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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사장 퇴진' 내부 성명을 대거 삭제했다

  • 김현유
  • 입력 2017.06.11 10:49
  • 수정 2017.06.11 10:51
ⓒ한겨레

<문화방송>(MBC)이 사내 게시판 글을 지난 7일 대거 삭제했다. 삭제된 글은 모두 김장겸 문화방송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명 성명이었다.

문화방송 사쪽은 글을 삭제한 이유로,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특정인 또는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내용, 사생활 침해 및 인신공격성 내용을 담으면 안 된다는 사내 ‘전자게시판 운영 지침’ 위반을 들었다. 사쪽은 또 “(게시물들이) ‘조직 내 건전한 의사소통과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라는 게시판 운영 취지에 위배된다”고 했다. 사쪽은 게시물을 올린 직원의 게시판 사용 권한을 1개월 동안 제한하기도 했다.

사내 전자게시판 글을 심의하고, 이 같은 결론을 내린 곳은 문화방송 내 ‘전자게시판 운영위원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지난 9일 발표한 ‘사내 언로를 틀어막고도 공영방송을 자임하는가’ 성명에서, 해당 위원회 구성이 사쪽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일반 사원들을 대표하는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시청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한겨레>는 사쪽이 삭제한 성명 가운데 일부를 발췌해 공개한다. 아래 성명들의 전문은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블로그(▶바로가기)에서 볼 수 있다.

1. “30대 초반에 마이크를 빼앗긴 후배는 이제 30대 후반이 됐다”

어느 후배를 생각한다.

2009년인가 입사한 이 후배는 여느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회사는 점점 집처럼 편해졌고 일은 손에 붙어 갔다. 깨지고 욕먹고 하나라도 더 건져보겠다고 원치 않는 숱한 술자리에 끼어 앉은 3년어치만큼 기사는 볼 만해졌다. 친한 취재원도 늘어나 가끔 자잘한 단독이나마 챙겨올 수 있었고 그런 날 퇴근하는 뒤통수에 선배의 “수고했어!” 한 마디가 날아들면 복도에 서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길 기다리며 혼자 슬며시 웃었다.

후배의 생활은 2012년 여름부터 많이 달라졌다. 취재수첩도 노트북도 필요하지 않은 날들이 시작됐다. 얼떨떨했지만 그 땐 아무튼 이런 생활이 아주 길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자로 입사했으니 다시 기자질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그냥 상식적으로 그렇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긴 보도국 밖의 생활은 사실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일정도 목표도 없는, 회사와 계약했던 기자라는 직업과는 한참 먼 일상이 이어졌다. 성실한 성격이라 이것저것 배워 보기로 하고 중국어랑 영상편집을 한동안은 열심히 해봤다. 그러나 목적지가 없는 배는 금세 부유했다. 무엇보다 리포트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게 내 일이니까. 내가 배운 게 그 것뿐이니까. 너무 일하고 싶어 뉴스를 보는 게 괴로웠다.

그렇게 5년. 30대 초반에 마이크를 빼앗긴 후배는 이제 30대 후반이 됐다. 돌이킬 수 없는 어려운 시간들이 쉽게 흘러갔다. 지난 겨울 후배가 문득 “기자로 산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걸 세고 있었구나. 왜 세 봤을까. 농담을 들은 것처럼 선배도 마주 웃었다.

후배의 세 번째 인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유가 없었고 전격적이었다. 선배는 그 속에서, 다시는 이 자에게 기자를 시키지 않겠다는, 기자의 명줄을 잘라 놓겠다는 살의를 느꼈다. 무덤 위 잡초를 베는 낫질의 무심함과 부지런함으로 70명 기자들의 생명이 시시때때로 뎅겅 뎅겅 잘려 아무데나 던져졌다.

- ‘[보도부문 35기 성명] 김장겸은 MBC를 떠나라’ 중에서

2. “정치적 외풍이 아니라 MBC 정상화를 염원하는 구성원의 총의”

김장겸 사장에 대한 퇴진 요구는 진영논리나 이념 때문이 아니라, 김사장과 그 체제가 반민주적이고 무능하기 때문이다. 또 MBC의 살 길은 도모하지 않고, 오히려 MBC를 이용해 일신의 영달과 사익을 챙긴 결과이다. ‘정치적 외풍’이 아니라 MBC 정상화를 염원하는 구성원의 총의이다.

