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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퀴어 퍼레이드가 올해도 열린다. 7월15일 서울 광장에서 개최되는데 예년과 다름없이 광장을 둘러싸고 동성애 반대 집회도 열릴 예정이다. 퀴어 퍼레이드는 2000년부터 매년 열렸지만 반대 시위는 2014년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전혀 반대하지 않다가 왜 2014년부터 갑자기 반대하기 시작한 것일까? 얼마 전 집회 신고를 하러 갔다가 경찰서에서 지난 몇년간 반동성애 집회를 주도해온 목사를 여러 명 만났다. 그중 한 분이 다가와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에게 은근히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동성애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박원순 때문이지."

  • 한채윤
  • 입력 2017.06.29 09:43
  • 수정 2017.06.29 09:45
ⓒ뉴스1

퀴어 퍼레이드가 올해도 열린다. 7월15일 서울 광장에서 개최되는데 예년과 다름없이 광장을 둘러싸고 동성애 반대 집회도 열릴 예정이다. 퀴어 퍼레이드는 2000년부터 매년 열렸지만 반대 시위는 2014년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전혀 반대하지 않다가 왜 2014년부터 갑자기 반대하기 시작한 것일까?

얼마 전 집회 신고를 하러 갔다가 경찰서에서 지난 몇년간 반동성애 집회를 주도해온 목사를 여러 명 만났다. 그중 한 분이 다가와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에게 은근히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동성애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박원순 때문이지." 하소연인지 변명인지 모르겠지만, 동성애가 싫어서가 아니라 박원순 서울시장을 반대하기 위해 동성애를 이용한다는 뜻인 것만은 분명했다. 하긴 성경에 박원순 금지가 적혀 있을 리 없다. 정치적 목적으로 종교 세력을 움직이려면 성경 구절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엮기 좋은 희생양이다.

지난 5월 대선도 비슷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방송 토론회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뜬금없이 '동성애 반대합니까'라고 물었다. 기독자유당을 이끌던 전광훈 목사는 자신이 홍준표 의원에게 토론회 때 그렇게 물어보라고 요구했다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예상대로였는지 예상외였는지는 모르지만, 문재인 후보는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답했고 얼결에 홍준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같은 입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결론은 달랐다. 홍준표 후보는 동성애를 반대해서라도 당선되려고 했고 문재인 후보는 동성애를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형국이었다. 그 와중에 동성애 찬반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반대했던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득표에서는 5등을 했지만 후원금 모금에서는 1등을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차기 대선을 꿈꾸고 있을 바른정당의 이혜훈 신임 대표는 2016년에 퀴어 퍼레이드 반대 집회에 참석한 적도 있는 대표적 반동성애 정치인이다. 특히 이슬람을 가리켜 테러와 성폭행을 일삼는 위험한 종교이며 한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지켜야 한다는 등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기는 발언이 많았다. '이런 편협한 인식을 가진 이가 새로운 보수 개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앞서지만 이젠 한 정당의 대표가 되었으니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부디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동성애나 이슬람을 이용하지 않기를, 혹은 반대로 종교적 이익을 위해 정치적 권력을 사용하지 않길 바란다.

한 손에는 태극기, 다른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할렐루야를 외치는 이들은 반동성애 집회부터 박근혜 탄핵 반대 그리고 사드 배치 찬성까지 섭렵하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듭하다 보니 이제는 동성애와 아무 관련 없는 조례까지도 동성애 핑계를 대며 반대하고 있다.

지난 26일, 대구 수성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이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구청에서 구제하는 조례를 제정하려고 했으나 동성애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엉뚱한 반대에 부딪쳐 제정이 무산되었다. 27일에는 인권센터를 건립하는 내용을 추가하려던 아산시 인권기본조례도 개정이 좌절되었다. 얼마 전 입법 예고된 의료법 개정안도 같은 처지다. 의료인은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 예방 교육 및 직업윤리의식에 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할 뿐인데, 동성애를 옹호하는 악법이라는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미끄러운 경사길의 오류'에 빠져 있다. A를 허용하면 B도 허용하고, C도 허용해서 이런 식으로 결국 Z까지 인정하게 되니 A를 금지하자는 식이다. 동성애를 인권의 하나로 인정하면 좌파와 빨갱이가 판을 치고 한국이 망한다는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다. 아마도 선거를 앞두고 더 많은 법률과 조례가 더 쉽게 무산될 것이다. 정말 이 모든 것이 동성애 때문인지 궁금하다가 불쑥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그 목사님들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박원순 시장을 반대하는 걸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아무래도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있는 박원순 시장 쪽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임기 내내 반동성애 진영의 눈치를 살피느라 인권 변호사라는 이미지는 퇴색되고, 그렇다고 보수 우파의 지지를 얻어내지도 못한 그가 앞으로의 행보를 정하는 데 꼭 필요한 답일 테니까. 확실히 동성애 때문은 아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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