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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 아이들한테서 모유를 빼앗았나

모유 수유와 단유의 고통, 등골이 휘는 분유값, 게다가 젖먹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낯선 사람들까지 '모유 안 먹이냐?'는 질문을 마구 던지죠. 모유 수유는 말 그대로 개고생입니다. (다들 엄마한테 잘합시다.) 목은 꺾어질 듯 아프고, 손목은 부러질 듯 아프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픈데다 결정적으로 잠을 못 자니까요. 출산의 고통은 시한부지만, 아이가 태어나 첫 두달 동안 하루에 열번씩 젖을 물릴 때의 심정은 '여기가 무간지옥이구나' 싶더군요.

[장하나의 엄마 정치] ⑦ 모유 수유의 정치학

두리를 갖자마자 저는 자연스럽게 소위 '완모'(완전 모유 수유)를 결심했습니다. 임신·출산·육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모유 수유가 힘든 일이란 것도 까마득히 몰랐었죠. 그냥 아이를 낳으면 젖은 저절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산의 고통은 시한부지만, 아이가 태어나 첫 두달 동안 하루에 열번씩 젖을 물릴 때의 심정은 '여기가 무간지옥이구나' 싶더군요." 집에서 두리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장하나 전 국회의원.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모유 수유 방해' 공모?

제가 완모를 결심한 건 저 자신이 엄마 젖을 못 먹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친정엄마는 저를 낳고 바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수유를 포기했고, 그래서 어린 시절 감기를 달고 사는 저를 보며 늘 자책하셨다고 합니다.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저는 24개월 수유를 꿈꿨답니다. 꿈은 이루어졌을까요?

'한국 여자들은 가슴이 처질까봐 모유 수유를 안 한다더라.' 저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모유 수유를 할지 말지는 온전히 엄마가 선택할 문제이지만, 정부와 의료계와 산업계가 모유 수유를 방해하고 있다면? 누군가 우리 아기들에게서 엄마 찌찌를 빼앗고 있다면? 그건 전혀 다른 문제겠죠.

여하튼 모든 책임은 엄마에게 전가됩니다. 모유 수유와 단유의 고통, 등골이 휘는 분유값, 게다가 젖먹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낯선 사람들까지 '모유 안 먹이냐?'는 질문을 마구 던지죠. 모유 수유는 말 그대로 개고생입니다. (다들 엄마한테 잘합시다.) 목은 꺾어질 듯 아프고, 손목은 부러질 듯 아프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픈데다 결정적으로 잠을 못 자니까요. 출산의 고통은 시한부지만, 아이가 태어나 첫 두달 동안 하루에 열번씩 젖을 물릴 때의 심정은 '여기가 무간지옥이구나' 싶더군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 모유 수유에 대해 아는 거라곤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장면이 전부였습니다. 아기 돼지들이 젖을 알아서 먹고, 누워서 젖을 물리는 엄마 돼지는 한없이 평온해 보이는 장면 말이죠. 그러나 놀랍게도 인간의 신체는 수유하기에 적합하지가 않았습니다. 수유 경험이 없는 분이라면 지금 당장 본인의 가슴에 시선을 고정하고 10분만 그 자세를 유지해보세요. 아마 1분도 안 돼 목덜미가 뻐근해 올 겁니다. 자세도 자세지만 잠을 못 자는 건 정말 괴롭습니다. 모유 수유든 조제분유를 먹이든 아이가 백일이 되기까지는 2~3시간마다 밥을 먹어야 하니까 엄마들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고, 초주검이 되죠. 백일까지는 정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러나 남녀고용평등법 제18조의 2에 의해 배우자 출산휴가는 최대 5일, 유급 3일로 우리나라는 '독박육아'를 법제화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요. 운 좋으면 '친정 찬스'를 쓰고, 아니면 정신력으로 돌파하라는 거 외에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2주간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데 평균 230만원을 지출하고 나서, 또 한달에 300만원이 넘는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할 순 없으니까 결국 대부분의 엄마들은 '독박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물론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아빠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지만, 아빠는커녕 엄마도 육아휴직을 제대로 못 쓰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펴낸 '201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여성노동자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41.1%(비정규직 1.9%, 민간기업 34.5%, 공무원 75.0%)에 불과하고,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체 육아휴직자의 10%가 안 되니 '독박육아'의 책임은 법 집행 의지가 없는 고용노동부에 있었네요.

