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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한 댓글부대(?) 이야기

영미의 정보기관들은 치밀하게도 또 하나의 역정보를 준비하니 그것은 바로 패튼의 미군이 주둔하였음직한 영국 내 지역의 지역신문에 영미 정보기관의 기관원들이 독자투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요새 젊은 미군 병사들이 밤에 술을 먹고 고성방가해서 괴롭다. 단속해 달라."라고 하는가 하면, "젊은 미군 녀석들이 동네 처녀들에게 집적거려서 풍기가 문란해져서 싫다"하는 점잖은 영국 노인분들의 꾸지람성 투고까지 모두 연합국 정보기관원들이 단 댓글 아니 이들이 창작해 낸 '독자'투고였던 것이었다. "미군, 주둔지에서 행패" 같은 요새로 치면 가짜 뉴스들이 실리기 시작했고 영국 신문들을 독일 정보기관을 통해 주의깊게 살펴 보았을 독일군은 방어군의 주력을 노르망디가 아닌 칼레로 옮기는 치명적 실수를 하게 된다.

  • 바베르크
  • 입력 2017.06.06 05:30
  • 수정 2017.06.07 09:54

1.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일인 6월 6일

6월 6일은 우리나라에서는 현충일이지만, 역사적으로는 1944년 6월 6일에 있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일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의 나찌 독일의 점령 하에 있었던 서부 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군사작전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2개월여만에 파리가 수복되는 등 나찌 독일로부터 해방되었고, 히틀러는 이듬해 4월 30일 자살했으며, 독일은 그 일주일 후 항복했다. 이렇게 노르망디 상륙작전 덕분에 그로부터 채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범죄와 학살을 저지른 적폐인 나찌즘은 척결되었다(군사작전 개시일을 뜻하는 D-day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일인 1944년 6월 6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마도 처음 쓰여서 유명해졌고, 아시다시피 그 후 프로젝트의 개시일이나 신제품의 출시일 같은 의미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1944년 6월 5일 미군 낙하산 부대원들을 격려하는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

2. D-Day의 영웅, 아이젠하워 장군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총지휘한 이는 당시 유럽에서의 연합군 총사령관인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다. 이 역사적인 상륙작전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노심초사하였다는 아이젠하워 장군은 실패시에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물러나겠다는 사퇴성명서를 상륙작전 개시 전에 미리 준비하기도 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아이젠하워 장군은 맥아더 장군의 부관을 지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경력은 맥아더 장군보다 한참 늦었으나 군에서 은퇴한 후 정계에 투신해서는 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경력 덕분에 1952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어(공화당) 재선까지 성공하여 8년간 대통령을 지내기도 하였다(반면에 아이젠하워의 군 대선배인 맥아더 장군은 태평양 전쟁을 지휘하였고, 일본을 점령하여서 거의 왕노릇을 하다시피했고, 6.25 때 인천상륙작전까지 성공으로 이끌었으나, 트루만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해임된 후 정치적 야망도 꽃피우지 못하고 만다).

3. 나찌에 맞서는 유럽의 제2전선을 열어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유럽에서의 주요 교전국들 중에서 러시아(소련)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파시스트들을 패퇴시키는데 있어서는 가장 큰 희생을 치른 나라이기도 하였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추동한 주요 정치인도 당시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1939년 9월 1일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스탈린의 소련은 그 전달에 체결된 독소불가침 조약에 의해 독일에 호의적인 중립을 지켰으나, 1941년 6월에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다음부터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두 악마는 서로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다. 제2차 대전 중의 독소전으로 희생된 소련인들의 수는 줄잡아 2천만명이 넘는다고 하며 주전장터가 된 소련 국토도 엄청나게 파괴되어 황폐해졌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다음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던 독일도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자 미국도 본격적으로 독일과 전쟁 중인 소련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돕게 된다. 스탈린은 미국과 영국에게 나치 독일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그리고 소련인들만이 모든 희생을 떠안을 수는 없으니) 유럽대륙 내에 제2전선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계속해서 강력히 요청했다. 영미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던 독일의 명장 롬멜 장군이 이끌던 독일군과 이태리군을 물리친 다음에 1943년에 이태리에 상륙하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제대로 된 제2 전선은 프랑스에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연합국 내의 합의였고 심지어 나찌 독일도 그렇게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었다.

