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도널드 트럼프 당선을 도와라" : 푸틴이 직접 해킹을 지시했다 (WP)

  • 허완
  • 입력 2017.06.24 12:12
  • 수정 2017.06.24 13:15
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speaks by phone with his Turkish counterpart from aboard the Pioneering Spirit pipelaying ship in the Black Sea on June 23, 2017.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on Friday launched the deep-water phase of the TurkStream gas pipeline project, calling Turkey's Recep Tayyip Erdogan from a ship off the Black Sea coast. TurkStream will deliver Russian gas to Turkey and is eventually intended to serve the European Union. / AFP PHOTO / SPUTNIK / Mikhail KLIMENTYEV
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speaks by phone with his Turkish counterpart from aboard the Pioneering Spirit pipelaying ship in the Black Sea on June 23, 2017.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on Friday launched the deep-water phase of the TurkStream gas pipeline project, calling Turkey's Recep Tayyip Erdogan from a ship off the Black Sea coast. TurkStream will deliver Russian gas to Turkey and is eventually intended to serve the European Union. / AFP PHOTO / SPUTNIK / Mikhail KLIMENTYEV ⓒMIKHAIL KLIMENTYEV via Getty Images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돕기 위해 직접 해킹을 지시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는 "백악관, 국방부, 국토안보부, 미국 정보기관 등에서 일했던 전현직 정부 고위 관계자 30명 이상"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이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이들 대부분은 사안의 민감성 탓에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사실을 최초로 인지한 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었다. CIA는 대선을 앞두고 있던 지난해 8월 초, 이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여전히 주요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여유있게 앞서가던 때였다.

8월초, 예사롭지 않은 취급 제한 조치와 함께 봉투 하나가 백악관에 배달됐다. CIA의 담당자가 가져온 이 봉투에는 "눈으로만 볼 것(eyes only)"이라는 문구와 함께 단 네 사람만 이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지시사항이 담겨 있었다. 네 사람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세 명의 고위 측근이었다.

안에 들어있던 건, 러시아 정부 내 깊숙한 정보원으로부터 입수한 폭탄급 정보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대선 레이스를 방해하고 해치기 위한 사이버 작전에 직접 연루되어 있다는 구체적 내용이었다.

그러나 보고서는 한 발 더 나갔다. 정보기관은 푸틴이 내린 대담한 작전 지시의 목표를 알아냈다.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패하도록 하거나 최소한 타격을 입히라는 것, 그리고 상대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도우라는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 6월23일)

보도에 따르면, CIA가 당시 파악한 정보는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었다. 러시아 정보당국과 연계된 해커들이 일년 넘게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헤집고 다녔다는 것.

WP는 "(당시) CIA 국장 존 브레넌은 몇몇 인물들에게만 노출되는 대통령의 일일보고에서조차 이 부분을 넣지 않을 만큼 이 정보는 매우 민감하게 다뤄졌다"고 전했다. CIA는 백악관에 전달한 서류에 동봉한 안내문에서 열람 즉시 문서가 회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FBI도 지난해 7월 러시아 당국자와 트럼프 측근들의 접촉 여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내부 이메일 2만여건이 위키리크스에 유출된 건 7월22일의 일이었다. 당시 이 유출로 '경선 편파관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민주당은 발칵 뒤집혔다.

CIA로부터 이런 사실을 보고 받은 오바마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오바마 정부의 대응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오바마와 핵심 측근들은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우려했다고 WP는 전했다.

그들은 선거 전에 대응하면 푸틴이 작전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의 개입은 깊이 우려스러웠지만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오바마 정부가 더 크게 우려했던 건 선거 당일 전에 투표 시스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감행될 가능성이었다.

그들은 또 대응책을 내놓을 경우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있던 선거에 대한 (백악관의) 정치적 개입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우려했다. 8월 당시, 트럼프는 선거 결과가 조작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오바마 정부 관계자들은 이런 주장에 기름을 붓고, 클린턴의 승리로 예상됐던 선거 결과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기 위한 러시아의 작전에 놀아나는 일이 될 것을 걱정했다. (워싱턴포스트 6월23일)

이 사실을 처음 인지한 시점부터 퇴임 직전까지 약 5개월 동안, 오바마 정부는 비밀리에 대책을 논의했다.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CIA 부국장을 지낸 에이브릴 헤인스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 리사 모나코 국토안보보좌관 등 백악관 핵심 측근들이 참석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유출에 대비해 이후 열린 대책 회의는 백악관 상황실(Situation Room))에서 열렸다.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을 준비했던 바로 그 장소다.

