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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에 대한 8가지 변명, 그리고 반박

1. 모텔을 따라갔으면 남자는 무언의 승낙으로 본다. 섹스를 주스로 표현해 보자. 나는 지금 주스를 먹고 싶다. 그래서 편의점에 가서 구매해와서 집에서 얼음컵까지 만들었다. 얼음컵에 막상 주스를 부으려고 보니, 그닥 먹고 싶지 않아졌다. 그럼 어떻게 한다? 그 주스를 마시지 않는다. 취사선택이란 그런 것이다. 주스를 마시지 않는 대신 생수를 마시려는 것, 가령 누워서 이야기를 한다든가 영화를 본다든가 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 상호 관계란 그런 것이다. AV로 관계를 배우지 말자. 그건 그냥 SF라고 받아들이면 편하다.

  • 표범
  • 입력 2017.06.12 11:35
  • 수정 2017.06.14 06:14
ⓒfotyma via Getty Images

한 외국인 친구가 있다.

한번은 그 친구와 저녁을 먹는데 이런말을 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언제나 강간이 일어나도 괜찮은 나라로 느껴져."

당황한 나는 왜? 하고 물었다. 그가 한 말을 요약해보면, "그냥 강간범을 옹호하는 분위기라 해야 하나? 다들 아니라고 하면서 언제든 자신이 가해자가 되었을 때 용서받을 구멍을 만드는 분위기랄까? 그런 게 있어."

그가 다니는 어학원이 있는 모 유명 대학에서 성폭력을 저지른 것을 피해자가 고발하여 기사가 난 후의 식사자리였다. 아마 그는 그것이 떠올라 그렇게 말했으리라. 댓글과 주변 한국인들의 반응이 놀라웠다고 했다. 여자를 질책하는 댓글이 많다는 것도 놀라웠다고 했다. 그가 살던 나라에서, 강간은 그저 강간일 뿐이니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위 사진 속의 기사에 달린 댓글 중 하나를 보자. 댓글의 내용을 보며 그것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적어보면.

1. 모텔을 따라갔으면 남자는 무언의 승낙으로 본다.

섹스를 주스로 표현해 보자. 나는 지금 주스를 먹고 싶다. 그래서 편의점에 가서 구매해와서 집에서 얼음컵까지 만들었다. 얼음컵에 막상 주스를 부으려고 보니, 그닥 먹고 싶지 않아졌다. 그럼 어떻게 한다? 그 주스를 마시지 않는다. 취사선택이란 그런 것이다. 그 선택이 누군가의 몸이나 감정을 쉽게 해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더 조심해야 한다. 주스병을 마구 흔들어서 주스를 열거나, 주스 입구를 깨부숴서 주스를 여는 것은 올바른 음용사례가 아니다. 주스를 마시지 않는 대신 생수를 마시려는 것, 가령 누워서 이야기를 한다든가 영화를 본다든가 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 상호 관계란 그런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금 주스를 마시고 싶어질 수도 있는 것. 로맨틱이란 그런 것이다. 강제로 찢어발기고 갖다 박는 거 말고. AV로 관계를 배우지 말자. 그건 그냥 SF라고 받아들이면 편하다. 아이언맨, 헐크 같은 거 있잖아 왜. 마조히스트조차 자신이 진짜로 '상하는' 관계를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2. 들어간 후의 거절은 이미 빡치게 되어있다.

바로 이것. 이것이다. 남성이 '빡치는' 순간. 왜 여성들이 제대로 거절을 하지 못하냐고? 이 빡치는 순간이 두렵기 때문이다. 특히 다혈질이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더라도 큰 목소리나 덩치 차이, 심지어는 덩치 차이가 나지 않더라도 단지 격한 감정을 내보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낀다. 왜? 저 사람은 날 해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 논리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여성들도 많다. 내가 함께 들어왔으니까. 내가 먼저 거절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니다. 절대 아니다. 함께 모텔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은 절대적인 YES가 아니다. 언제든 자신의 마음이 NO라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한 추궁이나 보복성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하는 게 정상적인 관계이다.

