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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 그리핀의 행동을 싫어할 수는 있다. 그래도 옹호해야 한다

Comedian Kathy Griffin (C) cries during a news conference in Woodland Hills, Los Angeles, California, U.S., June 2, 2017. REUTERS/Ringo Chiu     TPX IMAGES OF THE DAY
Comedian Kathy Griffin (C) cries during a news conference in Woodland Hills, Los Angeles, California, U.S., June 2, 2017. REUTERS/Ringo Chiu TPX IMAGES OF THE DAY ⓒRingo Chiu / Reuters

캐시 그리핀에겐 힘든 2주였다.

코미디언인 캐시 그리핀은 가짜 피에 적신 도널드 트럼프 얼굴 모양의 싸구려 고무 가면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폭스 뉴스의 메긴 켈리에 대해 “그녀의 몸 어디에선가 피가 나오고 있다”고 한 트럼프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리핀은 별안간 본인의 목이 날아가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정치인들은 그리핀을 규탄했다. 매체사들은 그리핀의 쇼를 취소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그리핀을 공격했으며, ‘트럼프 가족 정보원’은 배런 트럼프는 그 이미지가 진짜라고 믿었다고 주장했다. 그리핀이 거의 10년 동안 뉴 이어스 이브 특집을 진행해왔던 CNN은 그리핀을 해고했다. 심지어 그리핀의 절친한 게이 친구 앤더슨 쿠퍼마저 거리를 두고 그녀의 행동에 대한 반감을 트위터에 올렸다.

공식적으로 말해두자면, 나는 캐시 그리핀의 사진을 보고 간담이 서늘했다. 분명히 역겹고, 절대 부적절한 일이었다.

처음에 그리핀은 트럼프가 “이 나라와 세상에 어마어마한 해를 준다”고 믿으며, 이 사진은 그에 대한 “예술 표현”이라고 방어했으나,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재빨리 깨닫고 사과했다.

반발도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하다. 이런 사진을 보면 사람들은 질겁할 수밖에 없다. 소름끼치고 섬뜩하며, 불쾌하고 무례하다. 하지만 이건 애초에 그러라고 찍은 사진이다.

트럼프의 알몸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한 조각상부터 블라디미르 푸틴과 트럼프가 사랑을 나누는 벽화까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예술적 저항 작품들은 다양하게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그리핀의 이 사진이 아마 가장 불편할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충격을 주려는 의도로 제작된다. 몽유병에 걸린 것 같은 미국 시민들을 흔들어, 트럼프 정권이 우리 나라를 얼마나 무시무시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지 인식하게 만들고 또한 맞서 싸우게 하려는 의도다.

절박한 시대엔 절박한 수단이 동원되기 마련이고, 지금 일어나는 일 중 ‘정상’이란 게 하나라도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무슬림 입국 금지, 여성 생식권 제한, 트랜스젠더 보호 철회 등 가장 위험한 정책과 행동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고 있고, 러시아 러시아와의 공모 혐의도 여전하다. 이럴 때 우리가 경험하는 공격을 조명하기 위한 의도로 일부러 불쾌감을 주는 그리핀의 사진과 같은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예술의 입을 막고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경계를 허물지 말라고 말하면, 우리는 건강하고 어려운 대화를 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미국인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지금같이 우리 역사 중 심각한 순간에 이 나라가 굴러가는 방식에 어떻게, 왜 참여해야 하는지를 의논하지 못하게 된다.

크리핀은 트럼프 암살을 요구한 게 아니었다. 이번 주에 그리핀은 “어떤 폭력도 용납하지 않으며, 도발적 예술은 ‘예술’로 남아야”하고, “삶이 예술을 모방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핀은 트럼프 정권이 저지른, 또 앞으로 저지를 수 있는 문자 그대로의 폭력, 비유적 의미의 폭력에 시선을 끈 것이었다.

그리핀의 사진 때문에 폭력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 또한 깨달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머리를 보여주어서 도널드 트럼프 같은 모든 남성들을 참수의 위험에 처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잔혹한 이미지를 올린 적은 없지만, 특정 집단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혐오의 언어는 현실에 영향을 주었다.

보수주의자들이 그리핀을 공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앤 쿨터, 마일로 이아노풀로스, 심지어 마이크 펜스 등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그리핀을 두둔하지 않은 것은 미심쩍지만 말이다. 그러나 뉘앙스나 맥락도 없이 재빨리 그리핀을 공격한 진보주의자들이 나는 가장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 생기고 있다. 그리핀의 행동이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최초의 과잉 반응이 가라앉자, 그리핀을 두둔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제나 선을 넘는 것이 코미디언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은 실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들어가 [트럼프가] 하고 있는 미친 짓을 할 경우, 우리가 최후 방어선이다. 정말이지 코미디언들은 여기서 최후의 진실의 목소리다.” 짐 캐리가 ‘엔터테인먼트 투나잇’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리키 저베이스와 제이미 폭스도 그리핀을 옹호했으며, 래리 킹은 CNN이 그리핀을 해고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흘 전에는 그리핀의 사진에 대한 분노의 포스트로 가득했던 내 페이스북 피드는 갑자기 정반대 방향으로 바뀌었다.

트럼프가 파리 기후협약 탈퇴를 결정한 것이 전환점이 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핀의 사진을 패러디한, 트럼프가 피흘리는 지구를 들고 있는 밈들이 즉시 나타났고, 그리핀의 정치적 발언이 비록 표현 방법은 별로였더라도 우리가 이제 겪을 엄청난 파괴에 비하면 그렇게 부적절한 것도 아닐 수 있구나, 라고 사람들은 갑자기 깨닫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게이 남성인 나의 안녕에 관심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내 존재와 생존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도적이고 온정적이며 진보적인 국가로서의 미국의 파괴를 정상적인 것으로 대하고 심지어 미화까지 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의 발언이 나오기를 염원해왔다.

이 시대는 반대 의견에 유독하다는, 심지어 반역이라는 딱지가 붙는 시대다. 이런 시대가 우리 역사상 처음은 아니다. 우리는 그리핀의 행동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 조잡했다, 역겨웠다, 유치했다고 생각해도 되고 말해도 된다. 하지만 그리핀이 그런 행동을 할 권리는 옹호해야 하며, 그녀의 논리를 이해하려고 시도는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그녀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들이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혼란스럽고 패닉을 불러일으키는 시대에 나는 도전을 받고 싶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억지로라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 줄 것을 원한다. 나는 내 분노를 쏟을 배출구가 필요하고,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웃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캐시 그리핀은 이 모든 걸 경험할 기회를 내게 주었고, 문제가 있고 도발적이긴 해도 나는 그리핀이 앞으로도 최소 30년 정도는 더 활동하며 내게 이런 경험을 더 주었으면 좋겠다.

허핑턴포스트US의 You Can Hate What Kathy Griffin Did. Here’s Why You Should Defend Her Anyway.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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