처음에는 단 4명의 정보당국 관계자들에게만 참석이 허용됐다. 브레넌 CIA 국장,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 그리고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이었다. 이후 조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해 존 케리 국무장관,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등으로 규모가 확대됐다.

백악관 상황실에서 연달아 열린 회의에서는 러시아 인프라에 대한 사이버공격, CIA가 수집한 정보 공개, 러시아 경제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제재 등이 옵션으로 떠올랐다. 특히 초기에는 경제 제재와 사이버공격은 물론, 해군 항공모함을 발트해로 보내자는 야심찬 대응책까지 제시됐다.

이와 별도로 CIA는 NSA와 FBI 등 다른 정보기관원들의 파견을 받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활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비밀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이 조직은 다른 정보기관들의 조직과 별도로 비밀리에 운영됐으며, 여기에 파견된 직원들은 비밀 유지 각서를 새로 써야만 했다.

오바마는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 측근들에게 러시아의 선거개입을 저지할 것을 지시하면서 세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① 러시아 정부의 역할과 의도에 대한 신뢰할 만한 미국 정보기관의 진단을 이끌어낼 것

② 주정부가 운영하는 투표 시스템의 취약점을 개선할 것

③ 러시아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에 양당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도록 주정부를 설득할 것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모든 국면에서 장애물을 만났다"고 WP는 전했다.

특히 CIA의 이같은 보고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보기관들은 푸틴이 직접 이러한 작전을 지시했다는 결론을 수용하는 데 주저했다.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

또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하원 지도부를 만나기 위한 브레넌 CIA 국장의 계획도 어려움을 겪었다. 브레넌은 9월 첫째주인 미국 노동절이 되어서야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러시아를 규탄하는 성명을 내자는 의견에 반대했다. 미국의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공화당, 켄터키) 의원은 미국 정보기관의 이같은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정부를 설득하는 임무를 맡았던 제이 존슨 국토안보부 장관은 각 주의 선거 시스템을 '핵심 기간시설'로 정해 보안을 강화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권리를 침해하려 한다는 주지사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9월말이 되자, 오바마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선거 전에 러시아에 대한 공개적 대응을 하지 않기로 내부적으로 결론 내렸다. 선거 개입으로 보일 가능성을 걱정했고, 러시아가 페이크 뉴스를 퍼뜨리고 유출된 이메일을 폭로하는 것 이상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오바마 정부는 비공개로 러시아 측에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브레넌 CIA 국장, 수전 라이스 보좌관 등이 각각 러시아 정보기관 당국자 및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오바마가 지난해 9월 중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푸틴에게 직접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당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것. 푸틴은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는 한편, 미국이 러시아의 내부 정치에 개입하려 한다고 맞섰다.

존슨 국토안보부 장관과 클래퍼 DNI 국장이 러시아를 지목하는 성명을 낸 건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둔 10월7일에서였다. 애초 이 성명에는 푸틴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지만, 이후 삭제된 채 발표됐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러시아 정부가 최근 벌어진 정치 조직을 포함한 미국인 및 미국 기관의 이메일에 대한 공격을 지시했다고 본다. (...) 이러한 시도의 범위나 민감성으로 볼 때, 우리는 러시아의 최고위층이 이런 행위를 승인했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게다가 이 성명은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신문 마감시간에 맞춰 언론 노출을 최대화 하기 위해 오후 3시30분경에 성명을 발표했지만, 그날 오후 4시경 워싱턴포스트가 트럼프의 저급한 성적 발언이 담긴 녹음파일을 공개했기 때문. 그로부터 또 30분쯤 지난 시점에는 위키리크스가 존 포데스타 클린턴 선거대책위원장의 이메일을 폭로했다.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던 10월31일, 미국 정부는 마지막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핵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설된 비밀 연락 수단을 통해서였다. 미국 측은 러시아의 대선 개입은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는 뜻을 전달했다. 러시아는 선거가 끝난 다음날에야 의혹을 부인하는 답장을 보냈다.

