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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려두지 않았기에 생긴 문제"

교육부의 잘못된 갑질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건 MB정권 때부터였다. 재정지원을 무기로 총장직선제, 학장선출제를 교육부가 원하는 간선제로 강압적으로 변경했고,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을 비롯한 다양한 국립대 통제정책이 실행되었다. 총장/학장 직선제든 간선제든 장단점이 있다. 문제는 대학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대학거버넌스 문제를 교육부의 압력으로 결정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말 안들으면 돈 주지 않겠다'는 것. 교육부의 입맛에 따라, 대학의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국립대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 오길영
  • 입력 2017.06.03 08:05
  • 수정 2017.06.03 08:17
ⓒbaona via Getty Images

오늘 신문에서 연극인 이윤택 선생의 인터뷰를 읽었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관한 제언을 하고 있는데, 특히 아래 인용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상식적 발언이지만, 이제 그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아래 발언에서 "문화"라는 말을 "교육" 특히 고등교육으로 바꿔놓아도 거의 그대로 적용가능하다. 사립대학 정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에 일단 논외로 하고, 내가 일하는 국립대 정책과 관련한 몇가지 단상을 적는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기에 생긴 문제다."

지금 국립대학이 처한 어려움의 핵심은 국가, 특히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내버려두지" 않고, 경쟁주의에 기반한 소위 '정부재정지원사업'을 통제수단으로 삼아 대학의 모든 행정과 업무에 사사건건 개입하고 간섭했기 때문이다. 지금 교육부는 실질적으로 교육통제부다. 예컨대, 교수들에게 지급되는 교육연구지도수당 기준조차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만든 시행령에 근거해, 매년 전 국립대를 대상으로 '컨설팅'이라는 명목으로 시시콜콜 간섭하는 상황이다. 말이 컨설팅이지 전형적인 갑질이다.(그 과정에서 각 대학이 겪는 수모에 대해서는 차마 여기에 적고 싶지 않다) 대학의 자율성은 철저히 무시된다. 이런 모욕적인 일들이 하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국립대 구성원들의 자존감은 바닥이다.

 

이런 교육부의 잘못된 갑질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건 MB정권 때부터였다. 재정지원을 무기로 총장직선제, 학장선출제를 교육부가 원하는 간선제로 강압적으로 변경했고,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을 비롯한 다양한 국립대 통제정책이 실행되었다. 총장/학장 선출방식에서 직선제든 간선제든 장단점이 있다. 문제는 대학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대학거버넌스 문제를 교육부의 압력으로 결정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말 안들으면 돈 주지 않겠다'는 것. 그렇게 교육부의 자의적 입맛에 따라, 대학의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지난 9년간 벌어진 일이다.

 

그 결과 교육부가 그토록 좋아하는 외적 지표수치와는 상관없이, 그 내실에 있어 국립대는 황폐화되었다. 물론 그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 나를 비롯한 국립대 구성원들의 수동적 태도도 상황을 악화시킨 원인이다. 교육부가 던져주는 당근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 먹기 위해 굴종한 탓이다. 여기에는 누구보다 국립대 총장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자존심을 버리고 돈(재정지원)을 택했다. 깊이 반성해야 한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개인과 조직, 대학은 남도 존중하지 않는다.

 

"정부는 그냥 지원만 하고 간섭하지 않으면 된다. 간섭하거나 기획한다고 문화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다."

대학정책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은 고등교육정책은 '지원은 최대로, 간섭은 최소로'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선진국 대학정책은 그렇다. 그리고 지원에 대한 사후평가는 내외부 감사 등을 통해 엄정하게 하고 잘못된 것이 발견되면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물으면 된다. 이런 이유로 지금의 교육부는 해체하거나 교육지원처로 바꾸고, 정치권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장기적인 교육정책을 세우는 별도의 국가교육위원회를 둬야 한다. 이 위원회는 특히 고등교육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원회는 교육관료나 정치인이 아니라 교육당사자들이 주관해야 한다. 더이상 대학에 갑질하는 국가기구는 보고 싶지 않다. "간섭하거나 기획한다고" 교육부가 그토록 목표로 하는 '경쟁력'(sic!) 있는 대학이 "나오는 게 아니다."

  

"개별 작품을 선별해서 지원하는 게 아니라 보편복지로 가야 한다."

그 뜻도 파악하기 힘든 기괴한 이름을 붙인, 잡다한 대학재정지원사업을 폐지하고, 국립대에 대한 정부지원을 대폭 늘려서 실질적인 국립대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국립대 운영비(대학회계)에서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예산은 절반에도 못미친다. 한마디로 '반쪽국립대'다. 시민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반쪽이 아나리 온전한 국립대를 만들 때가 되었다.

 

결론: 문화든 교육이든 통제나 간섭이 가장 나쁘다.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그 자율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 앞으로 어떤 세부적인 문화정책, 고등교육정책을 펴든 이 기본적인 원칙을 잊지 않길 바란다. 황폐화된 국립대 현장에서 외치는 바람이다.

 

이윤택 선생의 말이다.

- 구체적으로 문화정책을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보는가?

"한마디로 말해 내버려둬야 한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기에 생긴 문제다. 또 건물을 짓지 말아야 한다. 광주의 아시아문화전당을 지었는데 솔직히 지금 처치 곤란이다. 건물에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국공립단체도 너무 많이 만들지 않아야 한다. 지금 예술작품을 국공립단체가 너무 많이 제작하고 있다. 민간에 맡겨야지. 정부는 그냥 지원만 하고 간섭하지 않으면 된다. 간섭하거나 기획한다고 문화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다. 문화융성이니 융합이니 콘텐츠니 문화 브랜드니 하면서 관에서 앞장서서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내버려두면 자연적으로 성과가 나온다. 그 성과를 놓치지 말고 브랜드화하면 된다. 작품 활동을 내버려두고 좋은 작품이 떠오르면 사후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대신 국가는 문화예술인에 대한 보편적 복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 문화예술인에게 의료혜택을 주고 젊은 예술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유럽은 다 그렇게 한다. 개별 작품을 선별해서 지원하는 게 아니라 보편복지로 가야 한다. 그래야 문화 르네상스가 이뤄진다." (한겨레 인터뷰)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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