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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21년 만에 쓰는 MBC PD 면접 후기

"김민식 씨?" "네!" "고등학교 내신 성적이 10등급에 5등급, 15등급으로 치면 7등급이네요? 성적이 이렇게 낮았던 이유가 있습니까?" "사춘기 때 방황을 좀 했습니다." "대학교 전공 학점이 대부분 C, D인데, 학점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사춘기가 좀 길었습니다." "이런 성적이면 학과에서 꼴찌 아닌가?" "아닙니다! 전공 시험을 보면 72명 중에서 70등 정도는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해서 명문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한 친구들이 PD를 많이 지원합니다. 공대 다니면서 놀기만 한 김민식 씨를 왜 뽑아야 합니까?"

  • 김민식
  • 입력 2017.07.03 11:02
  • 수정 2017.07.03 11:49
ⓒ한겨레

어려서부터 늘 책만 보면서 사니까 문약한 이미지가 있어요. 첫 직장을 다닐 때도, 외대 통역대학원을 다닐 때도, 다들 저를 전형적인 모범생이나 책벌레라고 생각했지요. 회식이나 야유회에 가면 춤을 추었어요. 책벌레의 화려한 춤사위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니 춤 실력에 욕심이 나더군요. 통역대학원 시청각실에는 헤드폰이 달린 TV가 여러 대 있는데요. 저는 매주 토요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신곡들의 안무를 익혔어요. 심지어 생방송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놓고 반복 시청을 통해 춤을 연습했지요. 그렇게 MBC를 보다 우연히 신입 사원 채용 공고를 봤습니다. 방송사 PD라면 우리 시대, 가장 춤 잘 추고 노래 잘 하고 잘 웃기는 사람들을 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공채 지원했습어요.

1차 면접에서 나온 질문이 저를 긴장하게 했지요.

"김민식 씨?"

"네!"

"고등학교 내신 성적이 10등급에 5등급, 15등급으로 치면 7등급이네요? 성적이 이렇게 낮았던 이유가 있습니까?"

"사춘기 때 방황을 좀 했습니다."

"대학교 전공 학점이 대부분 C, D인데, 학점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사춘기가 좀 길었습니다."

"이런 성적이면 학과에서 꼴찌 아닌가?"

"아닙니다! 전공 시험을 보면 72명 중에서 70등 정도는 했습니다."

"김민식 씨보다 공부를 못한 친구도 있었군요?"

"그 친구들은 수배 중인 운동권이라 시험을 아예 못 봤습니다."

웃음을 참으면서 심사위원이 물었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해서 명문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한 친구들이 PD를 많이 지원합니다. 공대 다니면서 놀기만 한 김민식 씨를 왜 뽑아야 합니까?"

"PD란 온 국민을 상대로 놀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시청자가 5천만인데, 하나같이 공부 잘 하고, 언론사 입시만 준비한 사람들이 만드는 프로그램만 볼까요? 저처럼 색다른 경력에 잘 놀던 사람이 만드는 프로그램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PD를 하려는 이유는?"

"저는 셋이 만나면 셋을 웃기고, 열이 모이면 열을 웃기는 게 취미입니다. 제게 기회를 주시면 5천만 국민을 한번 웃겨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김민식 씨를 안 뽑을 건데?"

"그럼 예전처럼 주위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웃겨주면서 평생 살겠습니다."

대학 시절, 미팅에 나가면 부족한 외모를 의식해 미안한 마음에 항상 상대방을 웃겨줬어요. 사람을 웃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웃음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서 터져 나옵니다. 어린 아이가 "1 더하기 1은?" 하고 물었을 때 갑자기 "똥!" 이러면 빵 터지거든요? 이야기에 빠져서 듣다가 반전이나 엉뚱한 전개에 웃음이 터집니다. 자학 개그를 연발한 덕에 미팅은 매번 실패했지만, 면접에서는 통하더군요. 아마 심사를 본 선배 PD들이 엉뚱한 개그를 좋아하셨나 봐요.

MBC 입사하고 심사위원으로 오셨던 예능국 선배님을 만나 여쭤봤습니다. 왜 저를 뽑았는지. 나를 왜 뽑았는지 알아야 저의 강점에 더욱 집중할 수 있잖아요?

"선배님, 저를 붙여주신 이유가 있나요?"

"다른 애들은 다들 전쟁터 나온 신병처럼 긴장하고 있는데, 너는 혼자 놀러온 사람처럼 굴더라. 그래서 뽑았어."

그때 깨달았어요. '아, 이곳은 잘 노는 것도 능력인 조직이구나!' 입사하고, 항상 업무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일했어요. 알고 보니 그것이 콘텐츠 제작 집단의 특징이더라고요. MBC를 선택한 것도 제게는 행운이었어요. KBS는 왠지 공무원 조직 같아 저 같은 날라리에겐 안 어울릴 것 같았고요. SBS는 사주가 있는 민간 기업이라 왠지 줄을 잘 서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저랑 제일 잘 맞는 회사가 MBC 같아서 MBC만 지원했는데, 단번에 뽑아주신 거죠.

요 며칠 MBC 상황에 관련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궁금하실 수도 있어요. '저 사람은, 그냥 나오면 되지, 왜 저기 남아서 힘들게 살까.' 제게는 MBC가 첫사랑입니다. 이 회사 말고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첫사랑 그녀 곁에 동네 왈짜 형이 나타나 얼씬 거리면서 "앞으로 마봉춘이는 내꺼니까, 니들은 근처 얼씬도 하지 마라." 이렇게 을러댄다고, '네, 전 그럼 다른 사람 알아보겠습니다.'하고 내뺄 수는 없잖아요? 진짜 사랑은, '~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거든요. 내 사랑 그녀가 변했다고 다들 그러지만, 저는 알아요. 그녀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걸. 그녀 곁의 왈짜 형만 사라지면,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압니다.

그래서 오늘도 외칩니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기승전'겸'... ^^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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