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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도시재생에서 삭제되는 '퀴어의 역사'

종로는 다양한 집단들의 결이 켜켜이 얽혀 만들어진 혼종성(hybridity)의 공간이다. 악기 상가와 귀금속 상가 상인들, 쪽방촌 주민들, 노인과 외국인, 그리고 성소수자. 그 중 누구도 이 혼종의 공간에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공의 재생 계획은 입맛에 맞는 존재만을 지역 재생의 자산으로 선별해 다소 과장스럽게 전시함으로써 나머지 존재들은 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에도 성소수자는 없다. 우리의 생활 터전 사방이 '재생'되고 있는데, 정작 성소수자 공간은 그 과정에서 떨어져나가 마땅할 흉터 딱지가 되고 있다. 1980년대 올림픽 개최를 위해 보기 싫은 것들을 '도시 미화'라는 이름으로 감추고 내쫓았던 배제의 공간 정치를 지난 세기만의 일로 생각할 수 없는 까닭이다.

  • 친구사이
  • 입력 2017.06.26 11:00
  • 수정 2017.06.26 11:04
ⓒ친구사이

글 | 원근(사회학 연구자), 윤애(지리학 연구자)

종로가 변하고 있다.

변화의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가운데 지난 1월, 종로3가역 5번출구 앞 모텔 공사장에서는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종로의 랜드마크와도 같았던 오래된 숙박 업소가 일시에 철거되는 장면과 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는, 종로를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던 여러 남성 성소수자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예쁘게 차려입고 친구와 애인을 만나러 다니던 친숙한 길에는 낯선 이름이 붙었고 멀쩡한 보도블럭이 뒤집혔다. 주거지라 생각해 늦은 밤에는 예의상 가지 않았던 익선동 골목에는 하나같이 '힙'하고 낯선 가게들이 들어섰다. 동네를 오가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비성소수자 커플들을 마주치는 일이 '너무' 잦아진 것인데, 이 마주침이 신경 쓰이는 건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글에서는 종로 일대의 변화가 동반한 집단적 위기감의 진원을 짧게나마 짚어보려 한다. 위기감은 한편으로는 어둡고 조용한 주택가였던 익선동 골목의 변신으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선별과 배제의 도시계획으로부터 나온다. 변화는 늘상 일어나지만, 최근 3년 사이 종로3가에 찾아온 변화가 우리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변화가 먼저 가시화된 곳은 익선동이었다.

1980년 이래 익선동과 낙원동에서 개업한 가게를 통틀어 법인이라면 이비스앰배서더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어느 프랜차이즈 카페의 직영점뿐이었을 정도로, 그 수가 적었다. 반면 2014년 이후 '주식회사 oo'들이 조용했던 주거지에 가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미 대중적으로 꽤 알려진 '주식회사 익선다다', '주식회사 이태리총각'에서부터 '브랜드네트웍스(주)', '금보개발 주식회사', '(주) 창화당', '유한회사 테이스티로드', '(주)별천지에이'까지, 모두 2014년 1월에서 2017년 5월까지 이 지역에 가게를 낸 법인들이다(자료출처: 서울시정보소통광장).

이들 법인이 선택한 입지를 살펴보면 5호선 종로3가역 출구 북쪽, 그러니까 오래도록 주거지로 이용되던 익선동 166번지에 밀집해 있다(〈그림 1〉). 도심부 한옥 밀집지의 잠재력을 발견한 '주식회사'와 개인들이 앞다투어 이곳에 들어왔다. 변화상은 부동산 매매 추이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익선동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 지정이 해제된 2014년 이후 166번지와 인근 지역의 부동산 매매 횟수가 치솟은 것이 특징적이다. 2011년 한 해 동안 매매된 부동산의 제곱미터당 평균 가격은 798만원, 2016년에는 1,589만원을 기록했다(자료출처: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그림1. 낙원동과 익선동의 부동산 매매 추이(2011~2016)

그림 1.의 거리들은 거리조성사업들이 진행 중이거나 예정되어 있는 곳들이다. 종로17길에는 일명"락희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르신 친화거리를 내세운 것이다. 돈화문로는 조선시대 경관을 따서 "전통문화체험거리"로, 삼일대로는 3.1운동 관련 공간으로 조성된다. 종묘 옆 서순라길은 "귀금속 특화 공예창작거리"로 포차가 많은 돈화문로11길는 "신흥문화 재창조 지역"(일명 버스킹거리)이 될 예정이다.

