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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연출산'을 선택한 이유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인증받은 곳은 세계적으로 2만여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16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은 분만 방식이 아닌 모유 수유 권장에 대한 인증입니다. 한국에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인증받은 곳이 적은 이유는 한국의 출산 행태 때문입니다. 많이 경험하셨듯이 우리나라 산부인과에서는 출산 직후 2~4시간 동안은 아이와 떨어져 있게 됩니다. 하지만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인증 요건 중에는 '산모는 출산 후 30분 이내에 아기와 피부를 맞대고, 최소 30분간 아기와의 접촉을 지속해야 하며 이때 젖을 빨리기 시작한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장하나의 엄마 정치] ⑤ 자연출산

장하나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인 2015년 2월11일 첫아이인 두리를 분만 촉진 주사 등 일체의 의학적 처치를 하지 않는 '자연 출산' 방식으로 한 조산원에서 낳았다. 장 전 의원이 출산 직후 아기를 가슴에 안은 채 가족들의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인증을 받은 이 조산원은 갓 태어난 신생아를 엄마와 떼어놓지 않고, 엄마 품에 안기게 함으로써 엄마와 아기가 교감할 수 있도록 한다. 사진 장하나 전 의원 제공

아이가 태어나던 그날을 기억하시나요? 아이를 낳는 순간 어떤 기분이었나요? 당신은 충분히 편안하고 행복했나요? 아니면 단지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웠나요? 물론 두려움과 기쁨이 뒤엉킨 감정마저 제대로 느끼지도 못할 만큼 정신없는 날이었겠죠. 찢어지는 듯한 아픔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제법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반면 '출산'인지 '분만'이었는지에 따라 우리의 경험은 다르기도 합니다. '출산이랑 분만이 뭐가 다르지?' 자연스러운 의문입니다. 출산과 분만은 배타적인 개념도 아니고, 옳고 그름 좋고 나쁨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한국적인 상황'에서의 출산과 분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독일의 환경운동가 페트라 켈리의 말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2015년 2월11일 이른 아침 진통이 시작됐습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었죠. 예정일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찾아온 진통이라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진통은 하루 이상 갈 수도 있다고 해서 남편을 깨우지 않았습니다. 싱크대를 짚고 서서 진통 간격을 체크하고 물도 한 잔 마셨죠. 뱃속의 두리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괜한 여유를 부렸다고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진통 간격이 짧아졌고, 바로 남편을 깨워서 차를 탔죠.

하필 출근 시간이어서 조산원으로 가는 강변북로는 꽉 막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배가 더 아프게 느껴지면서 진통이 올 때는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차창을 두들겼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괴기스러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을 겁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픈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산원에 도착해 조산사분들을 만나자 신기하게도 고통이 확 줄었습니다. 출산할 때 산모 주변에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딱 맞더군요. 조산사의 지시에 따라 호흡하고 아이를 밀어내기 위해 힘을 주었다 뺐다를 반복하다 보니 심리적으로도 안정됐습니다.

자연출산 병원에선 200만~300만원

남편한테 기대어 앉아 그렇게 진통을 시작한 지 다섯시간 만에 딸아이를 낳았죠. 두리는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다가 곧 그치더니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봤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시력은 0.03 정도에 불과해서 빛을 느끼고 큰 물체가 있다는 것을 흑백으로 알아보는 정도라고 하니, 사실 두리는 뭘 본 게 아니라 단지 눈을 뜬 것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러나 출산을 도와준 조산사분들은 태어나자마자 눈을 뜬 아기는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아이가 눈을 감고 있든 뜨고 있든 중요하지 않았고, 아이의 탄생 자체가 경이였고 기쁨이었습니다. 두리는 곧바로 제 가슴팍에 안겼습니다. 그 뒤 젖 찾기 반사(rooting reflex)와 빨기 반사(sucking reflex)가 나타나는 대로 젖을 물렸고요. 이후 일주일쯤 인공 조명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낮에도 커튼을 쳐서 어두운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두리가 바깥세상에 서서히 적응할 수 있도록 말이죠. 여러분의 출산 경험은 어떤가요?

장하나 전 의원의 첫아이인 두리가 태어난 직후 엄마 품에 안겨 있다.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은 신생아를 엄마에게서 떼어놓지 않고 최초 30분 안에 최소 30분 이상 함께 있도록 한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수술 또는 약품에 의존하지 않고 저처럼 애를 낳는 것을 자연 출산이라고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그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대부분 병원이나 의원에서 자연 분만이나 제왕절개로 출산하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혼 여성(15~49살)의 분만 장소는 99.4%가 (종합)병원과 의원이며, 조산원은 0.5%, 보건의료원은 0.1%라고 합니다. 산부인과 병원이나 의원에서도 자연 출산을 하는 곳이 있지만, 출산 비용만 해도 200만~300만원 수준이기 때문에, 대부분 병·의원에서는 자연 출산보다는 자연 분만이나 제왕절개를 선택합니다. 게다가 조산원은 출산 과정에서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산모를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 때문에 산모들이 상당히 부담스러워합니다. 저의 친정엄마나 시부모님도 우리 부부의 선택을 썩 내켜하지 않으셨답니다.

