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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여성 차별과 강경화 후보자

저 연배의 여성이, 저 자리에 올랐다면 아무리 배경이 좋았다 해도 남자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노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여성을 두고 "딜한다" "강경화를 날린다" "내준다"라는 말을 감히 입에 올리는 중장년 남성들이 있다. 나는 남자들이 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대단히 불편했다. 지금껏 여성을 차별하는 환경을 누려왔으면서, 여성들의 희생 덕분에 그 자리에 오른 것도 모르고, 지금 와서 또 여성을 차별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그래왔던 것처럼, 강경화씨를 여성이라고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야당과의 '딜'을 위해 왜 유독 강경화씨에 대해서만 "날린다" "내준다"는 말을 쓰는가? 굳이 누구를 내주어야 한다 치자. 그런데 강경화를 지키고 김상조를 내주면 한국이 지옥 되나? 도종환을 내주면 왜 안 되는데?

  • 성우제
  • 입력 2017.06.04 10:42
  • 수정 2017.06.04 10:58
ⓒ뉴스1

나는 1982년에 대학에 입학했고 내 아내는 83년 입학이니 우리는 동기나 다름없다. 같은 대학, 같은 문과대 출신. 과만 다르다. 옛날 대학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가장 놀라워 했던 것은 당시 여성 대졸자의 좁디 좁은 취업문.

우리가 졸업하던 때인 1986~88년 무렵 남자들은 취직 걱정을 하지 않았다. 문과대 출신한테도 취직 자리는 넘쳐났고, 어느 회사를 가느냐 하는 것이 고민거리였다. 반면, 아내 말을 들어보면 번듯한 기업들은 아예 여성 채용공고조차 내지 않았다. 큰 회사에 취직하기는 별따기였다. 취직 걱정을 하지 않은 남자들은, 여자들도 우리처럼 잘 했겠거니 했다.

당시만 해도 형제 많은 집에서는 여자가 오빠나 남동생 때문에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똑똑하고 공부 잘 해도 남자 형제들이 많으면 대학을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상 졸업 후 남자 형제 뒷바라지 하는 것도 많이 보았다. 공순이 소리 들으며 오빠, 남동생 학비 댄 여성들을 나는 안다. 남녀 공학 대학에는 당연히 여자들이 적었다.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잘 해도(학점은 여학생들이 훨씬 좋았다), 졸업 후 취업할 때 또 차별 대우를 받았다.

대학원 때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공부한 사람들 가운데 박사학위를 받은 남자들은 교수로 모두 취직했다. 반면 같은 조건을 갖추고도 교수가 된 여자는 한 명도 없다. 남자들은 어느 대학에서 가르치는지 다 알지만, 난다 긴다 하던 여자 선후배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른다.

우리 때 그 정도였으니 우리의 10년, 20년 선배 여성들에 대한 차별은 훨씬 더 가혹했을 것이다. 출생하면서부터 여자 아이라고 환영 받지 못했다. 성장하면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차별 대우를 하는데도, 그것을 이겨내고 전문 직업인으로 활동하는 선배들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사회 활동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가사와 출산과 보육에서 해방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남자들보다 훨씬 더 부당하고 가혹한 평가를 받았다. 여성을 평가하는 잣대, 직무와 전혀 관계없는 잣대가 우리 사회에 하나 더 있었다. 그러니까 나이 쉰이 넘어서도 넘어서도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좁디 좁은 문을 열었으며, 상상도 하기 어려운 험한 길을 걸어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래서 내 눈에는,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우리 연배와 선배 여성들은 그 누가 되었든 참 대단해 보인다. 작년 뉴스에 유엔사무총장 정책특보가 되었다는 강경화라는 여성이 등장했을 때, 나는 이 분이 외국에서 공부한 줄 알았다. 저기 저 자리에까지, 국내 출신의 여성이 올라갔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멀쩡하게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까지 했다는 이력을 나중에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여겼더랬다. 저 분을 아는 사람들은 페이스북에서 한결같이 칭송했다. 무엇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유엔 마이크를 앞에 두고 찍힌 저 사진이 참 근사했다. 멋진 은발은 말할 것도 없고, 인상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잘 살아온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분이 문재인 정부의 외무부장관으로 지명되었다는 발표가 났을 때, 많은 이들이 '경력'과 '여성'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빼어난 영어 실력'도 화제가 되었다. 이후 이른바 '위장전입' '증여세 탈세' '기획부동산' 등이 그것들을 뒤덮더니, 급기야 '딜'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누구를 살리기 위해 강경화를 날려야 한다는 말까지 회자된다. 오늘 JTBC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위장전입과 증여세 탈세를 본인이 인정했다"고 말했다.

나는, 문재인내각 청문회가 진행되는 이 시점에도,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여성 차별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강경화씨의 위장전입이, 위장전입 본뜻이 지닌 그 추악한 위장전입인가?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국내에 살면서도 안 냈던 황교안은 넘어갔는데, 외국 살았던 강경화는 왜 못 넘어가나? 외국살이하는 것이 그렇게도 감안이 안 되나? 기획부동산? 오보에 대해 해당 언론사는 강 후보자에게 제대로 사과라도 했나? 그것을 보란듯이 보도한 손석희 남성 사장이 보란 듯이 사과를 했는지 묻는 것이다.

저 연배의 여성이, 저 자리에 올랐다면 아무리 배경이 좋았다 해도 남자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노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여성을 두고 "딜한다" "강경화를 날린다" "내준다"라는 말을 감히 입에 올리는 중장년 남성들이 있다. 나는 남자들이 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대단히 불편했다. 지금껏 여성을 차별하는 환경을 누려왔으면서, 여성들의 희생 덕분에 그 자리에 오른 것도 모르고, 지금 와서 또 여성을 차별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그래왔던 것처럼, 강경화씨를 여성이라고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야당과의 '딜'을 위해 왜 유독 강경화씨에 대해서만 "날린다" "내준다"는 말을 쓰는가? 굳이 누구를 내주어야 한다 치자. 그런데 강경화를 지키고 김상조를 내주면 한국이 지옥 되나? 도종환을 내주면 왜 안 되는데?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중장년 남성들,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와 주변을 돌아보라. 자기 때문에, 자기 연배 남성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동년배 여성들이 희생했는지, 말없이 희생을 감수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대학에서 강경화씨에게 배운 어떤 여성은 "강경화 선생님이 교수로 임용 안 되는 것을 보고 똑똑한 여학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리버럴한 분위기의 연세대에서 그랬다면 다른 대학 분위기가 어땠는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보기에, 야당과의 딜을 위해 누구를 날려야 한다면 남자 장관 두 셋을 날리고,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강경화는 지키는 게 옳다. 그것은 저 연배 여성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자 존경이기도 하다. 남자들이 잘 나서 세상 움직여왔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그런 착각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 대학 캠퍼스에서, 공평하게 치러지는 취업 시험에서 남녀 비율이 어떻게 뒤바뀌었는지를 확인해 보기 바란다. 똑같은 기회를 주니 여성들이 약진하는 거고, 그것은 곧 과거에 불공평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경화 후보자 입각 여부는 일체의 차별을 하지 않겠다는 문재인정부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차별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여성들에 대해 문재인정부와 한국사회가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으며, 지금의 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다른 것 모두 차치하고, 이렇게 멋지고 영어 잘 하는 여성 장관이 세계 외교무대에서 활약하는 걸 상상하면 기분 좋아지지 않나? 한국 대표로서 말이다. 콘돌리자 라이스도 내 눈에는 멋져 보였는데...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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