성소수자 역사는 지워진 서울시의 '역사인문재생계획'

익선동의 변신 못지 않게 성소수자들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서울시와 종로구의 도시재생계획이었다. 낙원동 일대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당시 도심재개발 사업지구로 지정되었고, '전면 철거 재개발' 방식은 당시부터 종로의 성소수자 공간에 대한 위기감으로 표출된 바 있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장병권씨 기고를 참조 http://lgbtpride.tistory.com/69). 하지만 개발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충돌로 추진이 지지부진하며 개발은 10년 가까이 진행되지 않았고, 이 기간 동안 우리는 평종과 주종의 평화로운 사이클을 지켜낼 수 있었다. 결국 서울시는 난개발을 막고 보전할 것은 보전한다는 취지 아래 낙원동을 재개발 지역에서 해제시켰다.

오래지 않아 위기는 재개발 대신 "재생"이란 이름으로, 종로에 다시 찾아왔다. 낙원동 일대에 약 170 억원 예산의 '역사인문재생계획'이 단계적 사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사업에 따르면 몇 개 도로에서는 '역사적 콘텐츠와 분위기'를 부각시킨 전통 테마 경관이 조성된다. 이를테면 돈화문로는 왕이 행차했던 '왕의 길', 서순라길은 '귀금속 특화 공예창작거리'가 되며, 낙원상가 동쪽 포장마차 거리는 '버스킹이 열리는 음악거리'가 된다. 친숙하던 거리에는 '송해길', '락희거리' 같은 이름이 붙었다.

행정편의적 도시계획과 장소마케팅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만,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곳에 수십 년 동안 터전을 일구고 종로의 장소성을 형성한 주체인 성소수자 집단의 존재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역사를 살린다는 도시계획에서 성소수자의 도시사(史)는 통째로 삭제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 서울시의 '역사인문재생계획' 기자설명회 영상 보기

그림 2. '락희 거리'의 도로공사 현장 (2017년 5월 11일)

종로는 다양한 집단들의 결이 켜켜이 얽혀 만들어진 혼종성(hybridity)의 공간이다. 악기 상가와 귀금속 상가 상인들, 쪽방촌 주민들, 노인과 외국인, 그리고 성소수자. 그 중 누구도 이 혼종의 공간에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공의 재생 계획은 입맛에 맞는 존재만을 지역 재생의 자산으로 선별해 다소 과장스럽게 전시함으로써 나머지 존재들은 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에도 성소수자는 없다. 우리의 생활 터전 사방이 '재생'되고 있는데, 정작 성소수자 공간은 그 과정에서 떨어져나가 마땅할 흉터 딱지가 되고 있다. 1980년대 올림픽 개최를 위해 보기 싫은 것들을 '도시 미화'라는 이름으로 감추고 내쫓았던 배제의 공간 정치를 지난 세기만의 일로 생각할 수 없는 까닭이다. 배제적인 도시재생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은 상상된 전통의 증강현실일 것이고,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지난 수십 년 간 여기 살아 숨쉬던 혼종성의 역사일 것이다.

'비가시성'은 종로 성소수자 공간 입지의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이들 공간은 종로3가라는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대로변에서 한꺼풀 들어간 골목에 밀집해 있고, 밤에는 공동화 현상으로 오가는 이가 줄어든다. 한마디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낡은 건물에 가게 이름만 덩그러니 걸려있는 성소수자 공간들의 비가독성도 외부 공간으로부터의 버퍼 역할을 했다. 비성소수자들에게는 알 수 없기에 선뜻 들어서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데 요새 소위 '힙한' 가게들도 간판 이름만으로는 어떤 가게인지 잘 알 수가 없어서인지 비성소수자 커플들이 이반바에 발을 들이는 일이 늘어났다. SNS를 애용자라면 남성 성소수자들이 익히 알던 이반 술집과 레스토랑이 이성애자들의 블로그에 '맛집'으로 소개되며 사진이 올라온 일을 기억할 것이다. 포장마차도 이제 서울에서 보기 힘들어진 명물이라며 관광 책자에 소개된다. 이제는 해가 진 낙원동을 걷는 이들 우리만이 아니다. 다양한 존재들이 '맛집'과 포장마차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종로가 '재생'되면서 오래간 유지되던 성소수자 공간의 비가시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소수자가 사회적 편견에 맞서고 있는 사회에서라면 비가시성에 대한 침투가 폭력적이지 않기가 어렵다. 재생이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도시 공간을 함께 전유해 온 여러 동등한 주체들 중 하나로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사회적 성숙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환대로부터 사회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반 세기 전에 주창한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를 떠올려본다. 도시 환경과 자원들에 개인이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를 넘어서, 우리가 집합적 주체로서 도시를 향유함으로써 도시의 변화 과정에 참여하고 살아갈 권리이다. 도시권 논의가 다시 떠오르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권리의 주체로 퀴어를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 여전히 아쉽기에, '도시에 대한 퀴어의 권리(Queer right to the city)'를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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