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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인정하면 동성애가 퍼진다?

특정 소수자 혐오는 그 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너무 퍼지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전염과 확산에 대한 경계 혹은 공포가 깔린 의심에서 출발한다. 미혼모의 존재를 인정하면 너도나도 미혼모가 되려 하지 않을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인정하면 너도나도 군대 안 간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바탕에선 이들이 적게 존재하면, 심지어는 없으면 더 좋다는 생각을 당연시하고 있다. 소수자 인권을 부정하지 않더라도 결국 차별이 예방이라는 믿음도 깨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수자 인권은 허술한 토대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셈이다.

  • 권인숙
  • 입력 2017.05.31 07:51
  • 수정 2017.05.31 07:52
ⓒMastrafoto/CON via Getty Images

작년에 일어난 일이다. 인권 관련 회의에서 미혼모 인권 행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참석했던 한 공무원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관점을 꼭 보태야겠다는 표정을 하고 말했다. "미혼모 인권도 중요하지만 미혼모 발생 예방도 중요하지 않나요?" 순간 다들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막막해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잠시 후 어떤 이가 다른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렸고 다수가 동조하며 회의를 이어갔다.

그 공무원은 자존심이 상할 상황이었다. 그가 전혀 뜬금없는 소리를 하였다면 반박하며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혼모가 늘어나면 안 좋다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 보편상식이고 공무원은 상식 수준의 말을 하고 있었다. 반론이 쉽지 않은 주장이다. 반면 인권과 예방은 같이 이야기할 수 없는 모순관계이다. 특정 소수자 그룹의 인권을 논하면서 그들은 존재하지 않아야 더 좋고 존재할 수 없게 노력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그 상황에서 가장 정직한 접근은 미혼모가 많은 사회가 정말 문제인가를 토론하는 거였다. 그러나 결혼제도, 국가, 여성의 저임금과 성, 저출산 등이 얽혀 있어 논쟁을 피하는 게 낫다고 다들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특정 소수자 혐오는 그 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너무 퍼지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전염과 확산에 대한 경계 혹은 공포가 깔린 의심에서 출발한다. 미혼모의 존재를 인정하면 너도나도 미혼모가 되려 하지 않을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인정하면 너도나도 군대 안 간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바탕에선 이들이 적게 존재하면, 심지어는 없으면 더 좋다는 생각을 당연시하고 있다. 소수자 인권을 부정하지 않더라도 결국 차별이 예방이라는 믿음도 깨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수자 인권은 허술한 토대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셈이다.

며칠 전 영외에서 동성 군인과 합의된 성관계를 한 대위가 군형법 92조의6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보면서 이 허술한 토대가 생각났다. 이 법은 영내 성관계 금지와 징계로 통제 가능한 동성 군인과의 섹스를 굳이 '항문성교'라며 추해서 형법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으로, 특정 대상만을 심하게 차별하는 허약한 법이다. 그러나 헌법소원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고, 대선에서도 후보자들은 군형법을 인정한다는 의견을 당연한 듯 피력했다. 다수가 지지하기 때문이다.

기사의 댓글에서도 다수의 마음이 확인된다. 다른 문제에 진보적인 특정 사이트의 댓글에서 이번에는 유죄판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훨씬 높다. 지지가 높은 댓글은 "군은 특성상 동성애 금지해야 돼. 저런 지휘관이 동성애자면 지위를 이용해서 악용할 수도 있고 애들 작살난다", "군대가 동성애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엄마들 어찌 아들을 군대 보내겠나?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더욱 철저한 관리와 처벌이 있어야 한다", "내 아들이 군대 가서 동성애자 되면 어떡하지요" 등이다.

성폭력과 동성애 확산에 대한 공포이다. 동성간 성행위를 금지하지 않는 것은 동성간 연애를 허락하는 것이고, 그러면 동성애가 군대에 만연할 것이란 두려움이 다수의 반대의식에 담겨 있다. 내 아들은 절대 동성애자일 리 없지만 유혹에는 넘어갈 것 같고, 서열적 권위가 강한 군대에서 선임으로 혹은 장교로 이들을 만날 것 같기에 두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가 더 잘 퍼진다(?)는 걱정은 군대 같은 이성애적 남성성이 강하고 개인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집단주의적 폐쇄성이 강한 공간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고 확인된 사실도 없다. 군대는 오히려 남자답지 못한 남자에 대한 집단적 혐오와 경계심이 높아 이성애자의 동성애자에 대한 성폭력 같은 보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동성애를 금지하면 동성애 폭로 등을 약점 삼아 성폭력 등 각종 범죄가 더 쉽게 일어난다. 그래서 몇 년 전 미국 군대는 동성애자인지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던 모호한 신분불인정정책을 폐지했다.

진짜 문제는 군대의 특수성은 핑계이고 다수의 사람이 동성애는 없으면 더 좋은 것이라며 동성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동성애가 시민사회에서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는다면 수많은 사람이 일상으로 살아가는 공간인 군대에서만 특별히 구성원간 동성애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오기 힘들다.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반인권적 판결을 대하면서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존재의 부정보다 더 공격적인 차별은 없다는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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