선거일이 점점 다가오자 러시아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을 주장하던 관계자들도 행동에 나섰다. 특히 시리아 평화협정 등을 통해 러시아에 대해 '비둘기파'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존 케리 국무장관은 당시 누구보다 강력한 '매파'로 변신했다.

케리의 최측근들은 경제제재 등의 대응책을 담은 '액션 메모'를 작성했고, 케리는 이를 승인한 뒤 이를 논의할 회동을 갖자고 백악관을 설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라는 응답이 돌아왔다.

결국 "러시아에 대한 어떠한 처벌도 없이 선거일이 다가왔다"고 WP는 전했다.

선거 결과는 백악관에 충격을 안겼다. 한 전직 정부 관계자는 "백악관은 매우 당황했고 충격에 빠졌다"고 증언했다. "특히 국가 안보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곧바로 '와우. 우리가 이걸 잘못 처리한 건가'라는 자성의 기운이 감돌았다."

몇몇 관계자들은 선거 이후 백악관의 분위기가 "장례식장 같았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12월이 되자, 오랫동안 대책 마련에 관여했던 이들의 사기는 저하됐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오바마의 명령으로 미국 정보기관들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과거 사건들 중 자신들이 놓쳤던 것이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

벤 로드 전 국가안보부보좌관은 DNC 이메일 침투는 애초 국무부와 백악관을 겨냥했던 러시아의 과거 해킹과 같은 부류의 사건으로 취급됐다고 말했다.

"많은 면에서... 우리는 이 사이버공격을 다루면서 우리 사이버 기반시설을 지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 때, 다른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해킹한 자료를 유출하고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고 페이크뉴스를 유포하면서 러시아는 훨씬 더 큰 게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로드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우리는 실시간으로 그 모든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실패했다"며 "그리고 많은 면에서 사건의 전체 그림은 아직 채워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감한 정보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했다. (워싱턴포스트 6월23일)

오바마는 12월말에 발표된 러시아에 대한 제재조치를 승인했다. 외교관 35명 추방, 미국 내 러시아 공관시설 폐쇄, 해킹 관련 기관 및 개인에 대한 경제 제재 등의 조치가 담겼다.

그러나 당시의 이같은 조치는 대책 마련 논의에 동참했던 미국 정부 관계자들조차 효과가 제한적인 '상징적 조치'일 뿐이라고 생각할 만큼 약한 수준의 대응이었다.

오바마의 최측근 관계자는 당시 정부의 대응을 변호했다고 WP는 전했다. 이들은 보고를 받은 지난해 8월은 위키리크스로 정보가 전달되는 걸 막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고 밝혔다. 또 여러 차례 러시아 측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 러시아의 추가 작전을 막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들은 조치가 미흡했다며 후회했다. 특히 정치적 논란으로 이 문제가 다뤄지는 걸 우려했던 오바마 정부의 대응이 정반대의 효과를 낳았다고 본 이들도 있었다. 국가안보 위협이라는 관점에서 원칙대로 대응했어야 했지만, 거꾸로 정치적 상황에 대책이 이끌려갔다는 것.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오바마 정부에서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던 마이클 맥파울은 WP에 "제재조치는 (러시아가 저지른) 범죄의 크기에 안 맞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우리의 주권을 위협했고, 대통령 선출이라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신성한 행위에 개입했다. 러시아는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렀어야 한다"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대응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이 아직 유효한지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오바마는 또한 이전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비밀 작전을 승인했다. 러시아와의 충돌이 격화될 경우 터뜨릴 수 있는 '디지털 폭탄'으로 러시아 기반시설에 사이버 무기를 심어두는 것. 오바마가 승인한 비밀 이 프로젝트는 오바마가 퇴임할 때 쯤에는 여전히 계획 단계였다. 이걸 수행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6월23일)

오바마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조치를 발표한 12월29일,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에 내정된 마이클 플린은 러시아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제재조치가 머지 않아 해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화 사실을 숨겼다가 이후 정부 출범 3주 만에 사임했다.

제재조치가 발표된지 일주일 뒤인 1월6일, 오바마가 승인한 보고서가 공개됐다. 푸틴이 트럼프의 당선을 돕기 위해 미국 대선 개입을 직접 지시했다는 결론이 담겼다.

트럼프는 당시 이에 대해 "대선 결과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러시아는 이 보고서를 조롱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국제 #도널드 트럼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미국 #미국 대선 #버락 오바마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