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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스토리] 10. 성소수자에게 가족이란

폭력을 가한 이후로 가족들은 나에게 동성애,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애가 착해서 세상에 관심 많고 사회적 약자/소수자 인권활동을 하는, 그런 착한 아들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역시도 나는 답답했다. 내가 성소수자인데, 왜 이성애자인 척하면서 가족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걸까. 그래서 난 다시 나의 존재를 알리고 가족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하기 위해서 다시 커밍아웃을 하고자 했다. 성소수자가 혐오가 넘쳐흐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공간도, 교회라는 공간도, 어느 하나도 내게 편한 공간이 없는데, 가족마저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massimo1g via Getty Images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커밍아웃 스토리'를 연재합니다. '커밍아웃 스토리'에는 성소수자 당사자와 성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들의 커밍아웃 관련 이야기들이 담깁니다. 당사자가 이야기하는 커밍아웃을 준비한 과정과 커밍아웃할 때의 감정,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때 부모의 심정 변화와 상황들... 고민과 애환 그리고 감동이 가득한 우리들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커밍아웃 스토리' 연재의 다른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성소수자 부모모임 블로그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글 | 동그리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

나는 성소수자이다. 나는 젠더퀴어(여성/남성으로 완벽히 이분화되지 않는 성별 정체성)이고 남자를 좋아한다. 성소수자인 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가족에게 왜 커밍아웃을 했는지 그리고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풀어내고 싶어 이 글을 써본다.

성소수자인 '나' 그리고 '우리' 가족

나는 청소년기에 학교 폭력을 당했고, 당시 만난 청소년 인권활동가를 통해 공부한 페미니즘과 다른 성소수자들을 만나면서 간신히 정체화를 했다. 나는 정체화를 하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달랐다. 오히려 정체화를 하고 학교생활을 하니 불편함이 넘치다 못해 흘렀다. 교사들의 이성애 중심적인 발화들, 남성적이지 않다고 가하는 폭력들, 게이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을 희화화하는 발언들은 더욱 아프게 다가왔고 그 당시 나는 너무 숨이 막혔다.

나는 교회 친구에게 이러한 숨막힘들, 나의 성적 지향과 학교 내에서의 불편한 감정들을 토로했다. (지금은 무척이나 후회한다. 우리 교회는 딱히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지는 않았지만 보수적인 교회였다.) 그 친구 역시 나의 감정과 고민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성소수자에 대해서 배운 적 없고, 다니는 교회에서는 동성애는 죄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본인도 나를 챙겨주고 싶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날 대해야 할지 몰라 본인의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 친구의 부모는 결국엔 이 사실을 교회에 알렸고 당연히 교회는 뒤집어지고 나와 내 부모가 다니던 교회는 난리가 났다.

나와 내 부모는 더 이상 교회를 다닐 수 없었고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교회를 옮긴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이후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부모는 내게 폭력을 가했다. 동성애 하지 말라고, 왜 부모망신을 시키냐고 하면서 때렸다. 나의 경험과 고민들은 단순히 청소년기의 철없음으로 여겨졌다. 이 폭력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나에게 가족이란?

가족이란 내게 내 편도 아니고 오히려 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탈가정을 선택했고 대학입학과 함께 가족을 벗어나 5년째 혼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가한 이후로 가족들은 나에게 동성애,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애가 착해서 세상에 관심 많고 사회적 약자/소수자 인권활동을 하는, 그런 착한 아들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역시도 나는 답답했다. 내가 성소수자인데, 왜 이성애자인 척하면서 가족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걸까. 그래서 난 다시 나의 존재를 알리고 가족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하기 위해서 다시 커밍아웃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망했다. 젠더퀴어라는 정체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서 그냥 게이라고 설명을 하고 무서워서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모순적이게도 내가 힘들거나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가족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끝까지 부정하고 싶었지만 결국 인정했다. 가족이란 많은 이들에게도 그러겠다만 나에겐 정말이지 더욱 애증의 관계였다.

성소수자가 혐오가 넘쳐흐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공간도, 교회라는 공간도, 어느 하나도 내게 편한 공간이 없는데, 가족마저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가족이라고 뭐 얼마나 다르겠냐만, 나에게 남은 마지막 아군이랄까? 세상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나의 존재를 그나마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집단이랄까? 그래서 가족한테 뭔가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실무진 활동도 이런 일말의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부모모임의 정기모임을 하면서 때론 그런 말을 듣는다. 자녀로서의 나와 성소수자로서의 나를 구분해야 한다고, 그리고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라는 구도가 아니라, 자녀와 부모라는 구도에서 부모들을 조금 기다리고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지만, 자녀이자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구분될 수 있을까. 혐오가 판치는 이 사회에서 가족한테라도 기대고 싶은,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그런 구분이 잘 이뤄질 수 있을까.

성소수자 자녀로서, 나에게 가족이란 이러한 의미이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폭력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인정을 바라고 매달리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인정 투쟁에서 다시금 고통을 지불하게끔 하는 사람들. 뿌옇게 떠있는 애증들로 가득 차서 선명히 보이지 않는 관계.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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