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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서 산다

작은 방관, 아무 일 아니라는 윽박지름이 쌓인다. 뭐 지나가는 미친놈이 때리는 일도 있지. 그냥 잊어버려. 남녀가 싸우다가 성질이 욱해서 한 대 때릴 수도 있지. 여자가 맞을 짓을 했겠지. 같이 술 마시면 남자가 좀 작업 걸고 세게 나갈 수도 있지. 왜 술을 같이 마셨어? 그런 방관이 쌓인다. 폭력적인 소수의 남자에 대한 관용이 쌓인다. 그리고 그 소수의 남자 중 하나는 빡치는 순간에 지나가는 여자를 보면 무자비하게 폭행해도 괜찮을 것 같다 판단을 내린다. 실제로 이번에도 30분 만에 석방 되었으니까, 그 사람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세상에서 산다.

  • 양파
  • 입력 2017.06.08 10:27
ⓒYTN

어떤 여대생이 길을 가고 있었다. 어떤 남자는 지인을 마구 폭행하다가, 그 여대생을 보고 폭행하기 시작했다. 10분 동안 그녀는 얻어맞고 걷어차이다 코뼈가 무너졌다. 이 모든 일이 CCTV 에 잡혔다. 경찰이 도착했으나 이 남자가 호흡곤란 증상을 보인다는 이유로 30분 만에 구급차를 부르고 석방했다.

그리고는 이 사람에게 조사를 하겠다고 두 번이나 출석을 요청했지만 그 남자는 거부했다.

자, 이전 암매장 3년형 사건과 비슷하게 나는 경찰 내부의 절차가 어떤지는 잘 모른다. 사람을 체포했는데 방금까지도 넘치는 에너지로 십분 넘게 사람 둘을 폭행하던 이가 갑자기 구급차를 불러줘야 할 증세를 보인다면 구급차 불러야겠지. 하지만 그러면 끝인가? 그 후로는 자유의 몸인가? 설마 이런 일이 이전에 없었던 건 아닐텐데, 그럼 나도 체포 당하면 과호흡 증세 보여서 병원 갔다가 내 발로 퇴원하고, 출석 요구 거부하면 다인가? 체포 당해야 하는 거 아닌가?

YTN 뉴스인데 이게 얼마나 경찰에게 불공평하게, 단편적으로 보도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한 여자는 아무런 이유 없이 길 가다가 '쳐다봤다'라는 이유로 얻어맞았다는 것. 설마 지나가는 여대생이 한참 다른 사람을 폭행 중인 남자를 무시하는 눈길로 봤을까. 그 남자는 지나가는 사람이 여대생이 아니라 마동석이라도 그렇게 폭행했을까. 그리고 얻어 맞은 사람이 고위 관리였다면 경찰은 30분 만에 풀어주고 나중에 '출석 하세요오오오' 정도로 끝냈을까? 얻어맞은 사람이 유명 인사의 아이였다면? 늙은 부모였다면?

보는 입장에서는 이 경찰서에서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얻어맞는 게 그렇게 큰 일이 아닌가 질문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질문은 여자들에게 익숙하다. 남편을 죽인 여자가 있다고 하자. 보통 이런 여자들은 평소에도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경찰이 개입하지 않았거나, 경찰이 왔더라도 '알아서 해결하세요'라고 하고 가는 경우가 아주 많다. '집안 내의 일'이라고 넘어갔다. 남자 아이들에게 성희롱을 당한 여자 아이 역시 이런 일에는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음을 배운다. 남자애가 그럴 수도 있지. 남자는 다 그래. 스토킹? 남자가 좀 좋아한다고 쫓아다닐 수도 있지. 엄살 부리지 마. 성추행?? 상관이 잘 해주려고 하는데 예민하게 반응하네. 아무 일 아니야. 시선 강간?? 단어 하고는.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게 무슨 강간이냐. 그냥 쳐다 볼 수도 있지. 엉덩이 좀 만졌다고 닳냐. 여자인게 벼슬이다 아주. 그걸 가지고 무슨 경찰서야 경찰서는.

이런 작은 방관, 아무 일 아니라는 윽박지름이 쌓인다. 뭐 지나가는 미친놈이 때리는 일도 있지. 그냥 잊어버려. 남녀가 싸우다가 성질이 욱해서 한 대 때릴 수도 있지. 여자가 맞을 짓을 했겠지. 같이 술 마시면 남자가 좀 작업 걸고 세게 나갈 수도 있지. 왜 술을 같이 마셨어? 이런 식으로, 여성에 대한 폭행은 '어쩔 수 없이 그냥 일어나는 일' 정도로 희석이 된다. 조심하면 피할 수 있는, 그러니까 조심 안 한 사람 잘못이며 막을 수 없는 자연의 법칙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런 방관이 쌓인다. 폭력적인 소수의 남자에 대한 관용이 쌓인다. 그리고 그 소수의 남자 중 하나는 빡치는 순간에 지나가는 여자를 보면 무자비하게 폭행해도 괜찮을 것 같다 판단을 내린다.

실제로 이번에도 30분 만에 석방 되었으니까, 그 사람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세상에서 산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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