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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초 학교 폭력 은폐 사건으로 드러난 '법의 사각지대'

  • 박세회
  • 입력 2017.06.23 06:22
  • 수정 2017.06.23 06:25

서울 숭의초등학교가 대기업 총수 손자와 유명 연예인 아들이 가해자로 연루된 학교폭력 사건을 은폐·축소하려던 정황이 포착되면서 교내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의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학폭위 위원들이 전원 내부위원으로 구성될 경우 학교폭력에 따른 학교 명예 실추를 우려하거나 가해 학부모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사안을 은폐·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위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져 처분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라는 시각이 있다.

현행 법령상 숭의초와 같은 사립학교들은 학교폭력 처리절차에 문제가 있어도 관할 교육청이 학교 구성원의 징계를 강제할 수 없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가볍거나 무겁거나…처벌 오락가락 학폭위

학폭위는 교내 학교폭력 문제를 학교 차원에서 처리하기 위한 자치기구다. 학교폭력 문제가 피·가해자간 법적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줄이고 문제를 학내에서 해결하자는 취지로 지난 2012년 도입됐다.

학폭위 위원은 5~10인으로 구성한다. 위원의 과반수는 학부모 전체회의에서 선출한 학부모 대표를 위촉해야 한다. 교원, 법조인, 경찰, 의료인 등도 외부전문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학부모 위원 과반수'는 필수 사항이지만 외부전문위원 위촉은 강제 사항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숭의초 학폭위 위원은 학부모 4명, 교감 1명, 교사 2명으로 구성됐다. 애초 외부전문위원으로 학폭위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변호사는 자문 역할만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전원 내부위원으로만 구성된 셈이다. 물론 법률 위반 사안은 아니다.

전창신 서울시교육청 감사팀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숭의초등학교 앞에서 대기업 총수 손자와 연예인 자녀 등이 연루된 학교폭력 사건 감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부위원으로만 위촉해도 무방한 허술한 법적근거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희영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분쟁조정팀장은 "법률상으로 학폭위 위원에 외부위원이 몇명 이상 위촉돼야 한다는 근거가 있었다면 이번 숭의초 사례도 처리절차가 좀 더 객관적으로 이행될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대개 학교 현장의 학폭위 위원 구성을 보면 적은 인원이라도 외부전문위원을 두는 사례가 상당수인데 숭의초 사례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학폭위 위원 구성 방식이 사안의 은폐·축소를 야기하는 불씨가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부위원으로만 구성되거나 전문위원이 극소수만 포함된 경우 공정성·전문성 결여 문제도 불거진다. 학부모나 교사가 사안을 공정하게 처리할 만한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피·가해자가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나 솜방망이 처벌 혹은 지나친 조처 등이 나오는 게 대표적이다.

이번 숭의초 사례도 피해자가 근육세포가 파괴돼 녹아버리는 횡문근융행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는 등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주장하고 있지만, 학폭위는 가해 학생들에게 사과 권고만 하는 등 아주 가벼운 처벌만 내리는 바람에 피해자 학부모가 거세게 항의한 바 있다.

학폭위 의결 불복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피·가해 학생이 교육청이나 각 시·도 등에 재심을 청구한 건수는 지난해 1299건에 이른다. 전년보다 320건이나 늘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학폭위를 교육청 산하 지역 교육지원청이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서울지부 등은 지난 22일 11개 지역교육지원청에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를 배치할 수 있도록 교육부에 관련 법 개정을 요구했다.

아예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에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동섭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달 학교마다 처분이 다른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를 골자로 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잘못 있어도 징계할 수 없는 법 사각지대 해소해야"

이번 사례를 계기로 숭의초와 같은 사립학교는 교육청이 교원의 징계를 강제할 수 없다는 법의 맹점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사립학교 교원의 징계 권한은 학교법인에 있어서다. 숭의초 박모 교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육청은 안 무섭다"고 말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은 특별장학이나 감사를 통해 학교폭력 처리절차상 문제가 발견되면 학교 법인 측에 관계자들의 징계를 요구할 순 있지만 강제할 권한은 없다"며 "실질적으로 제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려면 반드시 국회를 거쳐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계 관계자는 "잘못이 분명하게 드러났는데도 법령상 문제로 처벌할 수 없다면 새 정부가 슬로건으로 내세운 공정한 사회 구현은 어려울 것"이라며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해 학교폭력을 은폐·축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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