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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지지율 언제까지 문제없을까?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6월11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지난 한 달간 국정운영에 대해 응답자의 89.4%가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한때 가장 높은 지지(83%)를 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을 깼다.

김영삼 정부는 취임 1년차 1분기(1993년 3월) 지지율 71%(한국갤럽 조사 기준)를 시작으로 2분기(6월) 83%, 3분기(9월) 83%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까지 취임 초 지지율을 가장 높게, 가장 길게 이어간 정권이다.

1998년 3월 71%로 시작한 김대중 정부의 지지율이 2분기(6월) 62%, 3분기(9월) 56%로 내려앉은 것을 보더라도 김영삼 정부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 역사에서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취임 첫해 김영삼의 탈권위 행보

김영삼 정부가 초기에 실시한 대대적인 개혁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 한 달 동안 탈권위, 부정부패 청산(청와대 특수활동비 최소화), 역사 바로 세우기(<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국정교과서 폐지) 등의 정책을 쏟아낸 것과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초 문민정부로서 권위주의 시대의 적폐를 청산하는 작업을 전방위적으로 실시했다. 취임 첫날 정오부터 통행금지 구역이던 청와대 앞길과 경복궁 후문을 개방하고 인왕산 출입을 허용했다. 청와대 안에 있던 골프 연습장과 공항의 대통령 전용 시설도 철거했다. 청와대 식단을 간소화해 자신이 좋아하던 ‘칼국수’를 메뉴로 넣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취임 뒤 보름도 되지 않은 1993년 3월8일에는 하나회 회원인 김진영 육군참모총장 등을 전격 경질해 12·12 사태의 중심에 있던 하나회 숙청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와 동시에 대통령 본인부터 정치자금을 전혀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자진해서 공개하는 등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섰다. 이후 공직자윤리법 개정으로 공직자의 재산등록 공개가 이어지며 부정부패 의혹이 짙은 공무원 3천여 명이 구속·파면·징계되고, 국회에서도 의윈직을 사퇴하는 의원들이 생겨났다.

군사정권 아래 왜곡된 역사도 재평가했다. 4·19는 ‘의거’에서 ‘혁명’으로, 5·16은 ‘혁명’에서 ‘군사쿠데타’로 바뀌는 등 명칭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 결과, 한때 대통령의 지지율이 95%까지 치솟고 10대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 실시 등 여러 파격적인 개혁 조치를 추진할 수 있었다.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이 김영삼 정권 초기의 경험을 사례로 들며 “가장 다수의 지지를 받는 이슈로 시작하고 서민 생활에 맞닿은 개혁 의제를 던지는 것이 초기 100일 동안 할 일”이라고 조언한 것은 이런 이유다.

야당, 인사와 추경예산안 발목 잡아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김영삼 정부 사이엔 결정적으로 큰 차이가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는 김영삼 정부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정치적으로 훨씬 엄혹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으로 보수 여권 세력과 손잡고 당선됐다. 그로 인해 집권 초 정치적으로 안정된 ‘여대야소’ 구도를 가질 수 있었다.

또 그의 평생 라이벌이던 김대중은 1992년 12월 대선 선거 결과 확정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출국했다. 국회에서 각종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기 매우 좋은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반대로 문재인 정부는 현재 120석을 가진 소수 여당이다. 자신의 힘만으로 단 하나의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는 처지다.

당장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는 데 발목이 잡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12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추경안 통과를 위한 국회 시정연설을 했다. 그만큼 추경안 처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날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실직과 카드빚으로 힘들어하다 목숨을 끊은 한 청년의 사연을 전하며 일자리 추경안의 필요성을 호소해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정작 야당들은 이를 외면했다. 자유한국당은 시정연설 뒤 논평을 내어 “진정성 있는 ‘협치’ 의지가 의심되는 일방적 요구였다”며 “국가재정법에 어긋나는 추경에 결코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힌다”고 못박았다. 국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도 “대통령의 국회 방문과 소통 행보가 빈 수레만 요란했다”며 평가절하했다.

