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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 떠도는 여인들의 노래

19세기 말 생존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해 간 조선인들은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는 시련이 멈추지 않았다. 20세기 초, 정확히는 1937년, 17만 명의 고려인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 당한다. 고려극장의 배우들도 그 안에 있었다. 영화는 당시 고려극장 전설의 디바였던 이함덕의 발자취를 좇는 한편 그녀의 제자이자 생존해 있는 고려극장의 대표적인 디바 방 타마라를 방문한다. 영화는 고려인, 고려극장, 이함덕, 방 타마라를 넘나든다.

  • 정한석
  • 입력 2017.06.02 13:08
  • 수정 2017.06.02 13:14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의 감독 김소영은 창작자로서 남다른 정체성을 지녔다. 그녀는 영화감독 이전에 뛰어난 영화학자다. 그러니 김소영을 영화연구와 영화연출을 겸하는 국내 유일의 영화학자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편 주류영화와 독립영화를 막론하고 현존하는 여성감독 중 김소영에 견줄 만큼 지속으로 작업하고 또 왕성한 결과물을 내놓은 이는 손에 꼽힐 정도다. 〈거류〉(2000)이후 김소영은 장편영화 연출을 멈춘 적이 없다. 대략 지난 4년 동안에만 4편의 장편영화를 쏟아냈고 지금도 또 한편을 작업 중이다. 학자와 감독 사이를 넘나드는 그녀의 발걸음은 기민하고 폭넓으며 여성감독으로서 그녀의 행보는 끈질기고 강인하다. 이 혼종과 횡단과 몰두의 힘으로 그녀는 특정한 주제를 오래 탐사해왔다. 여성과 이산(민)이다. 이 주제를 이토록 신중하게 오래 성찰해 온 한국 감독 또한 김소영 외에는 없다.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는 김소영의 이런 남다른 정체성과 주제의식이 서로 묶이고 상승하면서 이뤄낸 한 성취다. 이른바 '망명 삼부작' 연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19세기 말 생존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해 간 조선인들은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는 시련이 멈추지 않았다. 20세기 초, 정확히는 1937년, 17만 명의 고려인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 당한다. 고려극장의 배우들도 그 안에 있었다. 영화는 당시 고려극장 전설의 디바였던 이함덕의 발자취를 좇는 한편 그녀의 제자이자 생존해 있는 고려극장의 대표적인 디바 방 타마라를 방문한다. 영화는 고려인, 고려극장, 이함덕, 방 타마라를 넘나든다.

이 과정에서 영화의 첫 번째 매혹의 지점이 이내 발견되는데 그건 무엇보다 민족지 연구물로서의 풍요함이다. 예컨대 이런 장면을 주목해보자. 영화의 주인공 방 타마라는 제작진이 건넨 자료화면 그러니까 젊은 시절 방 타마라 자신의 공연 동영상을 보고 크게 놀란다. 그녀는 "이걸 어떻게 찾아냈느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내가 젊은 시절에 이렇게 날씬했다는 걸 이걸 보고 알았다. 젊은 시절을 돌려주어 고맙다"고도 말한다. 방 타마라의 반응은 단순한 개인의 감사 표시를 넘어 이 영화의 기본적인 성과를 말해주는 일면이다. 이미지 아카이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보존되고 발굴된 것들을 통해 되돌려지는 기억의 그 소생과 생환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확히 그 기억의 소생술과 생환술을 발휘한다. 성실한 조사와 발굴에 힘입어 마침내 우리 앞에 드러나게 된 영화 속 영상 자료들은 혹은 음성 자료들은 이 영화가 민족지 연구에의 성실하면서도 가치 있는 연구 사례이자 귀중한 이미지 아카이브라는 점을 명확히 깨닫게 해준다.

더 흥미로운 건, 아카이브의 활동을 포함하여, 이 영화의 많은 것들이 '다성적'이며 '대화적'이라는 사실이다. 여러 방향에서 서로 세세하고 자유롭게 응답하고 조응한다는 점이다.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몇 가지 더 구체적인 것들도 있다. 방 타마라 자신의 인터뷰에 묘하게 화답하듯 등장하는 과거 방 타마라의 공연 장면이 하나의 일례일 것이다. 그녀의 현재와 그녀의 과거가 그때 서로 대화의 출구를 연다. 때로는 주술적 조응의 장면까지도 등장하게 되는데, 예컨대 이함덕의 묘소를 찾아 나선 제작진의 카메라가 그녀가 묻혀 있다는 공동묘지를 배회할 때 마치 제작진을 혹은 관객인 우리를 그녀의 묘소로 불러들이는 것처럼 카메라의 움직임에 맞춰 나지막이 등장하는 이함덕의 가녀리면서도 구슬픈 노래 가락은 스산한 귀기까지도 불러일으킨다.

혹은 작품과 작품이 불현듯 조응하여 필연이 발생하기도 한다. 망명 삼부작 프로젝트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고려인 감독 송 라브렌티의 영화 〈고려사람〉, 이 영화의 주인공은 꼬발렌꼬 마리아였는데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 제작진은 꼬발렌꼬 마리아의 딸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문득 마주치게 된다. 그러자 영화는 담담하게 작품 대 작품(그러니까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 대 〈고려 사람〉)의 새로운 대화의 장을 잠시 또 자유롭게 열어 간다.

다성적이고 대화적인 이 조응의 순간들마다 노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절대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우린 다양한 사람들의 노래를 듣는다. 그들은 노래로 공존하고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노래로 그들의 역사를 쌓는다. 이함덕의 노래, 이함덕에게 노래를 배운 방 타마라의 노래, 방 타마라에게서 노래를 배워 가수가 된 그녀의 딸의 노래, 이함덕과 방 타마라의 노래를 애청하고 따라 불렀을 또 다른 고려 여인들의 노래, 혹은 꼬발렌꼬 마리아의 노래와 그녀의 딸의 노래, 그리고 고려인 4세대이자 고려 극장의 단원들인 젊은 여인들의 노래. 이함덕에서 무명의 젊은 단원들에 이르기까지 공유되는 그 가창의 순간들은 이 영화의 다성적 대화주의를 실현해 내는, 마침내 가장 아름답고 역동적인 순간들이다.

김소영은 몇 년 전 어느 글에서 이렇게 썼다."잃어버린 영화, 사라진 영화, 비가시적 영화, 팬텀 시네마, 유령 정전(canon), 그리고 텅 비거나 퀭한 아카이브는 내가 20 여 년 전 한국 영화사를 들여다보면서부터 내 주변을 배회하던 문제 틀이었다"물론 여기서 김소영이 지적하는 것은 망실된 아카이브의 문제이지만, 그것 또한 역사와 사람의 문제라고 가정해 보면서 저 '영화'를 '역사와 사람'으로 대치하고 김소영 그녀 자신의 언어에 기대어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에 관한 감상을 마무리 해 볼 수는 있겠다. 잃어버린 역사와 사람, 사라진 역사와 사람, 비가시적인 역사와 사람, 유령화된 역사와 사람, 그 역사와 사람을 소생시키고 생환시켜 온기로 가득 채워 내는 영화가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다. 잃어버린 이미지를 캐내고 잊혀진 역사와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위무를 건네며 노래하는 영화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보니 이 영화를 대표하는 이미지 한 가지가 떠오른다.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초기 정착지를 기리는 기념비 위에 빛이 쏟아지고 그 설움을 기리는 비석이 이미지와 노래의 비석이 되어 다시 되돌려질 때의 그것의 의미란, 김소영이 아끼는 표현 그대로, 이 영화가 고려인 역사의 "원초경"이 되기를 바랐다는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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