1944년 노르망디를 방문한 독일군의 롬멜 장군.

4. 노르망디냐, 칼레냐?

그런데, 과연 연합군이 프랑스의 어디에 상륙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독일군의 대부분이 소련과 싸우느라 동부전선에 투입되어 있어서 서부유럽에 제2전선이 열릴 경우 거기 투입될 수 있는 독일군의 숫자는 빤했기 때문에 독일 입장에서는 가급적 정확히 연합군의 상륙지점을 예측할 수 있다면 거기에 병력을 집중시켜서 연합군을 바다로 쓸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패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연합군의 상륙지점 예측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연합군의 상륙지점으로 지목된 지점은 프랑스의 노르망디와 칼레. 독일군측에서 방어를 책임진 장군은 앞에서 본 것처럼 북아프리카에서 연합군에게 쫓겨나긴 했지만 불세출의 명장인 롬멜 장군이었다.

5. 허수아비 부대, 댓글 부대(?) 그리고 가짜 뉴스

여기서 연합국 정보기관들은 희대의 기만(欺瞞)작전을 전개한다. 노르망디에 상륙할 실제 연합군병력은 아이젠하워 장군의 지휘하에 준비 중이었는데 독일 첩보기관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칼레에 상륙할 예정이라는 패튼장군 지휘의 가짜 '상륙부대'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연합국 정보기관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숨기고 칼레에 연합군이 상륙할 것이라는 역정보를 나찌 독일에 흘리기 위하여 칼레에 상륙하기 좋은 영국 내 지역에 패튼장군이 '지휘하는' 가짜 군부대를 만들어 냈다. 널판지로 만든 가짜 비행기와 텅빈 막사들이 준비되었다.

영국 내 휴민트(실제 현지에서 활동하는 첩보원)가 적고 항공사진 정도만 확보할 수 있었던 모양인 나찌 독일은 그 정도 역정보에도 긴가민가하는 상태가 되었겠지만 영미의 정보기관들은 치밀하게도 또 하나의 역정보를 준비하니 그것은 바로 패튼의 미군이 주둔하였음직한 영국 내 지역의 지역신문에 이들 영미 정보기관의 기관원들이 독자투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요새 젊은 미군 병사들이 밤에 술을 먹고 고성방가해서 괴롭다. 단속해 달라."라고 하는가 하면, "젊은 미군 녀석들이 동네 처녀들에게 집적거려서 풍기가 문란해져서 싫다"하는 점잖은 영국 노인분들의 꾸지람성 투고까지 모두 연합국 정보기관원들이 단 댓글 아니 이들이 창작해 낸 '독자'투고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영미 정보기관들은 이런 독자투고들을 보고 신문사들이 실제 취재에 나서서 사실을 밝혀 버릴까봐 언론에 별도의 협조요청을 하였고 이런 독자투고를 뒷받침하여 신문에도 이제 "미군, 주둔지에서 행패" 같은 요새로 치면 가짜 뉴스들이 실리기 시작했고 영국 신문들을 독일 정보기관을 통해 주의깊게 살펴 보았을 독일군은 방어군의 주력을 노르망디가 아닌 칼레로 옮기는 치명적 실수를 하게 된다. 결국 운명의 D-Day인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은 상대적으로 독일군의 방비가 약했던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상륙했고 나찌로부터 유럽대륙이 해방되는 첫걸음이 내디뎌졌다.

6. 우리는 이런 국가 정보기관을 가질 수 있을까ㅠㅠ

503호 정권이 무려 선거로 탄생함에 있어서, 국가 정보 기관들이 조직적으로 SNS를 통하여 활동하였음이 드러났던 참담한 일이 있었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인 우리 처지에서 이렇게 국가 안보, 아니 세계 평화를 위하여 맹활약했던 외국 정보 기관의 이러한 역사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우리나라 정보기관들의 음습한 역사에 비추어 보면 정말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새 대통령이 임명한 국정원장이 논란이 많았던 국내 정보 담당관제를 완전 폐지하여 이제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는 더 이상 개입하지 않고, 본연의 임무여야 할 대북, 대외 정보 수집 기능 등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니 앞으로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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