃기는 소리라는 것이 평양의 대답이다. 우리는 곧 무너지지도 않고 불쌍하지도 않다, 오히려 측은한 것은 압도적인 우리의 힘 앞에서 전전긍긍하게 될 서울 니네들이다라는 것이 평양의 대답이었다.

김정은 시대의 변화,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는 2010년대 이후의 북한의 변화가 바로 이것이다. 실질적인 능력이야 어쨌든 김정은은 'dominant power'가 되고 싶어하고, 또 되고 있다는 자기 최면을 넣고 있고, 이건 북한 권력엘리트들의 일종의 집단최면으로 확산되고 있다. 북한이 과거와는 달리 미국과의 대화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그에 목매는 인상을 회피하는 것 역시 이런 배경이다. 내가 '양키'들과 같은 '대국'인데, 왜 대화를 구걸해 답답하면 지들이 제재 풀고 테이블에 나오겠지 식이다. 워싱턴이 이런 식으로 보이는데 서울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지들이 북한 단기 붕괴의 미망에서 헛다리를 잡건 한반도 평화체제를(그걸 왜 니들이 이야기해?라는 것이 평양이다) 들고 나오든 상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최면의 한 단초를 보여준 것이 지난 6월 24일 민화협 북한측 본부가 보낸 남북관계 개선 전제조건이다. 이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작년에 한국으로 탈출한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송환이다. 왜 얘들은 여기 이렇게 신경 쓸까? 이제 평양이 '모양새'를 신경 쓴다는 반증이다, 세상에... 젊은 '장군님'의 새로운 핵대국 공화국을 탈출한다는 그 모양새가, 그리고 세계가 dominant power 북한을 어떻게 볼까가 신경 쓰인다는 이야기다. 이건 대국 자기최면이 없으면 나오기 힘든 태도이고, 김정일 시대와의 차이점이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쟤들의 체제안전보장만 해주면 대화에 나올 거라는, 그리고 한․미 연합훈련 축소나 한반도 평화체제 비전을 이야기하면 저쪽도 보다 유화적으로 나올 거라는 전제 자체가 우스운 거다. 물론, 10년 전이라면 평양은 대화 테이블에 나왔다, 그런데 지금 평양이 과거의 그 평양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지. 북한이 진짜 대국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로서는 하품 나오는 이야기지만 '양아치'들이 자기들을 스스로 매우 존대하기 시작했고, 외부에서도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거다.

4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을 발사하는 장면. ⓒ조선중앙통신/뉴스1

4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이 '화성-14형' 발사를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뉴스1

진짜 능력은 되나?

이건 좀 논란거리이다. 개인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의 상당한 진보, 그리고 예상 외의 속도와 강력한 drive는 인정한다. 그런데 그게 내일모레의 긴박성의 문제로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왜냐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에 대한 경각심이 지나쳐 북한 만능론으로 이어지는 걸 경계하는 것뿐이다. 위와 같은 자기 존대라면 저들은 기술적 능력이 있으면 이미 거침없이 다 보여줬을 거다. 구차하게 설명이 달리지 않은 진짜배기 ICBM 능력시현, 폭발력 50kt 이상의 또 다른 핵실험 등.

그런데, 안 하고 있다. 이에는 이미 그동안 수차례 이야기한 기술적 한계나 재정적(미래 투자에의) 문제점들이 개입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번에 발사한 '화성-14호'를 예로 들어보자. 평양의 주장대로라면 이 미사일은 2015년 정권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금년 3월 김정은이 이를 시찰도 했다. 그런데, 그때 '화성-14호'라고 주장된 로켓과 모양이 확연히 틀리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일단 모형 하나 지르고 그에 맞추어 죽을상을 쓰면서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발사 때마다 사족(蛇足)이 붙는다. 이번에는 '최대고각'으로 발사했단다, 뭐 자신 있으면 그냥 일상각도로 발사했으면 된다. 그런데, 자꾸 "우리가 제대로 쏘면 말이야"를 암시하려 든다, 그 해석은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물론, 우리는 대응에 있어서는 그 위협을 최대치로 읽어줘야 한다, 방어와 압박에 있어서는 말이다. 도둑 '잡아조지기'와 같다. 얘가 우리집에서 뭘 훔치다 걸렸으면 일단 그동안 이래저래 없어진 모든 것을 의심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자꾸 딴소리하고 뒷짐 지는 베이징을 압박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이에 대해 뭘 협상하거나 카드를 내놔야 할 때에는 일단 완전히 확인되기 전까지는 상대방의 능력을 박하게 평가할 필요도 있다. 왜 그들의 주장대로 최대성능을 상정하고 양보안이나 타협안을 내놓아야 하나? 답답하면 지들이 속 시원히 보여줄 텐데. 위협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군사적 대비용과 외교적 협상용을 구별하자는 거다.

