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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못한 대접"이라는 말

8센티 모래를 걷어내면 화강암으로 구성된 경주로 바닥을 5톤의 충격이 오는 시속 60킬로 속도로 뛰니 어깨와 다리가 성한 놈이 없다. 통증 없는 말이 없고, 천지굴건염, 계인대염, 근육통으로 매일 치료받는다. 경주는 더욱 가혹하다. 죽을 힘을 다해 뛰지만, 기수들의 채찍은 멀리서도 들릴 만큼 처절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는 경주에서 매주 한두 마리가 부상으로 숨을 거둔다. 더 이상 경주가 불가능한 장애나 부상을 입어야 고통스로운 경마장을 떠날 수 있다. 산재율 100 퍼센트다. 경마장을 떠나면 더욱 불행한 삶이 기다린다.

  • 최현우
  • 입력 2017.06.21 12:41
  • 수정 2017.06.21 12:57
ⓒCarmen Martínez Torrón via Getty Images

단순한 질문인데 제대로 답하기 어려워 당황한 경험이 있는가? 예를 들면, 직장인에게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자네는 요즘 어떤 일을 하나?" 라고 물을 때, 팀장 위의 임원이 갑자기 "이 일이 왜 지금까지 안된 거야?"라고 물을 때 그렇다. 분위기가 두 문장 이상으로 답할 수 없고 상대는 진지하게 들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묻는 질문이다. 할 말은 많은데 간결하게 정리되지 않아 알아듣도록 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말보다 못한' 대접받다 끝내...1호 말마사지사의 죽음]

5월 29일 경향신문이 먼저 보도했고, 국정농단 보도로 가장 신뢰를 받는 방송에서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부산‧경남경마장에서 근무하던 말 관리사가 말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근무하다 마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와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말보다 못한 대접"이라는 제목을 뽑으려면 독자나 시청자들은 말이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실제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국민 일반은 이런 전제가 되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말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말에 대한 단순한 질문에도 나는 당황한다. 일반인은 말과 경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두 마디 이내의 짧은 대답을 기대하는데 반해, 내가 설명해야 할 내용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말 관리사는 조교사의 지시에 따라 마구간을 관리하고 말을 훈련하며 배식과 마사지, 행정업무를 수행한다. 사진출처: 한겨레신문

우선 "말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는 관리사의 처우는 어떨까? 경마장에는 마주(馬主)라는 사람이 있다. 경주마를 사서, 이를 관리하고 훈련하는 전문가인 조교사(調敎師)에게 맡겨, 상금이 걸린 경마 경주에 출전시키는 사람이다. 경마 상금이 수익이고, 경주마 구입비, 경주마 관리비용이 든다. 시행체인 마사회가 정한 비율로 마주가 받는 상금 중 일부를 조교사와 말 관리사의 급여로 지급한다. 조교사는 사전(辭典)적으로 말을 가르치고 길들이는 사람이다. 실제로는 더 많은 역할을 하는데 프로구단의 감독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10여 명의 말 관리사와 함께 선수인 말을 선발하여 훈련하고, 경주 작전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중소기업 사장의 역할이다. 말 관리사는 조교사의 지시에 따라 마구간을 관리하고 말을 훈련하며 배식과 마사지, 행정업무를 수행한다.

자살한 말관리사는 '○ 같은 마사회'라고 유서에 적었다. 왜 '○ 같은 마사회'일까? 해방 이후 마사회는 말을 소유하고 조교사와 관리사를 직원으로 고용해서 경마를 시행했다. 그러다 1992년 개인마주제를 시행하면서 마주가 경주마를 사서 조교사에게 말을 위탁하면 조교사는 말 관리사를 고용해서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조교사를 마사회 직원에서 개인사업자로 신분을 바꾸고 말 관리사는 조교사가 고용하는 형태로 변경했다. 하지만 마주와 조교사 말관리사의 면허와 징계, 조교사와 말관리사의 급여와 처우는 특별법인 마사회법에 따라 마사회가 정한다. 마사회는 경마에 관한 한 입법과 행정, 사법권을 가진 독재기관이다. 경마 시행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마주, 조교사, 말관리사에게 묻고 자신들은 무한한 권한만 누린다. 그래도 92년까지 마사회 직원이었던 서울경마장의 말 관리사는 조교사협회가 고용하는 체계를 택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기 때문에 고정급여의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급여의 안정성과 고용의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뒤늦게 개장한 부산‧경남경마장에서는 조교사가 말관리사를 개별적으로 고용하고, 급여 또한 조교사의 수입에서 지급하는 체계로 운영한다. 조교사의 해고통보 한마디로 직장에서 잘리고, 급여는 관리하는 경주마의 성적에 따라 변동이 크다.

