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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와 종교인 과세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종교인에게 세금을 받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더 흥미로운 점은 세법에 종교인이 면세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법적 근거 없이 관례적으로 성직자들에겐 과세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다수 성직자들이 면세점 이하의 소득이어서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문제는 종교를 납세의 의무가 면제되는 특권인 양 오용하고 악용하는 이들이다.

ⓒgettyimagesbank

집권 여당의 실세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8년 1월부터 실시하기로 한 종교인 과세를 다시 2년 더 유예하는 법안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3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발의안에 동참했다고 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종교인에게 세금을 받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더 흥미로운 점은 세법에 종교인이 면세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법적 근거 없이 관례적으로 성직자들에겐 과세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다수 성직자들이 면세점 이하의 소득이어서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문제는 종교를 납세의 의무가 면제되는 특권인 양 오용하고 악용하는 이들이다.

세법에 따라 세금을 걷는 국세청이 발족한 것은 1966년이었고,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은 5·16 군사쿠데타의 한 명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그런 국세청장이 1968년 성직자들에게도 근로소득세를 걷겠다고 의지를 밝혔는데도 종교계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2006년에도, 2012년에도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 실패했고 2015년 12월에 겨우 종교인 과세의 기준을 잡은 세법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이마저 국회의원들이 개신교의 눈치를 보며 2년간의 유예기간을 추가로 설정했는데 또 미루려는 것이다.

천주교는 이미 1994년부터 신부와 수녀의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 불교계도 세금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보수 개신교의 반대로 계속 미루어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진짜 걱정은 '세무조사'에 있는 것 같다. 김진표 의원은 탈세 신고가 들어오면 국세청이 조사를 나가게 되는데 이것은 자칫 정부와 종교계 간의 갈등과 충돌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국세청이 종단에 조사를 요청하는 방식 등 조사 방식을 세세하게 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정교분리'란 무엇일까? 정치를 종교에서 분리하는 것일까, 종교에서 정치를 분리하는 것일까. 한신대학교의 강인철 교수는 정교분리란 국가와 종교의 분리라고 설명한다. 종교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국가는 종교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해선 안 된다.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란 국가가 강제적으로 원치 않는 종교의식에 참여하게 하거나, 특정한 종교만을 믿게 하면서 다른 종교는 박해하고 억압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종교의 자유는 국가의 간섭 없이 자신의 신앙에 따라 삶을 살아갈 자유다. 또한 종교의 자유는 종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종교가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면 국가로부터 특혜를 받으려고 해선 안 된다.

1926년을 돌이켜보자.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전국에서 모이는 총회 참석자들을 위해 기차표 50% 할인과 목사는 언제나 승차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조선총독부에 요청한다. 처음엔 거부당했다. 하지만 1936년이 되면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포교자에겐 50%, 총회 참석자들에겐 20%의 할인 혜택을 주는 정책을 승인한다. 종교가 국가로부터 어떤 특혜를 받는다면 종교 역시 국가에 내어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2년 뒤인 1938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조선총독부의 요청대로 '신사참배'를 한다. 더불어 신사참배는 기독교 교리에 위배되지 않으며 그저 황국신민으로서 하는 애국 행위일 뿐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도 발표했다.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창씨개명 하기, 총회 기록을 일본어로 쓰기, 전쟁물자 지원을 위한 헌금 모금하기, 교회 종 헌납하기를 비롯해 총회 때 궁성요배, 묵도, 황국신민선서 제창 등의 애국의식을 하기 등 적극적으로 일제에 협력하게 된다.

항일운동을 하는 기독교인도 있고,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에 간 기독교인들도 있었지만 일제에 협력했던 기독교인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른다면 종교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며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궁금하다. 왜 애당초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자신들의 종교 활동이 기차 할인 혜택을 받을 특별한 명분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일제는 특정 종교에 혜택을 주고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답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종교와 국가가 서로의 이해관계를 함께 달성하려고 도모하는 것은 위험하다.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기도 한 김진표 의원이 세법 개정안을 다시 내겠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과연 새로운 정부가 적폐청산을 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강력한 정교분리의 의지가 필요한 때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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