한국과 미국의 미사일 부대가 5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대응해 동해안에서 한국군의 현무-2와 미 8군의 ATACMS(에이태킴스) 지대지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뉴스1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① 유들유들해져라 : 쟤들이 바라는 것은 이를 통해 우리가 평정심을 잃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도대체 쟤들 왜 저럴까, 안 돼 이제는 꿈도 희망도 없어'의 상태에 빠지는 거다. 아니, 여기서 더 나아가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과시되었던 공조의 김이 빠지기를 바란다. 쟤들은 앞으로도 우리의 대화제의나 인도주의적 지원(왜 쟤들이 5월~6월에 민간단체 인도주의지원에 심드렁했는지 이제 이해가 갈 거다)에 별로 기쁘지 않은 반응을 보일 거다.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제의에 북한 IOC 위원 장웅이 보인 반응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계속 두드려라. 어차피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이나 인도주의 지원, 그리고 사회/체육/문화 교류는 비핵화와 무관하게 융통성을 가지기로 했으면 우리는 우리 스탠스를 유지하면 되는거다, 그래야 찬스가 잡힌다.

② 대화? 실무적인 선부터 시도해라 : 거듭 이야기하지만, 대화도 기회가 되면 제의하고 저 쪽에서 받으면 해라. 명분은 얼마든지 있다. 한반도에서의 재래식 군사충돌 방지나 상호 비방중지 등은 현재에도 논의가 가능한 사항이다. 이런 대화를 통해 제한적으로나마 투명성이 확대되어야 상호 오인에 의한 진짜배기 위기가 없어진다. 단, 정부차원의 중요한 대화나 대북 경협은 평양이 저렇게 나오는 이상 당분간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급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 그러면 평양에 말린다. 경쟁자를 가볍게 누르고 탄생한 정부이다, 왜 초반부터 실적 강박관념에 빠질 것인가.

③ 지금은 특사를 보낼 때가 아니다 : 일부에서 자꾸 대북 특사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번 물어보자, 가서 뭘 줄 수 있는데? 자기가 갑이라고 생각하는 평양에 대해 우리가 뭘 제시해서 평양을 움직이고, 지금의 양아치 짓을 자제시킬 건데? 한 번 물어보자, 우리가 지금 한미 정상회담 닷새 만에 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할 수 있나, 아니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베팅할 수 있나? 연합훈련 축소나 중단의 경우도 잘 알고 이야기해라, 북한이 한국에 바라는 역할은 일종의 한ㆍ미 이견부각 및 변죽용이지, 한국의 결단이 아니다. 그건 미국이 할 걸로 평양은 기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연합훈련이나 전략자산의 축소와 관련해서 우리는 "일이 되게는 못 해도 안 되게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레버리지가 생긴다. 즉, 평양 니네 백날 미국 쪽에 요구해 보라, 우리가 반대하면 절대로 워싱턴은 안 할 거다란 인상을 줘야 그에 대한 양보를 우리 카드로 만들 수 있다. 이 걸 선제적으로 써먹은 일부 행태에 내가 분노한 이유이다.