3. 여자친구랑 잠만 자러 가는 남자는 10명 중 한명도 안된다.

그럴 수 있다. 사실이라 해도 이건 나쁜 것이 아니다. 연인관계에서 섹스를 생각하는 게 뭐? 뭐가 나쁜가. 이건 성별을 바꿔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고 그건 나쁜 게 아니다. 매력적인 상대와의 섹스를 원하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와 상대방의 '동의'를 우선시하는 것. 바로 그게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욕구충족보다 상대방의 동의와 감정, 안위를 중요시 하는 것. 어렵다면 외우자. 우리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연애도, 잘 하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섹스도, 잘 하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에는 테크닉뿐만이 아니라 분위기 조성, 정성을 쏟는 것 등등이 모두 포함된다. 세고 거칠게 하는 것만이 능사는 절대 아니다. 암기로 모든 학문을 통달할 수는 없듯이. 노력하자.

4. 싫으면 안 들어가야 된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안 들어가야 된다.

무슨 핑계를 대거나 싫어하는 티를 왜 못낼까? 연인이나 호감이 있는 관계에서 분위기를 냉각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그것이 이미 첫 관계를 맺은 후의 일이라면 더더욱. 왜냐면 상대방이 내가 오바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진짜 일이 있음에도 핑계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여성들의 경우, 섹스=곧 관계의 확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자신이 딱히 원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거절하여 지금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여성이 남성의 요구를, 특히 이미 관계를 가진 이후의 관계를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척 많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주스는, 먹고 싶을 때, 마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욕조에 들어가 있는 상황일지라도.

5. 강제적 관계를 시도한다면 헤어져야 한다.

그게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관계가 좋을 때에도 어려웠던 섹스에 대한 거절의 말이, 헤어지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더 강하게 나오기가 쉬울까? 심지어 보복성 살해도 당하는 마당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첫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녀에 대한 신격화, 성녀프레임은 물론이고 처녀성에 대한 미담과 집착이 아니더라도 둘의 관계에서도 첫 관계를 맺었느냐 아니느냐만을 가지고 관계의 선을 긋는 경우가 많다. 그냥 친구였다가도 섹스를 한번 하면 여성을 '섹파'나 '따먹었다'고 표현하거나 더이상 그 사람에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언제든 섹스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무척 많다. 연인이 아닌 사이에서도 그럴진대 연인 사이에선 대체 어떤가. 여성이 자신과의 관계를 거부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남성의 질문은 바로 '나 안 사랑해?' 이다. 사랑과 섹스는 물론 같이 간다. 하지만 같이 간다고 해서 걔네가 늘 딱 붙어있는 건 아니다. 그걸 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건강상의 이유로든 감정의 이유로든 섹스는 원치 않으면 거절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성별과 관계를 떠나 모든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다. 헤어지지 못 하는 거지 헤어지지 않는 게 아닌 경우도 많은데 그걸 가지고 여성을 모자란 사람 취급하는 것은 그 심정과 상황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그냥 관계를 거절하는 데에도 겁을 먹는 사람이,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다고? 속 편한 이야기이다. 맞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소수의 이야기라고? 글쎄....

6. 이 글을 보고 이차가해니 뭐니 하는 사람 분명히 있을 거임

맞다. 왜냐하면 실제로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엄연한 이차가해이기 때문이다. 뒷발질 하시다가 엉겁결에 정답을 맞추는 경우가 요새는 꽤나 많은 것 같은데, 이차 가해가 정확히 맞다.

7. 신체건강한 남자가 모텔에 가자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인데 내가 만난 남친은 다를 것이다 라고 여기는 건 착각이다.

