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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킹(parking)보다 파크(park)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교통포럼은 카셰어링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도시 전체의 주요 교통수단을 카셰어링과 지하철 등 대량수송 대중교통으로 삼는 경우를 상정해 시뮬레이션해봤다. 포르투갈 리스본을 모델로 삼았다. 인구, 이동량, 이동경로 등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진행했다. 연구 결과, 교통체증은 사라졌다. 시내 주차장은 5%만 남기고 없애도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동차 대수는 현재의 3%만 있어도 된다. 탄소배출량은 3분의 1로 줄었다. 대신 차량 1대가 달리는 거리는 현재보다 10배가량 늘었다. 하지만 전체 자동차가 달리는 거리를 모두 합하면 복잡한 출퇴근 시간 때도 교통량이 현재의 37%로 훨씬 줄어든다.

ⓒvladimir zakharov via Getty Images

주말이면 대형마트 주차장 입구에서 줄 서는 게 일이다.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는 일단 일행을 내려놓고 주차할 자리를 찾아 주변을 맴돈다. 도시에서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라면 견뎌야 할 일상이다.

주차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주차장을 더욱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흥분해 행동에 옮기기 전에, 한번 따져보자. 2016년 아이는 40만 명 태어났다. 출산율이 점점 낮아져 곧 인구가 줄기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그런데 같은 해 등록 자동차 수는 81만 대 늘었다. 한 차례도 쉬지 않고 계속 늘기만 한다. 주차장은? 2015년 한 해 동안 차량 110만 대 면이 새로 생겼다.

애플파크에서 가장 넓은 공간

문득 생각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를 위한 자리보다 자동차를 위한 자리를 더 공들여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자동차에 필요해서 주차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주차장이 있어서 자동차가 늘어나는 건 아닐까?

그 주차장을 만드는 것은 시장이 아니다. 법과 정책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 본사에서조차 그렇다.

2016년 4월, 애플의 신사옥 '애플파크'가 문을 열고 임직원들이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2011년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세계 최고의 건물'이라고 자랑하던 곳이다. 가운데 부분이 텅 비어 우주 비행선처럼 생긴 주건물은 신기술을 싣고 외계에서 날아와 지구별에 착륙한 듯한 모습이다.

물론 이곳에서 일하는 우주인들은 검은 우주만 보며 지내지 않는다. 애플 직원들은 대형 유리창을 통해 보기 좋게 조성된 7천 그루 나무로 이뤄진 숲을 감상하며 쾌적하게 일할 수 있다. 애플파크는 직원들을 위해 무려 31만8천m²에 이르는 쾌적한 사무실과 실험실 공간을 제공한다.

그런데 애플파크에서 사무실과 실험실보다 더 넓은 공간이 있다. 주차장이다. 애플파크의 주차 공간은 32만5천m²다. 사람보다 자동차를 위한 공간이 더 넓다. 직원 1만3천여 명을 수용하는 공간에 자동차 1만1천여 대를 수용하는 주차장이 들어선다.

이렇게 넓은 주차 공간이 생긴 것은 애플이 원해서가 아니다. 애플파크가 위치한 쿠퍼티노시의 규제 때문이다. 쿠퍼티노는 모든 건물에 주차 공간 설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쿠퍼티노시 규정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업자는 한 구역을 개발할 때마다 집 한 칸당 주차 공간 2개를 둬야 한다. 그중 하나는 지붕이 있어야 한다. 패스트푸드 음식점에는 세 자리당 1대의 주차 공간이 있어야 한다. 볼링장에는 레인당 7개, 일하는 사람 한 명당 1개의 주차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낯선 규제인가? 한국에도 비슷한 규제가 있다. 서울은 아파트 등 다가구주택은 면적에 따라 65~75m²당 1대의 주차장을 마련해야 한다. 골프장엔 1홀당 10대, 골프연습장엔 1타석당 1대, 병원과 종교시설에는 150m²당 1대의 주차 공간을 지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시설마다 주차장 의무 설치 규정이 마련돼 있다. 주차장이 많으니, 자동차는 더 늘어난다.

사실 주차장 의무 설치 규정은 자동차가 지금처럼 대중화될 수 있게 만든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자동차 제조 기업들로서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그 출발은 자동차의 원조, 미국이었다.

'주차 전쟁' 해법은 주차장 줄이기

1923년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는 아파트 건설 때 거기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차장을 짓도록 의무화했다. 최저임금처럼 '최저주차장' 개념이었다. 이것은 미국 전체로 빠르게 확산됐다. 미국에서 자동차 대중화를 이끈 포드자동차가 콜럼버스에 공장을 연 지 9년 만에 생긴 제도였다. 포드의 '모델T'가 1908년 시장에 나온 뒤 날개를 달던 때였고, 1920년 링컨을 인수한 뒤 고급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직후였다.

미국에서 자동차 대중화와 함께 시작된 '최저주차장' 개념은 전세계로 확산된다. 싱가포르의 납골당에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와이너리에도 주차장 의무 설치 규정이 적용된다. 자동차 대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중국 베이징조차 2003년 이 개념을 도입한다. 도시 중심부는 아파트 한 채당 0.3대, 외곽에는 0.5대로 정해졌다.