문제가 된 부산‧경남경마장의 말관리사 대접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자. 최근에는 가끔 대졸 직원도 있지만, 말 관리사 대부분은 고졸 또는 그 이하의 학력이다. 조교사의 말 한마디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신분으로 일하는 사람이 모두 겪는 어려움이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32퍼센트,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비정규직이다. 말관리사의 급여는 월 463만 원, 연봉 5,500만 원 수준이다. 우리나라 공무원 월평균소득이 510만 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459만 원이니 낮은 수준은 아니다. 근무시간은 주 5일 새벽 4시경에 출근해서 12시까지 근무한다. 새벽잠이 많는 사람은 불편하지만, 오후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니 나쁜 조건은 아니다. 정년은 60세다. 특이한 것은 산재율이다. 한국 평균이 200명에 한 명 정도인데 경마장의 산재율은 200명에 28명으로 28배 높다. 이쯤되면 여러분이 보기에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열악한 근무조건인가?

경마장의 마구간은 80년대 지어진 시멘트 건물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들을 좌절하게 하는 것은 비교 대상이다. 에디오피아 하층민이 미국민의 평균 삶과 비교해서 비관하고 자살하거나, 마트 계산원이 잘 나가는 변호사나 의사의 삶을 비교하며 좌절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주위 비슷한 조건의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고 불만이나 울분을 느낀다. 부산‧경남 말관리사의 첫 비교 대상은 서울경마장 말관리사다. 급여와 산재율은 비슷하지만 부산‧경남처럼 조교사가 봉급을 떼먹는 경우는 없다. 부산은 조교사가 나가라고 하면 그날로 해고지만, 서울은 조교사협회가 고용하고 노동조합이 있어서 강제해고할 수 없다. 서울은 노동조합이 있어서 근무시간을 지킬 수 있지만 부산‧경남은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로 초과근무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마사회가 운영하는 같은 경마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처우와 근로조건이 이렇게 다르다면 누구나 불만을 느낀다. 더 나아가 전권을 가진 마사회는 이런 부산‧경남의 문제를 바로잡을 생각은 조금도 없고 오히려 서울의 말관리사 처우를 부산‧경남과 같은 조건으로 만들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으니 절망감은 더해진다. 두 번째 비교집단은 마사회다. 여름 한낮에는 36도 뙤약볕에서 인간의 신체 10배에 달하는 위험한 말을 끌고 발목까지 빠지는 모랫길을 몇 시간씩 걸어야 하고, 영하 10도 겨울 신새벽에는 극한의 고통을 겪으며 경주마를 훈련해야 하는 자신들에 비해, 또래의 특별한 능력도 없는 마사회 직원은 한여름에는 에어컨 아래에서, 겨울에는 난방 완벽한 사무실에서 일도 않으면서 출자기관 최상위연봉인 평균 9,000만 원 받으면서 정년을 보장받고 모든 것을 누린다. 눈앞에서 이런 꼴을 본다면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몇 년이 멀다고 말관리사와 기수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

이제 말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말은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부터 알아보자. 신라의 개국신화에서 보듯이 인류는 말을 신격(神格) 또는 최소한 인간과 같은 존재로 대우해왔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제우스 다음 서열인 포세이돈은 말의 신이다. 알렉산더대왕의 첫 번째 신하가 애마 부케필로스였고, 나폴레옹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애마 마랭고였다. 말에게는 여권이 부여되고, 글로벌통신사의 "올해의 체육인 선정"에는 말이 빠짐없이 포함된다. 다른 동물과 달리 말은 "가르친다"고 표현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조교사(調敎師)라 한다. 말에게는 지시하지 않고 말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돕는다고 하고 이를 부조(扶助, aids)라 한다. 백번을 양보해도 말은 고기를 취하기 위한 동물이 아니므로 최소한 반려동물로는 대접받아야 한다.