독박육아의 법제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1년 보고서 '가정을 위해 더 잘하기'(Doing Better for Families)에서 모유 수유가 자녀의 건강과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유방암, 난소암, 제2형 당뇨증, 산후우울증의 위험을 경감시키는 등 엄마의 건강 상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모유 수유는 고된 만큼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러나 한국 정부와 의료계는 모유 수유를 권장하기는커녕 오히려 훼방을 놓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를 보면, 한국 엄마들이 생후 1시간 이내에 초유를 수유하는 비율은 단 18.1%밖에 되지 않고, 생후 1주 동안 완모 하는 비율은 23.9%, 모유+조제분유 65.9%, 조제분유만 먹이는 경우는 10.2%로 나타납니다. 반면 퇴원 이후인 생후 2주부터 완모 하는 산모의 비율은 50.1%로 급증하는데요. 그러니까 엄마들은 완모를 원하는데 오히려 산부인과에서 출산 직후 조제분유 섭취를 조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드는 수치입니다. 아기들이 인공 젖꼭지를 접할수록 완모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병원에서 생후 1주 이내에 젖병을 물리는 일은 향후 모유 수유에 큰 방해물로 작용합니다.

모유 수유는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저절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성공적인 모유 수유를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죠. 우리나라에는 전담 조산사나 방문간호사 제도가 없기 때문에, 모유 수유에 대한 정보는 산후조리원이나 방문 산후관리사(도우미)를 통해 얻는 수밖에 없는데요. 문제는 이런 서비스를 대개는 비용 부담 탓에 2주 이상 받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산후조리·관리 서비스의 99%가 민간 영역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정보의 편차가 심하고 전문성을 담보할 수도 없죠.

예컨대 네덜란드의 공공 산후관리사(MCA)는 3년 과정의 직업 훈련을 통해서 양성됩니다. 반면 한국의 산후관리사는 아직 국가자격증이 없고, 민간자격증은 온라인 강의만으로도 취득할 수 있으니 높은 전문성을 기대하기 힘들죠. 모유 수유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디에 가야 할까요? 저도 처음에는 당연히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그러나 산부인과에서는 일반적으로 연고와 항생제 처방을 해줄 뿐 젖몸살을 풀어주거나 막힌 유관을 뚫어주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모유 수유를 교육하고 산모의 유방 관리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민간전문가(업체)들이 있더군요. 그런 직업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놀랍게도 1회 이용하는 비용은 한 시간에 무려 6만~7만원이나 됐죠. 저는 만 1년 동안 모유 수유를 했고, 단유 관리까지 포함해서 민간 유방 관리 서비스를 10번 이상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간호사 자격을 가진 분들이었지만, 국가에서 인정하는 의료 서비스가 아니므로 산모들은 의료보험은 물론 여타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는 국회의원 임기 중이었으니까 한번에 7만원씩이나 내면서 수유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요즘처럼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면 모유 수유를 진작 포기했겠죠.

우리나라도 보건소를 거점으로 산전·산후 관리를 책임지는 조산사나 방문간호사가 있어야 하고, 유방 관리도 당연히 공적 영역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국가자격증으로 복지부가 관리해야만 국가에서 지원하는 근거가 마련되겠죠.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수유를 안 할 수도 있고, 젖이 안 나와서 수유를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수유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 하거나, 돈이 많이 들어서 못 하는 일은 없는 게 맞지 않나요?

"저는 24개월 수유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1년간의 수유도 사실 너무 힘들었습니다. 몸만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수유 중인 장하나 전 의원.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총체적으로 분유 권하는 사회

저는 두리를 낳고 약 10주 뒤에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유축기를 검은색 카메라가방에 넣고 다녔죠. 낮 시간에 유축한 젖을 모유 저장팩에 얼려서 퇴근할 때 가져오는 겁니다. 그러면 남편이 끼니때마다 그걸 녹여서 젖병에 넣어 두리에게 먹이는 거죠. 그 일을 9개월이나 했으니 돌이켜 보면 어떻게 그러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내가 모유 수유에 너무 집착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된 일이었습니다.