맞다. 자동차에는 주차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주차장이 필요하다. 자동차의 가동률은 점점 떨어져서 95%는 주차돼 있다. 도시는 주차장을 마련하느라 애쓴다. 공용 건물에는 '최저주차장' 제도를 통해 값싸거나 공짜인 주차장을 최대한 확보해준다. 도로 위에는 '거주자우선주차' 제도를 통해 주차장이 없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값싼 주차장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공짜 주차장을 최대한 늘리면 주민들 삶의 질이 값싸게 높아지는 것일까? 아니다. 공짜 주차장이라 해도 결코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 그 비용을 낸다.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차를 주차하는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셈이다. 그것도 하루에 1시간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사는 데 말이다. 게다가 사람이 걷는 도로를 줄여 주차 공간에 내주는 것이다.

주차장에 투입하는 재원은 자동차 구매를 유도하는 지원금이다. 대중교통 이용자의 편리를 덜어내어 자동차 운전자에게 옮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서울의 공동주택에 설치하는 지하주차장은 1대당 최소 3500만원 정도 건설비가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용은 모두 주민들이 나눠 낸다. 주차장은 도시 공간 이용 효율성과 미관도 떨어뜨린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모든 것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이에 비해 자동차 자체의 이동 효율성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다. 선진국에선 자동차 1대당 평균 탑승객 수가 1명을 조금 넘는다. 대부분 '나 홀로' 운전 차량이다.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미세먼지와 탄소 배출 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주차장 정책을 바꾸는 도시들이 나온다. 영국 런던시는 2004년 '최저주차장' 규정을 없앴다. 그 뒤 새롭게 개발되는 주거지에선 제공 주차 면적이 줄었다. 일본은 '차고지증명제'를 운영한다. 자동차 구입자가 차량 주차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증빙을 가져가야만 자동차를 등록할 수 있는 제도다. 도시가 주차장을 마련해주지 않으니, 운전자 스스로 주차장을 확보하라는 뜻이다.

운전으로 먹고사는 사람만 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교통포럼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을 모델로 카셰어링(차량공유)과 지하철 등을 시뮬레이션해보니 필요한 주차장은 5%에 불과했다. 한겨레

런던 도심의 주차장은 비싸졌다. 도쿄에서는 운전자가 비싼 돈을 주고 주차장을 구매하거나 계약해야 한다. 불편해졌다. 하지만 덕분에 런던 도심의 교통체증은 완화됐고, 도쿄에선 도로에 걸쳐 대충 세워놓은 자동차를 찾기 어렵다. 물론 이들 도시에서 불법 주차 규제를 엄격히 하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에도 일본 같은 차고지증명제가 있다. 제주도는 2017년부터 옛 제주시권의 경우 중형자동차 이상의 새 차는 차고지를 확보한 때만 등록을 받는다. 2018년부터는 모든 새 차 구입으로 확대한다. 제주에는 2016년 11월 말 기준 35만 대 차량이 운행 중이다. 가구당 1.3대꼴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구 대비 가장 많다.

모든 주차장을 없애거나 비싸게 만들면 운전하는 사람, 특히 경제 사정이 어려운 사람이 가장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들어가는 비용은 같다. 다만 도로는 걷는 데, 자전거 타는 데, 자동차 운전하는 데만 사용하고, 주차하는 데는 사용하지 않는다. 건물에는 주차장 대신 사무실, 체육관, 집이 늘어난다. 주차장 건설에 들어갈 돈을 자동차 타는 사람이나 걷는 사람이나 골고루 나눠 갖게 되는 것이다.

주차장만 없애면 도시가 쾌적해지는가? 자동차가 줄지 않으면 엄청난 혼란이 오지 않을까? 그래서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이른 시간 안에 해결하는 한 가지 해법은 '차량공유'(카셰어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교통포럼은 카셰어링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도시 전체의 주요 교통수단을 카셰어링과 지하철 등 대량수송 대중교통으로 삼는 경우를 상정해 시뮬레이션해봤다. 포르투갈 리스본을 모델로 삼았다. 인구, 이동량, 이동경로 등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진행했다.

연구 결과, 교통체증은 사라졌다. 시내 주차장은 5%만 남기고 없애도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동차 대수는 현재의 3%만 있어도 된다. 탄소배출량은 3분의 1로 줄었다. 대신 차량 1대가 달리는 거리는 현재보다 10배가량 늘었다. 하지만 전체 자동차가 달리는 거리를 모두 합하면 복잡한 출퇴근 시간 때도 교통량이 현재의 37%로 훨씬 줄어든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차량공유 사업은 '우버'가 전세계에서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쏘카'와 '그린카' 등이 실험적으로 벌이고 있다. 당장 계획을 세워 적용해볼 모델인지도 모른다.

놀이터와 도서관이 들어선다면

도시는 변화할 수 있다. 사람과 내용도 변화해야 하지만, 공간의 변화가 앞서야 한다. 새로운 일이 벌어지려면 기존의 꽉 찬 공간에서 뭔가를 헐어내고 새로운 것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 첫걸음을 동네마다 있고 건물마다 있는 '주차장'의 변화로 떼어보면 어떨까. 구체적인 제도로는 '최소주차장법'과 지나치게 싸고 불공평한 거주자우선주차를 재검토해볼 만하다. 주차장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자동차 대당 활용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자동차 공유 문화와 기술혁신을 결합한 카셰어링 사업의 획기적인 확대가 함께 가면 찰떡궁합이다.

주차장이 지금의 20분의 1로 줄어들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산책로와 자전거도로와 공원과 놀이터와 도서관과 체육공간이 들어선다면, 주차비가 비싼 대신 걸어다니고 자전거 타는 데 지원받을 수 있다면, 변화에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변화에 다들 저항한다고? 아직 우리나라 1인당 자동차 보유 대수는 미국, 일본, 유럽에 한참 못 미친다. 설득 가능성을 따지자면 그들보다는 우리 쪽이 높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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