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후배의 소리를 듣지 않을 때 생기는 공포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나의 위치가 올라간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흰머리나 줄어가는 체력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뿌듯하게 여기던 자신감과 전문성 그것은 나의 선배가 줄어가고 내 경험이 쌓여갈수록 설득불가의 괴물이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설득되고 바꿔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고쳐줄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 그것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을 필요로 한다.

ⓒpeshkov via Getty Images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과 어김 없이 먹어가는 나이들과 함께 감사하게도 내가 가진 것들도 늘어가고 있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꼬박꼬박 숫자의 크기를 더해가는 호봉 덕분에 끼니 걱정 안 할 정도의 경제력도 생겼고 나름 쌓아올린 경험들은 소모적인 다툼이나 실수를 줄여주는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뿌듯한 일 중 하나는 교사생활 10년을 넘기면서 이제 조금은 전문성이라는 냄새를 맡아간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시기에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내 위치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모두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못할지언정 스스로에게 큰 자신감으로서의 재산이 되곤한다.

그런데 세상은 원래 공평한 것인지 얻는 것이 있으면 늘 그만큼의 내려놓음이 동반되는 것 같다.

약간이나마 불어난 통장잔고의 액수는 몇 가닥의 흰머리를 함께 데려왔고 몇 번의 실패에도 같은 도전을 반복할 수 있게 도와주던 체력은 실패의 횟수가 줄어가는 것과 비례하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아가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것들이야 생로병사의 이치이기도 하고 아직은 그런 것을 논하기엔 젊음을 넘어서서 너무도 어린 나이이기에 큰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 찾아온 후배 교사와의 대화 시간은 내게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후배의 고민은 회사에서라면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상사와의 불화에서 출발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여서 교직의 지속에 대한 고민으로 커져 있는 상태였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스스로의 입장에 유리하게 재구성하는 놀라운 편집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고민 속 상사는 고집불통 안하무인에다가 턱 한 쪽 아래에 심술보까지 달고 있을 것 같은 자연스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인물이었다.

그간 그가 시도했던 설득과 타협과 수많은 눈물겨운 노력들을 나열하는 긴 시간들이 흐르면서 나의 처방은 단호함과 확신을 동반하여 짧게 내려지고 있었다.

나는 후배에게 있는 그대로 그를 인정해 주라는 이상의 조언을 찾지 못했다.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와는 관계없는 상냥한 응대와 그의 지시나 물음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표시 그것 말고는 내가 후배에게 내릴 수 있는 처방은 없어 보였다.

인정이라는 점잖은 표현을 쓰긴 했지만 글을 읽는 분들이 짐작하는 대로 그것은 최고 수준의 무시였다.

내가 내린 그 상사에 대한 진단 또한 '교화 불가'라고 하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 상사는 스스로가 겪어온 시간과 경험들에 지나친 자신감을 부여한 나머지 설득의 여지를 모두 내던져 버린 듯했다.

같은 사무실 안에 그의 고집을 꺾을 만한 선배들이 하나둘 퇴직하는 동안 그의 삐뚤어진 고집은 점점 더 완고해지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고집불통으로 읽혀지는 그의 모습들을 스스로만큼은 전문성과 자심감으로 읽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매우 고집이 강한 편이다. 주관이 뚜렷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렇게 감싸기엔 쓸데없는 고집도 많다.

후배와의 대화를 마치면서 조금씩 무서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상냥하게 웃어주고 나의 조언을 경청하던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갔다.

그들의 얼굴과 그들의 표현은 나를 향한 진심이었을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나의 위치가 올라간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흰머리나 줄어가는 체력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뿌듯하게 여기던 자신감과 전문성 그것은 나의 선배가 줄어가고 내 경험이 쌓여갈수록 설득불가의 괴물이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음날 어느 기자분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대답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뱉어낼 수 있는 한 마디 그것은 어쩌면 내 삶에 필요한 자세였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많은 것을 새로운 모양으로 바꾸어 간다.

우리는 언제나 설득되고 바꿔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고쳐줄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 그것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을 필요로 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자신감 그 안에 많은 것들은 논리적 근거를 상실한 고집이었을 것을 고백한다.

돌아보자! 우리에겐 아직 따끔한 충고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선배 #나이 #안승준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