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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발정제와 '여성 돼지'

전 지구에서 가장 고통받는 생명체는 공장식 축산에서 사육되는 돼지·닭·소, 그중에서도 '여성 동물'이다. 그들은 감금틀에 갇혀 평생을 살아야 할 뿐 아니라, 인공수정으로 강제 임신되고, 출산 뒤 충분히 돌볼 기회도 없이 3∼4주 만에 새끼를 빼앗기고 또다시 임신을 당해야 하는 고통의 수레바퀴를 맴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선 후보가 과거 여성에게 돼지발정제를 먹이려는 계획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많은 시민이 경악했다.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인데, 이런 일을 '여성 돼지'들은 일상적으로 당하며 산다.

  • 황윤
  • 입력 2017.06.30 07:39

황윤 감독(오른쪽 두 번째)과 아들 도영이 강원도 산골 농장에서 키우는 돼지를 지켜보고 있다. 다큐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영화 〈옥자〉를 아직 못 봤다. 이 글은, 영화의 미학적 부분은 완전히 배제하고 소재와 대략의 줄거리만 듣고 쓰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린다.

미자가 자신의 전부를 걸고 옥자를 구하려는 것은, 옥자가 그냥 돼지가 아니라 '옥자'이기 때문이다. 관객 역시 미자의 옥자 구출 작전에 가슴 졸이며 빠져드는 건 그 돼지가 특별한 유전자를 가진 슈퍼돼지라서가 아니라, 옥자가 미자에게 소중한 가족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만약 미자가, 전세계 돼지들을 구하는 작전을 수행한다면, 오히려 관객은 몰입하지 못할 것이다.

새끼돼지 출산에 내 아들이 떠올랐다

나에게도 소중한 돼지가 있었다. 다큐멘터리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만들면서 강원도 산골의 한 농장에서 만난 '십순이'와 '돈수'였다. 십순이는 어미돼지였다. 나는 십순이의 출산을 지켜보았고 마지막으로 나온 새끼에게 돈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돼지에 대해서라면 돈가스와 저금통밖에 아는 게 없던 나는, 십순이와 돈수를 보며 돼지가 얼마나 풍부한 감정을 가진 존재인지, 돼지가 인간과 얼마나 닮은 점이 많은지 알게 됐다. 그들은 내게 잊지 못할 친구이다. 미자에게 옥자가 그렇듯이.

돼지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던 내가, 돼지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2011년 초 전국을 휩쓴 구제역 살처분이었다. 무려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산 채로 구덩이에 묻히는 걸 보면서 여러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돼지를 먹어서 돼지가 우리 몸의 일부가 되는데도 왜 그들을 폭력적으로 대할까?' '돼지는 흔한 것 같은데 나는 왜 돼지를 본 적이 없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카메라를 들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알게 됐다. 우리나라엔 총 1천만 마리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돼지가 살고, 우리가 평소 돼지를 볼 수 없는 건 그들이 죄다 '공장'에 갇혀 사육되기 때문이고, 농장에서 살아가는 돼지는 극소수라는 사실을. 나는 돼지를 돼지답게 키우는 농장을 찾아 전국을 헤맸고,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한 곳을 찾아냈다. 그곳에서 십순이를 만났다.

십순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진통을 견뎌내는 모습에 나의 출산이 떠올랐다. 새끼돼지 돈수가 보송보송한 솜털을 하고 눈을 꼭 감은 채 엄마 젖을 먹는 모습을 보면 내 아들이 떠올랐다. 엄마 젖을 배불리 먹고 한껏 늘어져 자고, 꿈을 꾸는지 귀를 쫑긋거리고, 까만 눈동자, 기다란 속눈썹, 보송보송한 털... 돈수는 사람 아기 내 아들과 다를 바 없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4살 아들 도영이와 함께 돈수에게 볏짚·야생초·당근잎을 주고, 무더운 여름엔 물도 뿌려주며 친구가 되어갔다. 더 이상 나는 돼지를 돈가스, 삼겹살로 볼 수 없었다.