줄줄이 남아 있는 인사청문회도 난맥상이다. 문 대통령은 6월15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국회에 다시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통령이 그(강 후보자)를 임명하면 더 이상 협치는 없다거나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까지 말하며 압박하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말하며 야당의 반대에도 강 후보자를 임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임명 찬성’ 의견이 우세(62.1%)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정면 돌파다.

이에 대해 야당은 “야 3당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이럴 거면 인사청문제도 자체를 폐기하라”(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고 반발했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음주운전 등도 이후 치러질 인사청문회의 걸림돌이다.

김영삼 실패에서 교훈 얻어야

물론 지금까지 여론은 야당에 결코 좋지 않다. 국민들에게 야당의 반대가 정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하기 위한 견제와 감시라기보다는 ‘존재감 표출’을 위한 발목잡기라고 받아들여지는 탓이다. 그로 인해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분석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시대적 정신에 입각한 의제를 던지고 그걸 실천하는 방향성이 분명하기 때문에 지지율은 한동안 상당한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임기 끝까지 지지하겠다’는 여론이 57%에 달한다는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 지지율이 한동안 유지되더라도 야당과의 갈등이 계속되면 지지율이 한 차례 조정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여부는 개혁을 실현해 국민 삶의 행복도를 높이는 데 달려 있다. 정책적 효과를 국민이 실감하지 못하면 지지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정책의 성공 여부를 떠나 정책 가동을 위한 ‘법안 통과’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당장 야당이 정부에 협조하지 않는 것에 국민의 불만이 높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정부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책임을 정권에 묻는 기류가 형성될 수 있다”고 했다. 권순정 실장도 “국민이 효과를 직접 느끼는 시점이 있다. 개별 정책마다 피드백 기간이 다르지만 대략 (집권 뒤) 1년의 시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도 집권 1년차 4분기(1993년 12월) 때부터다. 김영삼 정부의 지지율은 1년차 3분기 83%에서 3개월 뒤 4분기에 59%로 급락했다. 표면적 이유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인한 쌀시장 개방 등이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 이유는 ‘날치기 시도’ 등 국회를 무시한 대통령의 독주였다.

1994년 2월 한겨레가 김영삼 정부 1년을 맞아 기획한 전문가 좌담에서 임혁백 당시 이화여대 교수(현 고려대 교수)는 “정치 개혁의 주체가 대통령 한 사람으로 한정됐다는 게 문제다. 이른바 ‘인치’ 논쟁이니 문민독재니 하는 논란이 일어난 것은 정치개혁이 제도화하지 못하고 대통령 한 사람의 충격요법식 결단에 의해 추진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삼 정부는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싼 혼선, 외환위기 촉매제가 된 한보철강 부도, 차남 김현철씨 구속 등을 겪으면서 지지율이 폭락했다. 임기 막판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까지 맞아 역대 최악의 대통령 지지율(6%)을 기록하며 정권을 마무리했다.

문재인 정부가 불행했던 김영삼 정부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없다. 보수 기득권 세력을 등에 업고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과 촛불시위를 통한 전 국민적 지지를 받고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의 성격부터 근본적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실패한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특히 여론 지지만 믿고 가기엔 정권을 둘러싼 정치 상황이 너무나 엄혹하다.

야당과 강대강이면 여당·청와대 부담

전문가들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야당과의 관계 설정에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지금까지 대통령 행보 자체는 나무랄 데 없다. 그런데 조금씩 우려되는 부분은 과연 이런 식으로 국회와의 관계를 계속 끌고 갈 것인지다. 장관은 대통령 권한으로 임명할 수 있지만 법안 처리는 야당의 협조 없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협치나 연정 등 (야당이 협조할 만한) 명분을 주지 않으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아무리 높아도 야당이 법안에 계속 반대할 수 있다. 양쪽이 저렇게 강대강으로 갈 때 누구에게 정치적 부담이 더 크겠나. 집권여당, 청와대 쪽이다”라고 우려했다. 특히 고민해야 할 것은 국회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과의 관계 설정이다. 최 교수는 이 지점에서 정부·여당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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