④ 특사를 보내고 싶으면 주변국에 보내라 : 특사를 보내야 할 곳은 따로 있다. 미국이야 한ㆍ미 정상회담이 얼마 전 끝났으니 외교장관간 협의로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에는 다시 특사단이 가야 한다, 북핵 대응 자체만 가지고. 이렇게 선제적으로 치고 나와야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사드 가지고 선제 어깃장을 거는 것을 피할 수 있고, 아베가 국내정치용으로 북핵을 팔아먹는 것을 공조의 날을 가지고 다소나마 차단할 수 있다. 특사를 보내서 이제는 단기적이라도 어떤 가시적인 대북 압박조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라. 우리가 평양의 망나니짓을 왜 우려하는가? 말하고 두 번에 한 번 꼴로 실행에 옮기기 때문이다. 감내하기 힘든 제재 말로만 하지 말고, 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그거라도 해야 대화의 물꼬가 오히려 트인다고 설득해라, 좀.

⑤ 두 달 정도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그 이전까지는 제대로 화내라 :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우리의 미사일 능력 시현을 지시한 문대통령의 대응, 깔끔했다. 이렇게 되면 이분 자체의 중심에 대해서는 우려가 덜해진다, 일부 참모들의 조바심을 경계해야겠지. 북한의 일탈행위에 대해 함께 화내고, 함께 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몇 달이라도 보여야 그 다음 진짜배기 대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아마 한ㆍ중 정상회담이 기점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표정관리로라도 제대로 화를 내라. 물론, 앞서 이야기한 인도주의 지원이나 이런 부분은 유들유들하게 대처하면서. 양아치 다루려면 단호하면서도 능구렁이가 되어야 한다.

평양의 미사일 발사 '중대발표'가 있던 그 시간, 나는 한 세미나 장에 있었다. 한 후배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정부가 굳이 특사파견을 바라면 그에 맞는 정책을 만들어줘야 되지 않느냐는. 관료생활도 좀 했던 후배다, 대놓고 좀 언짢은 소리를 했다. "그런 식으로 관료들과 참모들이 대빵을 보좌했으니, 지난 십여년간 대북정책이 그 꼴이 되었던 거다." 맞다, 참모는 대빵이 바라는 바의 방안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속도까지 맞출 필요는 없다, 자기 신념까지 버려가면서. 그걸 잘 해서 장수한 어떤 장관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ㆍ미 정상회담을 통해 느낀 것은 우리가 꽤 괜찮은 외교적 내공과 무난한 이미지 delivery가 가능한 최고지도자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김정은 평양'이 자기가 갑이라는 망상에 빠져 어떤 짓을 하든 '문재인이 이끄는 서울'은 그렇게 가볍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작년 하반기 이후의 그 힘든 과정에서 이제는 더 나아져야지의 열망을 반영해 선택하게 된 '우리' 대통령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그러기에 말이다. 일부의 분들에게 좀 바라는 바가 있다. 세상 오늘내일 살 거 아니다, 그렇게 자기 의제만 외치지 말고 기다려라, 그래도 되는 분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 P.S. : 북한의 ICBM이 미국용인데, 우리가 거기 휩쓸릴 필요가 있는가는 주장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 개인의 신념이니까, 좋다. 그런데, 그럼 차라리 지금 동맹 필요 없으니 깨고 시작하자고 커밍아웃하는 것이 낳다. 왜? 동맹은 위협인식의 공통을 중심으로 출발한다. 그럼 ICBM 이전에는 미국이 북한이 심각한 위협이라고 우리하고 동맹했냐...

* P.S. 2 : 개인적으로 북한이 핵 가진다고 우리의 일상이 망가지는 것이 아니며, 세상 끝나는 거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일단 모라토리움에서 동결에 이르는 한ㆍ미간의 입구전략을 확정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완전한 비핵화까지 좀 시간 여유를 가지는 접근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 경우, 북한의 과거핵의 일정부분은 성능/수량 제한에서 묶어둔 채 남북한관계를 운영하는 방안도 이제는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현 수준에서 이를 모두 풀어놓고 시작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내 카드 다 내놓고 게임하는 건 하수(下手)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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