업무 특성상 일정한 시간에 유축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매일 젖이 땡땡 불어서 아프고, 줄줄 새기 일쑤였죠. 그러나 아프고 옷이 젖는 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제때에 유축을 못 하니 결국 또 유관이 막히고 유구염이 재발하는 겁니다. 젖 구멍이 막히는 고통은 바늘로 쑤시는 것 같고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인데, 겪어본 엄마들이라면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겁니다.

하지만 이런 푸념도 한국 사회에서는 사치입니다. 국회의원이라도 되니까 사무실에서 유축 할 엄두라도 내지 어느 직장에 유축 할 장소가 있고, 보관할 냉장고가 있고, 유축 할 시간을 허락하겠습니까? 이건 사실 일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서면 맘 편하게 젖 먹일 장소가 하나 없다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죠. 사람들 앞에서 가슴을 내놓아야 하는지, 아이를 굶겨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지만 결국 세상에 등을 돌리고 주섬주섬 가슴을 꺼냅니다.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분유 권하는 사회가 맞습니다.

1981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모유 수유 대체식품 판매에 관한 국제규약'을 채택했고, 1990년 32개국의 정책결정자와 세계보건기구,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는 '모유 수유의 보호, 권장 및 지지에 관한 이노첸티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모든 여성이 모유 수유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의무를 지게 되었고, 모든 영아들에게 생후 6개월까지 모유만 먹일 것, 그리고 만 2살이 될 때까지 모유 수유를 지속할 것을 권장하고 있죠. 국제사회가 모유 수유를 정부의 역할로 인식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데 한국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합니다.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는 이를 위해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출생 직후 30분 이내에 첫 수유를 실시하고, 퇴원하기 전에 인공 젖꼭지·젖병을 사용하지 않고, 24시간 모자동실을 시행하는 등 '성공적인 모유 수유 10단계'를 실천해야 하고 무엇보다 조제분유 업체로부터 샘플과 지원을 받지 않아야만 합니다. 전세계에 2만여개의 인증기관이 있지만, 한국은 16곳(14개 병·의원과 2개 조산원)에 불과한 상황이고요.

아울러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는 여성 노동자가 복직 뒤에도 모유 수유를 계속할 수 있도록 '엄마에게 친근한 일터'도 지정하고 있는데요. 국내에는 단 29개 사업장(15개 민간기업과 14개 공공기관)이 전부입니다. 상황이 이 정도면, 한국 엄마들이 몸매 망가질까봐 모유 수유를 안 한다는 말은 완전한 허구라고 봐도 되겠죠?

20대 총선 당시 선거운동을 하다 보니 자연히 젖이 말랐습니다. 엄마 몸이 너무 피로하니 젖을 만들지 못했겠죠. 그래서 저는 24개월 수유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1년간의 수유도 사실 너무 힘들었습니다.

몸만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2015년 국정감사 때 정부세종청사에 출장을 갔습니다. 고용노동부 직원분에게 유축 할 장소를 물어보니 여직원 휴게실을 안내해주더군요. 사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나가면 보관상의 문제로 유축 한 젖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유축을 안 하면 가슴이 아프고 젖이 새니까 유축기를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하죠. 유축을 마치고 휴게실에 있는 냉장고를 무심코 열어봤는데 냉동실에 모유 저장팩이 여남은 개 늘어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반가운 마음이 들다가 '아, 이 사람(노동부 공무원)들도 모르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공무원 엄마들의 모유 수유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모유 수유를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의 공무원들이 모유 수유가 사실상 불가능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 개선에 좀더 힘써줄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죠. 공무원 육아휴직 사용률 75%, 비정규직 1.9%라는 수치만 봐도 저는 늘 치가 떨립니다.

KTX 화장실에서 젖을 짜며

세종시에서 올라오는 케이티엑스(KTX) 화장실 안에서 저는 또 유축을 했습니다. 덜컹거리는 기차 화장실에서 젖을 짜고 있자니 눈물이 나더군요. '이게 무슨 짓인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나중에 우리 두리한테 빚이나 물려주지 않으면 다행이지. 엄마는 물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엄마 젖은 두리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야.' 그렇게 잠시 궁상을 떨다가, '아니야, 역시 가난한 사람한테는 정치밖에 대안이 없어. 싸워서 복지국가 만들자. 그게 두리에게 주는 최고의 유산이다' 하고 화장실 거울을 보며 웃어줬습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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