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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역적' 탈핵을 하려면

지금 짓고 있는 핵발전소는 설비용량 140만kW급에다가 설계수명이 무려 60년이다. 만약에 문재인 대통령 임기에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를 폐쇄하고, 신규 핵발전소 5기를 그대로 추진하면 핵발전소 기수는 25기에서 28기로, 용량은 고리 1호기 10기에 해당하는 570만kW가 늘어난다. 탈핵 선언이 무색해진다. 대통령이 핵산업계를 의식한 듯 연설문에 언급한 "핵발전소를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 무려 40년에서 60년이 걸린다면 이것을 '탈핵'이라 할 수 있을까?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탈핵'을 선언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신규 핵발전소 계획 백지화, 수명연장 금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발표했다. 탈석탄과 청정에너지로의 전환도 제시했다. 대통령의 탈핵 선언은 앞선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해온 핵발전 확대정책에 대전환을 예고하는 반가운 소식임은 틀림없다.

탈핵 선언 후, 핵발전소가 늘어난다면?

그러나 이날의 선언을 '불가역적' 즉 '돌이킬 수 없는' 탈핵으로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정부가 수립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29년까지 핵발전소 11기가 추가 건설될 예정이었다. 그에 따라 신고리 4,5,6호기, 신울진 1,2호기가 건설 중이다. 대통령은 공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신고리 5,6호기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신고리 5,6호기가 정부의 탈핵정책 의지를 가늠할 기준이 된 것이다.

지금 짓고 있는 핵발전소는 설비용량 140만kW급에다가 설계수명이 무려 60년이다. 만약에 문재인 대통령 임기에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를 폐쇄하고, 신규 핵발전소 5기를 그대로 추진하면 핵발전소 기수는 25기에서 28기로, 용량은 고리 1호기 10기에 해당하는 570만kW가 늘어난다. 탈핵 선언이 무색해진다. 대통령이 핵산업계를 의식한 듯 연설문에 언급한 "핵발전소를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 무려 40년에서 60년이 걸린다면 이것을 '탈핵'이라 할 수 있을까?

진짜 탈핵 선언이라면, 좁은 국토와 지진지대에 더이상 핵발전소를 추가해서는 안 된다. 핵발전소는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핵폐기물에 관한 대책이 없다. 핵발전소는 기껏해야 30~60년 동안 전기를 생산하고, 폐로에만 수천억이 들고, 10만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을 양산한다. 멈춰야 한다.

탈핵 로드맵 마련, 지금이 적기다

정부는 27일,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하고 공론화위원회 구성과 시민배심원단에 의한 '공론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신고리 5,6호기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동시에 탈핵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을 짜야 한다. 대통령의 탈핵 선언 이후 한국사회는 유례없이 치열하게 에너지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좋은 기회이다. 이 과정을 통해 시민들이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에너지정책과 핵발전에 대한 자료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탈핵 로드맵을 만들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핵발전을 계속할 것인가?" "어떤 에너지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고 합의할 것이다. 한국에서 핵발전을 시작한 것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었지만, 탈핵의 방식과 시기는 시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만들자. 세계 각국 사례를 보면 정보 공유와 소통이 투명하고, 토론을 공정하게 진행할 수 있는 민주적인 국가일수록 핵발전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나아가 에너지 전환은 핵에너지와 화석연료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원의 전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 산업과 경제구조, 에너지 가격과 정책, 시민들의 인식과 소비 행태 같은 사회·경제·기술 시스템 전체를 전환해야 한다. 40년 이상 핵발전을 중심으로 구축해온 시스템을 개혁하는 도전적인 일이다.

'불가역적' 탈핵의 구체적 기반

먼저 핵발전소 건설을 위해 만든 법과 제도, 조직과 예산을 전환해야 한다. 원자력진흥법을 폐지하고 탈핵에너지전환법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법률개정을 하려면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핵발전에 대한 일방적인 홍보를 하는 '원자력문화재단'도 없애거나 '에너지전환재단'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현 산업통상자원부 조직에도 타 에너지원은 1개 과에 불과한데, 핵발전만 원전산업정책관 아래 4개의 원전과로 구성되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도 원자력진흥정책과가 별도로 있다. 장관이 임명되면, 탈핵정책에 맞게 조직을 개편하는 일이 급선무다.

더불어 대통령이 공약한 바와 같이 에너지전환위원회를 구성해 장기 탈핵 로드맵을 만들자. 탈핵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경로와 방법을 정하는 것이다. 수요관리가 먼저고, 에너지원 중에서는 가스발전(LNG)과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늘려야 한다. 지금까지 발전소를 건설해 공급하던 방식에 쏟아부었던 정책과 예산을 수요 관리와 재생가능에너지로 돌리자.

수요 관리의 핵심은 산업용 경부하 전기요금부터 시작해서 용도별로 불합리한 요금체계를 뜯어고쳐,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석탄과 핵발전에 세금을 부과해 환경적·사회적 비용을 반영하고, 가스발전에 대해서는 세금 경감이 필요하다. 태양광, 풍력, 바이오에너지와 같은 재생가능에너지 지원제도 보완도 시급하고,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주민 반대에도 해법을 찾자. 지자체별로 지역에너지센터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대규모 기업형 설비보다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태양광과 풍력이 늘어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다행히 향후 5년간은 피크수요 관리만 하면 전기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발전설비가 충분하다. 전기가 남아돌고,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단가는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이다. 문재인정부가 5년 동안 사회·기술·경제 시스템을 전환해 최소한 '불가역적인' 탈핵의 기반을 닦기를 바란다. 그래야 탈핵선언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탈핵의 시작은 이미 문 닫기로 되어 있던 고리 1호기 폐쇄가 아니라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부터다. 탈핵은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원하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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