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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유감

꽃보다 누나편이 나가고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는 크로아티아 여행이 붐을 일었었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교회 권사님을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서 마주쳤던 적도 있었다. 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라오스 방비엥이 강촌 같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은 온 적도 없는 미국 친구가 방송에 나온 라오스 리조트에 꽉 들어찬 한국 사람 이야기를 할 정도니 말 다했다. 한 번쯤 여행을 왜 가는지, 어디로 가면 좋을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방송에 나와서, 남이 가니 나도 가는, 여행조차 군중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아 조금은 유감이다.

글 | 신혜은 (TAKE OFF 편집장)

요 며칠 팔로잉 하고 있는 현직 승무원의 길리 휴가 사진을 재밌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젯밤 윤식당 사진이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내용인즉슨, 길리 트라왕안에 촬영차 만들었던 윤식당이 정말 윤식당으로 다시 개점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한국 사람이 그걸 사서 한식당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며칠을 지나다녀도 오픈을 할 듯 말듯 준비만 하고 있어서 언제 문을 여는지 물어보면 매번 내일이라는 답만 돌아온다 했다.

현직 승무원이 올린 길리 트라왕안의 윤식당 사진. 방송이 종료 된 후에도 외관 모습은 그대로다.

이야기를 들으며 몇 해 전, 아직 윤식당이 시작하기 전에 길리섬을 다녀온 게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 생각은 방송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방송이 끝난 지금은 더 확실해졌다. 이 작은 섬은 지금 한국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으니.

예전엔 사진 한 장 보고 무작정 저곳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으로 여행 정보를 찾고 책을 찾아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도 보고 그리하여 마침내 여행을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아말피 해변도 아직 동양사람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때 다녀왔었다. 그곳을 가게 된 것도 우연히 알게 된 호주 작가 아만다 태버러의 책 〈하늘빛 아말피를 걷다〉의 표지를 본 후였고, 니스의 에즈빌라쥐를 간 것도 무라카미 류의 책 한 구절을 읽고 나서였다. 거기서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연히 보게 된 책 한 구절, 사진 한 장.

윤식당 방송 포스터 (출처, tvN)

지금처럼 여행 방송이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요즘 방송가에는 여행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그중 대부분은 먹고 노는 게 거의 다지만, (여행이 그거 빼면 뭐가 있냐, 라고 묻겠지만 먹고 놀자고 가는 게 여행이 아님은 잘 알지 않는가.) 요즘 사람들은 그 놀고 먹는 여행 프로그램의 환상적인 화면을 보고 여행을 꿈꾼다.

다시 길리 얘기로 돌아가자면 길리섬은 인도네시아의 아주 작은 섬으로, 길리 아이르 Gili Air, 길리 메노 Gili meno, 길리 트라왕안 Gili Trawangan 세 개의 섬이 나란히 붙어 있다. 길리섬은 발리나 롬복 같은 본섬도 아니고 롬복의 북서쪽에 붙어 있는 부속 섬으로, 우리로 치자면 제주도에 붙어 있는 우도나 마라도 같은 섬인 셈이다.

길리 트라왕안의 선착장

발리에서 두 시간, 롬복에서 30분 배를 타고 들어간 섬은 두어 시간이면 섬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무료함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천국이겠지만 그걸 못 견디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곳일 수 있다. 물론 섬 어디에나 하얀 모래사장이 깔린 해변이 있고 바다거북과 만타가오리를 볼 수 있는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도 있고 저렴한 물가에 싱싱한 해산물도 먹을 수 있지만 그 외에는 그야말로 자연과 벗 삼아 지내야 하는 곳인 거다.

번듯한 리조트도 괜찮은 클럽도 없어 저녁 식사를 끝내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조용한 바닷가에서 물소리를 듣고 쏟아져 내리는 하늘의 별을 감상하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잠을 깨는 곳. 작은 섬이다 보니 물 사정, 전기 사정이 좋을 리 없다. 물과 전기를 롬복에서 끌어 쓰고 있어 이따금씩 끊기는 건 감수해야 한다. 도로엔 차 없이 우마차가 다니고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21세기 최첨단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현대사회의 무언가를 기대하기엔 거리가 먼 섬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섬의 매력이다.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섬.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서 헐벗고 다니는 관광객과 하루 종일 바닷가를 배회하는 일상이지만, 작은 섬에서 뭘 더 봐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쫓기지 않고 하루를 허비하듯 보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곳이니 뭔 설명이 더 필요하랴. 그렇게 한참을 보내도 돌아오는 길은 늘 아쉬운 듯 모자란 감이 드는 게 또 여행이니, 한적함을 찾아 떠나기엔 제격인 섬이다.

그런데 이 작은 섬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윤식당'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그것. 바닷가에 살면서 식당이나 혹은 카페나 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 프로그램은 호기롭게 별일 아닌 듯 실천해버렸다. 티비 앞에 앉은 사람들은 저 멀리 한쪽에 밀어놓은 꿈을 떠올리며 내 가게인 냥 울고 웃었다. 그때부터 윤식당이 있는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길리 트라왕안은 마라도보다 친숙한 섬이 되었다.

지난 징검다리 휴일이 있었던 현충일에도 꽤나 많은 한국 사람이 다녀갔다고 한다. 아직 롬복으로의 직항이 없는 우리나라에 롬복 직항이 곧 생길 거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긴 예전 '꽃보다 누나'가 방송 된 후, 크로아티아 전세기를 띄운 적도 있으니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만은 아닌 듯 싶다.

그때 우리 가족도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갔었다. 크로아티아 여행은 엄마의 제안으로 갑작스레 결정됐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어도 엄마가 어딜 가고 싶다고 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꽃보다 누나편이 나가고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는 크로아티아 여행이 붐을 일었었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교회 권사님을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서 마주쳤던 적도 있었다. 그 후로도 크로아티아 여행 내내 가는 곳마다 꽤 많은 한국사람을 심심찮게 마주쳤다. 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라오스 방비엥이 강촌 같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은 온 적도 없는 미국 친구가 방송에 나온 라오스 리조트에 꽉 들어찬 한국 사람 이야기를 할 정도니 말 다했다.

여행은 분명 좋은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를 성장시키는 시간이기도 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를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쯤 여행을 왜 가는지, 어디로 가면 좋을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방송에 나와서, 남이 가니 나도 가는, 여행조차 군중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아 조금은 유감이다.

* 이 글은 TAKE OFF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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