- ‘[보도부문 34기 성명] 김장겸 사장은 퇴진하라’ 중에서

3. “균형이 맞지 않는 주장을 5대5의 주장인 것처럼 보도해오지 않았는지”

“그런 주장이 있는 건 어쨌든 사실이지 않냐”

MBC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 중 하나입니다.

뉴스에서 다루지 않아도 되고,

기사에 굳이 안넣어도 되는 내용인데도,

그걸 기어코 총을 쏘고 리포트 안에 끼워넣으면서

윗분들은 저 얘기를 했습니다.

(...)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과

공영방송 MBC가 그들의 주장을 뉴스로 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MBC뉴스에는 부족했습니다.

탄핵 찬반 여론이 8대2의 압도적인 차이로

6개월 넘게 이어져왔는데도,

마치 국민이 둘로 분열된 것처럼

균형이 맞지 않는 주장을 5대5의 주장인 것처럼

보도해오지 않았는지..

최순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에는 친박단체의 주장에,

대선 국면에서는 특정 정당의 주장에 비중을 두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고 자성해야 합니다

- ‘[보도부문 조합원 1인 성명] 김장겸 사장은 즉각 퇴진하라’ 중에서

4. “‘MBC스페셜’만 촛불시위와 탄핵을 방송하지 못했다”

지상파 3사의 다큐멘터리 중 만이 촛불시위와 탄핵을 방송하지 못했다. 6월 항쟁 30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마저 제작이 중단되었다. 일련의 사건들은 MBC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 콘텐츠제작국 PD들은 시청자보다 경영진의 입맛에 맞춰 방송소재를 찾아야 하는 절망적 상황이다. 시청자를 외면하고, 콘텐츠 제작의 자율성이 훼손된 상황에서 프로그램 경쟁력 제고와 회사의 위상 강화는커녕, 공영방송의 기본적인 책무조차 다하지 못하게 되었다.

- ‘[콘텐츠제작국 PD 성명] 방송을 막고 PD들을 모욕한 경영진은 MBC를 떠나라!’ 중에서

5. ‘강한 야당방송’ 되겠다고요?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김장겸 사장이 임원회의에서 “강한 야당방송이 되겠다”고 천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이왕이면 그 이야기가 김장겸 사장 취임 직후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 MBC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박근혜 정권의 비리와 오류, 무능에 대해 맹렬하게 보도했던 지난 해 하반기에, 300여명의 목숨이 진도 앞바다에 수장됐던 2014년 4월에, 거슬러 올라가 김장겸 사장이 정치부장을 맡고 있던 2012년 대선과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야당’의 시선으로 권력에 굴하지 않는 감시자와 비판자의 역할로 보도에 임했으면 더더더 좋았을 것이다.

-‘[보도부문 36기 성명] 김장겸 사장의 유일한 기여는 퇴진 뿐이다’ 중에서

6. “그가 꽃길을 걷는 동안, MBC는 몰락했다”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강력히 촉구한다.

사장의 약력이다.

2011년 2월 보도국 정치부장

2013년 5월 보도국장

2015년 2월 보도본부장

2017년 2월 MBC 대표이사 선임.

정확히 그가 꽃길을 걷는 동안, MBC는 몰락했다.

(…) 그 사이 해고자들의 고통은 심대해졌다. 이용마 기자는 암과 싸운다. 마이크를 빼앗긴 기자들은 여전히 영업부서로, 자회사로, 지원부서로 떠돌고 있다.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

우물이 말랐다. 우물 판 자들을 돌아오게 하라. 이제 진짜 뉴스를 하자.

-‘[보도부문 42기 성명] 김장겸 사장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용퇴하라’ 중에서

7. “품격있는 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기업에서도 경영성과가 저조하면 수장이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하물며 언론사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신뢰도와 영향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현 경영진은 그 職의 무거움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품격있는 젊은 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그만 자리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 ‘[보도부문 41기 성명] 물러나야 합니다’ 중에서

8. 언론 적폐 한가운데 MBC가 있다

국민은 적폐 청산을 명령했다. 국민의 가장 큰 분노는 언론 적폐를 향해 있다. 그 한가운데 MBC가 있다.

(…) 김장겸 사장과 그 부역자들은 알아서 떠나라! 그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보도부문 40기 성명] 알아서 떠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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