자연 분만(vaginal delivery)과 자연 출산(nature birth)이 배타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출산(出産)이라는 단어는 '낳는 행위'라는 의미가 크고, 분만(分娩)은 '나눌 분' 자가 들어 있어 외부 조력의 의미가 담긴 데서 알 수 있듯이 자연 분만은 제왕절개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서 출산하는 모든 상태의 질 분만을 의미합니다. 이에 반해 자연 출산은 일체의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는 출산을 말합니다. 즉, 촉진제(자궁수축제), 경막외 마취(무통분만), 흡입 분만, 회음 절개, 관장, 제모 등을 하지 않는 분만 방식을 말합니다. 자연 출산이 자연 분만과 구분되는 핵심적인 지점은 산모의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점입니다.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우린 16곳뿐

노산이자 초산이었지만, 저는 일체의 의료적 조치를 피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러자면 조산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산부인과에서는 임신 40주를 넘긴 산모에 대해서는 보통 유도 분만(자궁 수축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을 투여하여 인위적으로 분만 진통을 유발하는 시술)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또 예정일을 넘기지 않은 산모에 대해서도 일괄적으로 촉진제를 투여하는 산부인과가 많지요. 반면, 조산원이나 자연 출산을 표방하는 병·의원에서는 예정일을 넘긴 산모에 대해서도 태동, 양수의 양, 태아의 크기 등을 체크하면서 길게는 2주까지 진통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더구나 제왕절개는 얼마나 많이 하고 있습니까. 한국의 제왕절개 수술 비율은 39.1%(2015년 기준)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 비율인 15%의 두 배를 훨씬 넘습니다. 노산이었던 저는 병원에 가면 틀림없이 '제왕절개 1순위'일 겁니다. 그게 두려워서 조산원을 찾았습니다. 1930년대 르부아예 분만의 창안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산부인과 의사 프레데리크 르부아예가 〈폭력 없는 출산(탄생)〉이라는 책에서 "의료진이 내는 큰 목소리, 아기 눈을 부시게 하는 환한 빛, 태어나자마자 자르는 탯줄, 아이를 거꾸로 매다는 행위 등의 병원 분만 방식은 아이를 존중하지 않으며 폭력적인 것"이라고 했던 것에서도 영향을 받았고요.

제가 자연 출산에 대해 관심을 가진 건 임신하기 훨씬 전이었습니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8천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받아 낸 조산원 원장님과 '우연'하게 만난 것이 계기였습니다. 이 만남에서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Baby-Friendly Hospital Initiative, BFHI)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인증받은 곳은 세계적으로 2만여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16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조산원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장하나 전 의원이 두리가 태어난 지 사흘째인 2015년 2월13일 조산원에서 아이를 안은 채 잠자고 있다. 사진 장하나 전 의원 제공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은 분만 방식이 아닌 모유 수유 권장에 대한 인증입니다. 한국에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인증받은 곳이 적은 이유는 한국의 출산 행태 때문입니다. 많이 경험하셨듯이 우리나라 산부인과에서는 출산 직후 2~4시간 동안은 아이와 떨어져 있게 됩니다. 하지만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인증 요건 중에는 '산모는 출산 후 30분 이내에 아기와 피부를 맞대고, 최소 30분간 아기와의 접촉을 지속해야 하며 이때 젖을 빨리기 시작한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우리의 산부인과 관행으로는 인증 요건을 통과하기 어렵겠죠.

그러나 출산 직후 산모와 아이를 떼놓는 것은 신생아의 무조건 반사, 즉 아기의 본능에도 위배되는 일입니다. 신생아의 젖 찾기 반사와 빨기 반사는 출생 후 90분 이내에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물론, 바로 젖을 물리지 않더라도 아이의 건강과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만약 엄마들이 이런 사실을 출산하기 전에 알게 된다면 출산 직후의 신생아 격리 조치를 거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품고 있는 동안 먹는 것도 가리고, 보는 것도 가리고, 말도 행동도 가리는 게 엄마들 마음이잖아요. 엄마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함께 선택권을 준다면 분만 촉진제 사용이나 무통 분만, 나아가 제왕절개가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산모의 자기 결정권입니다.

출산 인프라 자체가 붕괴

2005년 우리나라의 총 출생아 수는 43만5천명, 2015년에는 43만9천명으로 10년 동안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의 수는 2006년 1119곳에서 2015년에 619곳으로, 10년 새 반토막이 났습니다. 산부인과 신규 전문의 수도 2007년 206명에서 2016년 96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습니다. 모성 사망률은 10만명당 10.6명(통계청, 2013년)으로 오이시디 평균의 두 배 수준입니다.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이나 자연 출산을 고민하기 민망할 정도로 한국의 출산 인프라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엄마와 아이들에게 돌아갑니다. 우리가 별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제왕절개를 당하고, 촉진제를 맞고, 아이를 낳자마자 생이별을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정치의 문제고 정부가 할 일입니다. 엄마들이 출산 장소와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산모가 자기 결정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한국의 출산 행태가 '왜 다른지'에 대해서 의학적인 토론을 할 순 없지만, 다른 나라와 '얼마나 다른지'를 엄마들이 얘기해야 합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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