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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대학생에게 재앙이 된 선거제도, 대한민국은?

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등록금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녹색당도 대학등록금 폐지에 찬성한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스코틀랜드에서 대학 무상교육정책을 펴고 있는 정당이다. 자유민주당도 보수당 보다는 대학등록금 문제해결에 적극적이다. 만약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였다면, 노동당이 중심이 되어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최소한 대학등록금이 대폭 낮춰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거제도가 중요하다. 영국의 대학생들은 잘못된 선거제도 때문에, 이번 선거 이후에도 유럽에서 가장 비싼 대학등록금을 내야 할 것이다.

  • 하승수
  • 입력 2017.06.13 07:31
  • 수정 2017.06.13 07:33
ⓒNeil Hall / Reuters

영국 총선이 끝났다. 언론은 늘 결과만 보도한다. 보수당이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650석 중 318석을 차지해서 1등을 했다는 식의 보도들만 난무한다. 그러나 정작 보수당이 얻은 표가 몇 %인지는 보도하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도 영국의 보수당은 득표에 비해 많은 의석을 얻었다. 보수당의 득표는 42.4%에 그쳤다. 그런데 보수당은 의석에서는 48.9%에 해당하는 318석을 차지했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덕분이다.

영국은 65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데, 650개의 지역구에서 1등을 한 후보가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다. 보수당은 이런 식의 지역구 중심 선거에 강하다. 그래서 보수당은 2015년 총선에서도 불과 36.9%의 득표율로 단독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한 바 있다. 이번에 보수당은 단독과반수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북아일랜드에 지역기반을 둔 민주연합당(DUP)의 10석을 합쳐서 연립정부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득표율 42.4%에 의석비율 48.9%면 별 차이 없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보수당에 반대하는 확실한 야당들이 얻은 득표는 52.0%에 달하기 때문이다. 득표율대로면, 야당들이 집권하는 것이 맞는 상황인 것이다. 이번에 노동당은 40.0%의 득표를 얻었다. 그리고 자유민주당이 7.4%,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3.0%, 영국녹색당이 1.6%의 표를 얻었다. 이들 정당들은 보수당과 확실하게 각을 세우고 있는 야당들이다. 이 정당들의 득표를 합치면 52.0%에 달한다.

득표율대로 하면, 정권교체가 됐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면,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은 패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국가들의 선거제도였다면,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선거제도가 선거결과를 좌우한다. 유권자들은 '내가 던진 표가 제대로 계산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수많은 사표를 낳고, 이것이 선거결과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바로 '삶의 질' 악화로 나타난다. 이번 영국 총선에서 대학생들의 투표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바로 대학등록금 문제 때문이다. 1998년 이전에 영국은 대학까지 무상교육이었다. 그런데 1998년에 등록금이 생겼고, 급속하게 올랐다. 지금은 1년에 9,250파운드가 넘는 대학등록금을 내야 한다. 1년에 1,300만원을 훌쩍 넘는 돈이다. 그런데 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등록금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녹색당도 대학등록금 폐지에 찬성한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스코틀랜드에서 대학 무상교육정책을 펴고 있는 정당이다. 자유민주당도 보수당 보다는 대학등록금 문제해결에 적극적이다. 만약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였다면, 노동당이 중심이 되어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최소한 대학등록금이 대폭 낮춰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거제도가 중요하다. 영국의 대학생들은 잘못된 선거제도 때문에, 이번 선거 이후에도 유럽에서 가장 비싼 대학등록금을 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대한민국도 300명의 국회의원중에서 253명을 승자독식의 지역구 소선거구제도 뽑는다. 비례대표 47명이 있지만,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래서 대한민국도 선거때마다 표심이 왜곡된다. 이런 식의 선거제도로는 지역구 선거에 강한 기득권 정당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리고 여성, 청년,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정치에 반영되기 어렵다. 그래서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다.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 지금이 개혁을 하기에 딱 좋은 시기이다. 그래서 6월 8일 전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정치개혁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6월 8일 정치개혁 공동행동 발족기자회견 장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 지역의 풀뿌리 단체들도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미 국회에는 좋은 법률안들이 발의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박주민 의원은 지난 2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권고한 방안이기도 하다.

이처럼 좋은 대안들이 나와있지만, 국회에서는 논의가 안 되는 것이 문제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다룰 수 있는 '입법권을 가진 정치개혁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국회는 법률안 심사권을 가진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서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을 다뤄왔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는 그런 특위는 없고, 법률안 심사.처리권도 없는 '정치발전특위'라는 유명무실한 특위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당장 필요한 것은 국회에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유권자들의 표심이 왜곡되지 않는다. 그래야만 정당들이 책임있게 정책을 내놓고, 그것을 지키도록 할 수 있다. 이것이 정치판을 바꾸는 길이고, 우리 삶을 바꾸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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