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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KBS와 MBC의 뉴스를 보지 않은 건 꽤 오래된 일이다

비민주적 정권을 뒤엎고 등장한 새 정부라면 한층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유지해햐 한다는 데 딜레마가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부패한 권력의 주구이든 뭐든 임기를 보장해 주는 것이 맞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앉아 사사건건 사보타주를 하는 한 언론개혁은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보수언론은 새 정부가 KBS와 MBC를 장악해 어용언론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명박근혜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 경우에도 그런 비판은 새 정부가 정말 어용언론을 만든 다음에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준구
  • 입력 2017.06.12 08:18
  • 수정 2017.06.12 09:56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페이스북

여러분에게 솔직히 고백하건대 지난 탄핵정국을 지나면서 나는 JTBC 뉴스룸의 '광팬'이 되었습니다.

저녁 8시부터 시작해 한 시간 반 동안 계속되는 뉴스쇼가 얼마나 흥미진진하던지요.

특히 손석희 씨의 앵커 브리핑을 볼 때마다 늘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옴을 느꼈습니다.

내가 JTBC 뉴스룸의 광팬이 된 것은 그 프로그램 자체의 매력이 큰 작용을 했지만, 다른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실망도 이에 못지않게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특히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KBS와 MBC가 처참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한 실망이 감당 못할 정도로 컸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그런 방송을 보려고 시청료를 내야 하나?"라고 한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이명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은 언론과 권력기관을 사유화해 민주질서의 근본을 흔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의 정권들도 언론과 권력기관에 자기편 사람 심어놓고 권력 보위의 방편으로 사용한 것이 아느 정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에서 이명박근혜 정권처럼 철저한 사례는 민주화가 된 이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을 완전한 권력의 주구로 타락시킨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오늘은 마침 6.10 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날이군요.

30년 전 전두환의 철권통치에 진저리를 내던 그 시절이 새록새록 기억에 떠오릅니다.

그때 "땡전뉴스"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9시를 알리는 시보가 땡하고 울리자마자 전두환이 화면에 나온다고 해서 생긴 말입니다.

전두환이 저지른 죄업 중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그렇게 언론을 사유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물러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정도로 언론을 사유화한 정권은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자기 편 사람을 심어놓고 여론을 자기네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골적으로 언론을 사유화하는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MB정권이 들어서면서 180도로 바뀌게 됩니다.

집권 초기 광우병사태로 톡톡히 혼이 난 MB는 방송 장악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 같습니다.

KBS와 MBC를 완전히 장악한 MB 아바타들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잘라내거나 한직으로 좌천하는 일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 두 방송국의 내 제자들에게서 전해들은 그들의 무자비한 횡포는 전율을 금치 못할 정도였습니다.

오직 '공정방송' 하나를 위해 일한다는 젊은 언론인들의 자존심을 잔인하게 짓밟아버린 MB 아바타들은 우리 언론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도 그들에 의해 상처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좌절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KBS와 MBC가 정권의 주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사업 관련 보도에서 한 점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공정한 보도를 하려 한다면 그 당시 4대강사업의 졸속 추진에 반대하는 수많은 양심적 지식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두 방송의 뉴스를 켜면 언제나 4대강사업의 허황된 청사진으로 점철된 용비어천가만 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KBS와 MBC가 공영방송 본연의 비판기능만 제대로 발휘해 줬어도 4대강의 비극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 있었다고 봅니다.

비판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이 두 방송은 끝끝내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 비극을 막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4대강사업을 희대의 사기극으로 단정 짓는데, 이 두 방송은 그 범죄행위의 주요 공범자들이었습니다.

새 정부가 드디어 KBS와 MBC에 손을 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극단적 인사를 재외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KBS와 MBC를 근본적으로 손 봐야 한다는 데 감히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언론적폐'야 말로 가장 시급하게 청산해야 할 적폐라는 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조직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면 거기에 알 박혀 있는 과거 정권의 수족들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그런 일을 별 스스럼없이 마음대로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민주적 정권을 뒤엎고 등장한 새 정부라면 한층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유지해햐 한다는 데 딜레마가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부패한 권력의 주구이든 뭐든 임기를 보장해 주는 것이 맞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앉아 사사건건 사보타주를 하는 한 언론개혁은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새 정부가 KBS와 MBC를 망친 주범들에게 알아서 물러나라고 압력을 가하나 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당은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펄펄 뛰고 있구요.

그러나 편파보도를 일삼아 공영방송의 정신을 유린한 사람들을 솎아내는 것 그 자체가 어떻게 언론 장악과 같은 말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사람들을 솎아내고 새로 태어난 두 방송이 또 다시 권력의 주구가 된다면 그때 가서야 비로소 언론 장악이라는 말이 정당화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또 한 번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언론 장악 운운 하며 새 정부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는 세력들이야 말로 과거 권력기관과 언론을 사유화하는 데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던 사람들 아닙니까?

백보를 양보해 그 세력의 어떤 한 개인이 그것은 MB와 박근혜의 작품일 뿐 자기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변명하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그런 비민주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권력집단에 빌붙어서 산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어떤 보수언론은 새 정부가 KBS와 MBC를 장악해 어용언론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명박근혜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 경우에도 그런 비판은 새 정부가 정말 어용언론을 만든 다음에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영언론을 망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 그 자체가 어용언론을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공영방송의 암흑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 땅의 정의는 영원히 바로 설 수 없는 것이구요.

솔직히 말씀 드려 나 자신도 이 상황에서 새 정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알량한 원칙을 지켜 그들의 임기를 보장해 주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들의 죄과를 물어 솎아내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또 한 번 솔직히 고백한다면 이런 고민을 하기가 싫어 정치와 담을 쌓고 사는 겁니다.

그러나 조그맣게나마 희망의 불빛이 보인다는 점에서는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처참하게 망가져 청취자들의 외면을 받는 공영방송을 지금 이 상태로 놓아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멀지 않은 장래에 KBS와 MBC의 뉴스를 다시 볼 때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공정보도 하나만을 자존심으로 삼고 격무를 마다하지 않는 수많은 젊은 언론인들이 보람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찾아오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6월 10일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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