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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 1도 없는 저출산 시대

"결혼은 몰라도 아이는 낳지 않을 겁니다." "왜?" "잘못 키우면 큰일 나는데 잘 키울 능력도 자신도 의지도 없어요!" 두 주 전 세미나 수업을 같이 하던 학생들과 마지막 수업에 나눈 결혼, 아이에 관한 대화이다. 특이점은 6명(남1, 여5)의 학생 중 여학생 1명을 제외하고 다섯 명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막연한 걱정이나 자신 없음, '이러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선호를 표현하는 수준이 아니라 확고하게 정립된 결심을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kittimages via Getty Images

"결혼은 몰라도 아이는 낳지 않을 겁니다."

"왜?"

"잘못 키우면 큰일 나는데 잘 키울 능력도 자신도 의지도 없어요!"

두 주 전 세미나 수업을 같이 하던 학생들과 마지막 수업에 나눈 결혼, 아이에 관한 대화이다. 특이점은 6명(남1, 여5)의 학생 중 여학생 1명을 제외하고 다섯 명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막연한 걱정이나 자신 없음, '이러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선호를 표현하는 수준이 아니라 확고하게 정립된 결심을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이 키우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는 나의 경험담이 기성세대에서는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곤 했었는데 이 그룹에서는 달랐다. 아이를 가지는 것은 재앙과 같은 부담이고, 잘 키울 수도 없으면서 아이를 낳는 것은 가장 무책임한 짓이라는 이들의 확신이 너무 강해 나는 딴 세상 이야기를 하는 사람같이 튕겨져나오는 느낌이었다. 두 명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었지만 젠더 의식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공유된 의식이었다. 요즈음 이십대가 '삼포세대'라 불린다는 얘기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충격이었다. 아이 낳기와 같은 보편적 삶의 욕망과 궤도를 대변하는 사안에 대해, 얘기를 나눈 학생의 절대다수가 하나의 단호한 결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지난주에는 미혼모 출산지원시설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 관계자와의 대화도 새로운 충격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를 낳으면 직접 키우려는 미혼모가 많았지만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입양시켜요." 이유를 물었다. "이전에는 어찌하다 보면 되겠지라며 애를 키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도 없는 거 같아요." 모든 출산지원시설을 점검해본 것은 아니지만 몇 년 전과 지금이 큰 차이를 낳을 만큼 달라졌다는 현장의 소리는 무겁게 들렸다.

최근에 연속하여 경험한 두 사례는 출산, 아이 키우는 것과 관련해 약간의 환상이나 허상도 허락하지 않는 시대를 이제 맞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하게 했다. 좋은 부모라는 사회적 기준이 높게 올라왔고, 경제적·정서적 여건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 노릇은 재앙이라고 믿는 공감대가 크다는 것이다. 그동안 저출산은 결혼 연령의 지연, 경력 단절의 부담, 여성의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주거 불안정 등 애를 낳고 키우는 것이 힘들다는 현실에만 주로 주목하고 있었다. 그에 보태서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대한 환상도 별로 없고 아무나 애를 낳으면 안 된다는 기준까지 확고히 섰다는 것은 출산과 관련한 전통적, 통념적 가족신화가 거의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냉정한 혹은 냉소적인 진단은 생각보다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형성되면 쉽게 무너트릴 수 없다. 젊은 세대가 아이 키우는 것에 자신감이 없어지는 근거가 되었을 취업도 그렇다. 취업난, 비정규직 문제가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2007년에 이미 '88만원 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했지만, 5~6년 전까지도 '아프니까 청춘'은 잘 통했다. 온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하고, 청춘콘서트를 열어 격려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너무 냉소적인 예언같이 들릴까 조심스러웠던 시절이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희망고문'에 가까워졌다.

저출산이 미래의 한국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로 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효과는 둘째 치고, 기본 관점에서도 계속 온 사회가 헤매고 있다. 멋모르고 행정자치부에서는 가임기 임신지도를 만들고 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여성의 고스펙 방지를 저출산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근 법원에서 여성 재판연구원을 뽑으면서 임신 계획을 제출하라고 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출산은 이제 각 개인이 최선의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가장 '계산적'인 이슈가 될 것 같다. 모성 강박, 교육 경쟁, 현재와 미래의 경제적 불안이 여성이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게 너무 어려운 현실과 함께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먹구구식 대응은 아무런 의미도 갖기 힘들다. 전통적 가족다움에 대한 환상이 없어진 사회에서는 결국 성평등만이 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서구의 사례도 적극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출산 현실에 대한 엄밀한 판단, 효과에 대한 장기적 계산, 정확하면서도 미래적인 관점이 다시 세워져야 할 때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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