기사에 나오는 경마장의 말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해마다 1,500필의 말이 우리 땅에서 태어난다. 어미 말과 함께 한가롭게 초원을 뛰놀며 풀 뜯는 기간은 1년 6개월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경주마를 공개적으로 사고파는 경매에 나가기 위해 순치를 시작한다. "굴레를 씌우다", "재갈을 물리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 때 쓰는 말이다. 그 과정을 순치라 부른다. 어미 말과 이별하고 함께 뛰놀던 친구들과도 떨어져 비좁은 독방에서 생활해야 한다. 친구들은 극복해야 할 적으로 바뀌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글라디에이터, 전투사로 변신해야 한다. 몸매로, 혈통으로, 운동능력으로 마주에게 선택받아야 한다. 순치 과정을 견디지 못하거나 선택받지 못한 3분의 1은 그대로 도태된다.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삶을 마감하는지는 우리는 모른다.

경마장으로 오면 극한의 삶이 기다린다. 2.4m 몸으로 한 바퀴 돌기도 힘든 좁은 마구간에 24시간 갇혀 지낸다. 말은 본능적으로 동료 말과의 사회적 교류가 필요한 동물이다. 또 건강을 위해서는 매일 최소한의 운동이 필요한 동물이다. 종일 풀을 뜯도록 만들어진 동물이다. 선풍기도 없이 여름 더위, 난방 장치 없이 겨울 추위를 종일 독방에 갇혀 버텨낸다. 경마장의 마구간은 80년대 지어진 시멘트 건물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하루 세 번 주는 사료 먹는 일이 유일한 낙이다. 말을 모르는 사람도 경마장의 마구간을 보는 순간 "말이 불쌍하다." 는 단어를 연발한다. 새벽 한 시간 경주로에서는 훈련이 있다. 1,600마리 말이 한꺼번에 훈련하니 앞선 말이 뛰면서 던지는 모래에 맞아 실명하기도 한다. 8센티 모래를 걷어내면 화강암으로 구성된 경주로 바닥을 5톤의 충격이 오는 시속 60킬로 속도로 뛰니 어깨와 다리가 성한 놈이 없다. 통증 없는 말이 없고, 천지굴건염, 계인대염, 근육통으로 매일 치료받는다. 경주는 더욱 가혹하다. 죽을 힘을 다해 뛰지만, 기수들의 채찍은 멀리서도 들릴 만큼 처절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는 경주에서 매주 한두 마리가 부상으로 숨을 거둔다. 더 이상 경주가 불가능한 장애나 부상을 입어야 고통스로운 경마장을 떠날 수 있다. 급여도 없다. 산재율 100 퍼센트다. 경마장을 떠나면 더욱 불행한 삶이 기다린다. 성적 좋은 일부 암말은 씨암말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대부분은 안락사 후 소각장으로, 개나 고양이 먹이를 만드는 도살장으로, 승마장으로 또는 시골 농가의 헛간에서 불법적으로 죽음을 맞는다.

정리하자. 말관리사의 근무여건은 열악하다. 여름 한낮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랫길에 망아지를 끌고 30분만 가보면 그 노동강도가 얼만큼인지 알 수 있다. 부산‧경남의 말관리사의 대접은 서울경마장의 말관리사와 '신이 취직하고픈' 마사회 직원보다 열악하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 또는 반려동물로 대접해야 할 경주마의 생활여건은 말관리사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 이 기사의 타이틀을 뽑은 언론사 기자는 현장을 파악하지 못하고 예단으로 기사를 썼다.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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