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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휴대전화 만들다 실명된 한국청년, UN서 발언

“지금 여러분 손에 있는 것(삼성·엘지 휴대전화)에 제 삶이 담겨있다”

9일 오전(이하 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35차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장에 29살 한국 청년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그는 2015년 1월 단 보름 동안 경기 부천의 삼성 휴대전화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에 중독돼 실명 당한 노동자 김영신씨였다. (관련기사: 나는 어떻게 메탄올로 실명이 됐나)

연설을 앞두고 김씨는 자신이 할 연설을 영어 발음대로 큼지막한 글씨의 한국말로 옮긴 뒤, 종이가 꾸깃꾸깃해질 때까지 그 종이를 눈앞에 대고 외우고 또 외웠다. 긴장된 표정의 그가 서툰 영어로 연설을 시작하자 회의장에 있던 백여명의 각국 대표들이 눈이 그를 향해 쏠렸다.

김씨는 “나는 여러분의 휴대전화를 만들다가 시력을 잃고 뇌손상을 입었다. 삼성전자 3차 하청업체에서 하루 12시간씩 밤낮없이 2주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했다”며 “우리는 일회용 종이컵처럼 사용되고 버려졌고, 아무도 제조업 파견이 불법이라고, 우리에게 메탄올이 위험하다고 말해주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에는 나같은 청년이 최소 5명이 더 있다. 아무런 응답도, 아무런 사죄도, 아무런 보상도 없었다. 정부에서도, 기업에서도 정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원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이었다”며 “삼성과 엘지, 한국정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인간의 삶, 우리의 삶은 기업의 이윤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힌 뒤 연설을 마쳤다.

현장에 있던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김씨가 ‘아무도 메탄올이 위험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 대목에서 회의장에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며 “각국 대표들이 김씨의 발언을 집중해 들었고, 발언이 끝난 뒤엔 한국 활동가들이 모두 눈물을 쏟았다”고 <한겨레>에 전했다.

김씨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삼성·엘지 등 대기업의 ‘하청산재’ 피해를 증언하기 위해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5일 밤 제네바에 도착했다. 8일부터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이 작성한 한국 방문 보고서가 상정돼 논의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해당 보고서에는 메탄올 실명사건을 비롯해, 삼성 반도체·엘시디 공장의 직업병,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유성기업의 노조탄압,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의 산업재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등의 인권·노동권 침해가 언급돼 있다. 실무그룹의 보고서에서는 한국정부와 기업에 “재벌 등 원청기업의 인권 보호책임이 강화돼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도 포함돼있다. (관련기사 : 유엔 “한국 원청기업, 인권 보호책임 강화돼야”)

김씨의 연설 뒤, 마이클 아도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의장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정부와 삼성 모두 공급망 관리에 단호한 조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 약속이 지켜지는지 지켜볼 것이고 메탄올 피해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연설을 마친 뒤 김씨는 “연설할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분들께 고맙고, 이 사건을 많이 알릴 수 있는 기회, 피해자들에게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세계적인 자리에서 국민이 목소리를 낸 만큼 정부도 (적절한 조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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