농장에서 십순이를 비롯한 어미돼지들, 돈수와 형제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돼지에 대한 사회적 통념, 그러니까 돼지가 더럽고 미련하며 탐욕스러운 동물이란 관념이 사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돼지는 더럽지도 미련하지도 않다. 그들은 작은 우리 안에서도 잠자는 곳, 먹는 곳, 화장실을 구분한다. 연구에 따르면 돼지는 거울을 이용해 숨긴 먹이를 찾는 등 개·침팬지 못지않게 지능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돼지가 탐욕스럽고 먹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돼지는 결코 과식하지 않는다. 과식하고 소화촉진제 먹는 미련함은 오히려 인간의 특성이다.

출산 뒤 3~4주 만에 또다시 강제 임신

암퇘지가 좁은 스톨에 갇힌 채 새끼돼지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농장 말고 공장, 즉 일반적인 양돈농장에서 살아가는 돼지들의 삶은 어떨까? 암퇘지들은 스톨(감금틀)에 한 마리씩 갇혀 살아간다. 수컷 중 소수는 정자 공급용 씨돼지로 별도 관리되고, 나머지는 모두 '비육돈', 즉 살찌울 목적으로 사육된다. 새끼돼지는 태어나 겨우 3∼4주 만에 어미로부터 분리된다. 암퇘지는 스톨에 갇힌 채, 수퇘지 정액이 든 튜브가 생식기에 꽂혀 인공수정이 된다. 그리고 출산한 새끼 수에 따라 '성적'이 매겨진다. 성적이 좋지 않은 어미돼지는 도축된다.

옥자가 수퇘지에게 강제로 교미당하는데, 실제 축산공장의 암퇘지들도 자의와 상관없이 임신된다. 전 지구에서 가장 고통받는 생명체는 공장식 축산에서 사육되는 돼지·닭·소, 그중에서도 '여성 동물'이다. 그들은 감금틀에 갇혀 평생을 살아야 할 뿐 아니라, 인공수정으로 강제 임신되고, 출산 뒤 충분히 돌볼 기회도 없이 3∼4주 만에 새끼를 빼앗기고 또다시 임신을 당해야 하는 고통의 수레바퀴를 맴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선 후보가 과거 여성에게 돼지발정제를 먹이려는 계획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많은 시민이 경악했다.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인데, 이런 일을 '여성 돼지'들은 일상적으로 당하며 산다.

〈옥자〉는 단순한 몬스터 영화가 아니라, 공장식 축산과 비인도적 식육산업에 대한 메타포로 해석할 수 있다. 유전자변형으로 제조되는 슈퍼돼지는 유전자변형 사료와 호르몬, 각종 약물을 먹고 기형적인 체구로 부풀려지는 현실 돼지를 반영한다. 옥자가 탈출하는 도축장은 기계화·분업화돼 있다. 미국의 자동차 대부 헨리 포드가 20세기 초 도축장에 착안해 자동차부품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를 만들었을 만큼, 실제 도축장은 분업화·기계화돼 있다. 공장에서 자동차는 조립되지만, 동물의 몸은 산산조각 분해된다.

돼지고기 아닌 십순이와 돈수

촬영이 끝나갈 무렵, 나는 농장주 선생님에게서 돼지고기를 선물받았다. 돈수인지, 돈수의 형제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을 나는 차마 요리할 수 없었다. 내가 더 이상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건, 고기라 불리는 그들의 삶을 이제 알게 됐고 그들이 나처럼 새끼를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순이와 돈수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미자가 옥자의 이름을 불렀던 것처럼.

미자는 끝내 옥자를 구출한다. 미자와 옥자에겐 좋은 일이지만, 만약 옥자처럼 조작된 유전자를 가진 거대 생명체가 실제 숲속에서 살아간다면 숲은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미자에겐 미안하지만 옥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고기, 즉 남의 살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다.

도축장의 벽은 너무 높았고, 나는 십순이와 돈수를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었다. 축산공장의 벽이 점점 더 환하게 투명해져서, 그리하여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기 바라면서. 옥자는 가상의 생명체이지만, 한국에는 1천만의 '십순이'와 '돈수'가 공장에서 살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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