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시선강간'이란 말에 대해

남자들 솔직히 지나가는 여자들 보면서 성적인 상상을 한다(고 자주 들었다). 물론 99% 의 남자는 그냥 상상에서 끝나고 몰카를 찍는다든가 성추행을 하는 남자는 극소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무심코 여자들을 쳐다보고 성적인 상상을 한 것 자체가 성추행/성범죄/ 혹은 강간죄에 해당한다고 하면 펄쩍 뛰기 마련이다. 그게 어떻게 같은 거냐고 따진다. 시선'강간'이라고 할 때, 그 단어는 여자가 느끼는 불쾌함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긴 하는데, 남자 입장에서는 진짜 그렇게까지 가야 하나 느낄 만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특히 지나가는 여자들 그런 식으로 쳐다보는 거 좀 더 흔하고, 좀 더 심하다.

  • 양파
  • 입력 2017.06.19 12:42
ⓒRyanKing999 via Getty Images

'시선강간'이라는 단어 때문에 난리난 게시판 글을 봤다. '강간'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다 하는데 거기엔 나도 동의한다. 성희롱, 불쾌한 시선, 정말 세게 나가면 성추행 정도가 맞겠지. 하지만 여자가 느끼는 그 더러움은 '시선강간'이라는 단어가 아주 깔끔 확실하게 표현해준다. 그러나 저 원글에서도 보면 알겠지만 남자들이 하는 말은

- '강간'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다.

- 보통 남자들도 강간범 취급하는 거냐?

- 니네가 그럼 옷을 그렇게 입지 말든가.

- 누구 정의로 '강간'이냐?

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차마 하지 않는 말은

- 사실 나도 지나가는 여자들 쳐다보면서 성적인 상상한다.

- 여자 다리나 가슴 나도 자주 쳐다본다.

- 그걸 불쾌해 하는 여자도 있긴 하겠지만 난 사실 뭐 내가 만지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쳐다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뭐 어찌 하겠다는 건도 아닌데 김칫국 마시고 있네 김치녀들.

이지 싶다.

이것은 남자들에게 '강간범'이라는 낙인이 어떤지를 알면 좀 더 이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자들 보기에는 강간범 구속도 잘 안 되고 하니 남자들끼리 강간 별거 아닌 걸로 취급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난 그건 확실히 아니라고 본다. 강간죄, 엄청 심각하게 본다. 웬만한 사회라면 남자들 사이에서 싫다는 여자 억지로 범하는 강간범은 쏴 죽여야 하는 범죄자이고, 확실한 강간범이라 하면 인간 취급 못 받는다고 생각한다. 술 많이 마시고 꼬장 부리고 돈 빌려가고 갑질하고 그 정도의 한심함이 아니라, 진실로 강간범은 벌레 취급당하고, 특히나 소아 강간범은 미국 교도소에서도 거의 살해당할 가능성 1위다. 그런데 왜 강간이 그렇게 잦은가 하면, 그들의 변명을 들어보면 안다. 나는 강간범이 아니다. 이건 여자도 원했던 화간이다. 여자가 그냥 그런 여자였다. '강간범' 낙인 안 찍히려고 진짜 온갖 개소리를 변명이랍시고 갖다댄다. 그리고 실제로 그걸 정말 믿기도 한다. 여자가 먼저 꼬신 거라고 믿어야 자신이 강간범이 아니니까. 내가 믿고 의지하던 친구가 강간을 했다 하면 그건 분명히 여자가 꽃뱀일 거라 생각한다. '강간범' 딱지 피할 수 있다면 미성년의 여성 피해자도 서슴없이 꽃뱀을 만든다.

강간범 다음으로 무서워하는 낙인. 영어권에서는 'creep' 이라고 하는데, '그 징그러운 남자' 정도 되겠다. 어디에서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비웃을까 두려워하고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한다 하는데, 뒤집어 보면 그만큼 남자는 비웃음 당할까 두려워한다는 말도 된다. 징그러운 남자, 턱도 없는데 작업 걸려는 남자를, (남자의 상상 속에서는) 도도한 여자들이 깔깔 비웃고 손가락질한다. 여성의 공포 표정은 비웃음 내지 혐오로 보인다. 실제로 성적인 관심을 보이는 남자에게 여자가 혐오의 느낌을 가지는 건 그럭저럭 흔한 케이스이므로 남자가 틀린 것도 아닐 수 있다. 한 여자에게 거절당하면 그 여자에 대한 분노와 수치심 정도로 끝날 수 있겠으나 여자 그룹에게서, 사회 그룹에서 'creepy guy'로 찍히는 건 엄청난 형벌이다. 성추행/성희롱을 일삼는 남자, 성매매하는 더러운 남자라는 인식이 여기에 들어간다 (그래서 성매매가 그렇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벅벅 우기는 것이고).

남자들 솔직히 지나가는 여자들 보면서 성적인 상상을 한다(고 자주 들었다). 건강한 남자라면 안 하는 남자가 없을 거(라고도 한다). 물론 99% 의 남자는 그냥 상상에서 끝나고 몰카를 찍는다든가 성추행을 하는 남자는 극소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무심코 여자들을 쳐다보고 성적인 상상을 한 것 자체가 징그러운 성추행/성범죄/ 혹은 초강력인 강간죄에 해당한다고 하면 펄쩍 뛰기 마련이다. 그게 어떻게 같은 거냐고 따진다. 이건 빨간색 좋아한다고 종북으로 몰려 퇴사 협박받거나 지나가는 좋은 차 쳐다봤다고 도난 혐의자로 몰려 구치소행 되는 뭐 그런 느낌일 수 있겠다 (내가 남자가 아니니 이건 어디까지나 주워들은 거라 잘은 모르겠다).

여자를 보고 성적인 상상을 하는 것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는, 좀 어중간한 말로 된다. 여자도 잘생긴 남자 보면 비슷하게 쳐다보긴 한다. 물론 성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상상은 좀 덜 할 거고, 육체적인 힘의 차이가 있고 하니 남자가 쉽게 위협을 느끼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냥 슬쩍 쳐다보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머릿속에는 이미 강간 시뮬레이션 돌리고 있는 게 분명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인간들도 워낙 많아서. 여자가 남자에게 그러는 경우는 비교불가능으로 덜할 거고.

어쨌든. 결론. 시선'강간'이라고 할 때, 그 단어는 여자가 느끼는 불쾌함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긴 하는데, 남자 입장에서는 와 진짜 그렇게까지 가야 하나 느낄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특히 지나가는 여자들 그런 식으로 쳐다보는 거 좀 더 흔하고, 좀 더 심하다. 강한 단어에 거부가 좀 들지언정 그걸로 경각심을 불어일으킬 수 있다면 좋은 걸까 하는 마음이 반, 강간이라는 강력범죄를 너무 일상화해서 더 무감각해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반, 뭐 그렇다.

- 원글 링크 (원글 요약. 좀 쳐다봤다고 날 강간범으로 몰지 마!)

- 아, 그리고 해외에서의 여자 엉덩이 쳐다보는 남자 시선 실험. (호모포비아 경고)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시선강간 #양파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