불도 소방관이 출동하면 꺼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만난 남친'이다. 남친에게 바라는 것,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믿음이며 기대이다. 연인의 관계는 오로지 섹스를 하기 위한 관계가 아니다. 많은 것을 나누고 함께 한다. 그 많은 것에는 존중과 감정의 교류가 포함되어 있다. 신체 건강한 남자가 섹스를 바라면서 모텔에 가자는 제안을 하는 게 뭐 어때?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 제안을 실현하는 과정과, 거절에 대한 태도지. 이거 몇번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해도 모르거나 우기는 사람이 있는 게 문제다. 여자를 같은 사람으로 보자. 발화에 대한 무게를 동일하게 보자.

8. 모텔에 가서 못했다는 건 고자 취급을 받는다.

고작 그래서 그 자존심이 상대방 여성에 대한 폭력보다 높게 평가되는 그런 사람이 자신이란 것을 인정하는 부분? 그리고 그 고자 취급을 받기 전에, 왜 상대방 여성과의 잠자리 일화를 친구들에게 떠벌리는지 당최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성 경험이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데 쉽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인이 되기 훨씬 전부터 습득하며 자란다. 그런 사회에서 자신의 훈장을 위해 관계에서 상관이 없는 타인에게 여성과의 베갯머리 송사를 떠벌린다.... 존중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행동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대방 여성을 존중하는 것은 고자라고 폄하될 일이 아니라, 그것이 진짜 책임감 있고 동등한 관계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성별에 대한 편파적 발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알고 있다. 사람들이 술자리를 할 때, 밤 늦게 다닐 때 어떤 성별을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이 '조심하라'고 말하는지.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 중 여성이 98.9%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사는 우리들이기에.

2017년의 데이트 폭력에 대한 2월부터 4월까지의 신고 건수는 무려 768건이다. 단 2개월간의 신고건수이다. 그런데 이 신고된 것들만이 데이트 폭력의 전체 건수일까? 전혀.

저 중 신고가 취하되는 비율과 처벌 비율은 가히 놀라운 수준인데, 가장 큰 이유는 '당사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아서'이다. 이 처벌을 원치 않는 이유에 과연 온전한 애정만이 깃들어 있을까? 사귀던 여성의 헤어지자는 말에 우산을 안구에 꽂아 살해한 사람이 4년형을 받고, 이별을 요구 한 여성을 때려 죽인 후 시멘트로 암매장 한 남성이 3년형을 받는 나라에서 정말 온전한 애정으로 남자를 '용서'했기에 신고를 취하하고 처벌을 원치 않을까?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법이 내릴 수 있는 처벌보다 더 큰 위험에 처한 여성들에게, 성폭력의 책임까지 덧씌우지 말라.

성폭력은 폭력의 한 갈래이다. 보통의 폭력은 가해자를 탓하면서 도대체 왜 성폭력에 관해서만큼은 다들 그렇게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그들을 옹호하는지. 내 친구의 말마따나, 언젠가 자신이 가해자가 될 것을 생각해서 도망칠 구멍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부디 그런 짓은 하지 말자.

저번 글에서도 말했듯이 그것은 당신의 어머니나, 여동생이나, 누나나, 언니나, 가까운 여성이나 혹은 당신이 그런 일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것은 그 어떤 사람이든 겪지 않아야 할 일이며, 설령 그러한 폭력에 노출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책임이 절대 아니고, 책임을 추궁받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죄책감과 죗값은 가해자가 가지고 가야 할 것이지 피해자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은 타인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일이기도 하다. 타인은 그러한 일에서 단 하나의 역할만을 해야 한다. 혹시 피해자가 지고 있는 짐이 있다면, 그것을 내려주는 것.

현재 주변에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 있거나, 자신이 그렇다면 지금 당장 1366으로 도움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자세한 이유와 설명, 성폭행/성폭력에 노출 되었을 때의 대처방안에 대한 글은 링크로 이동하셔서 숙지를 바랍니다. 피해자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언제든 자신과 주변인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동의.

'동의' 없는 계약은 사기죄로 간주되듯,

동의 없는 관계는 범죄, 덜도 더도 아닌 범죄입니다. 어떤 말로도 그것을 옹호하거나 덮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주스를 먹기 위해 주스병을 깨부수지 맙시다.

No means -

No.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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