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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대통령과 비도덕적 야당(?)

우리나라의 보수파들이야 애초에 그런 도덕성을 무기로 삼은 것도 아니고 근래까지도 박정희의 경제발전이 그들이 내세울 제일 큰 자산이었듯이(이제 그나마도 이번에 503호 정권이 완전히 삽질을 하는 바람에 와장창 깨어지고 말았지만) 도덕성은 잠깐 눈감아주고(응?) 실적을 가지고 승부하자고 하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이른바 진보파/민주개혁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5대 비리 관련자 공직 배제 방침이 환영을 받았듯이 주로 상대방인 보수파의 도덕성이나 비리를 공격하고 자기네 쪽에는 그러한 도덕성 상의 문제가 없음을 암묵적으로 전제하여 왔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먼저 도덕성을 정치 논쟁에서의 중심 의제(agenda)로 삼아 버린 것이다("You opened the door!").

  • 바베르크
  • 입력 2017.05.30 13:26
  • 수정 2017.05.30 13:41

취임 직후 기세등등했던 문재인 정부가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표결이 일단 연기되면서 약간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이낙연 후보자 부인의 위장 전입 등이 밝혀진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언해 온 이른바 5대 비리 연루자의 공직 배제 원칙을 훼손한 것이 아니냐고 야당들은 일제히 문 대통령을 비판하며, 문 대통령의 직접 해명을 요구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어떻게든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월요일 오후 문 대통령은 (애써 사과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야당 의원들과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전임 503호 정권이 국정을 농단한 것을 비판하며 도덕성을 가장 앞세웠던 새 정부로서는 속된 말로 영 모양이 빠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양해를 구하는' 자리에서도 위장 전입이나 탈세 같은 행태는 보수 정권들에서 더 문제가 되었기에 당신이 집권하면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이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음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마도 정도에 있어서는 훨씬 심했을 보수 정권에서(하지만 청와대가 새로 내세운 기준에 의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들이대지 않던 현미경 같은 잣대를 야당과 언론이 내세운 것이 아니냐는 불편한 속내의 표출이 아닐까 싶은 느낌적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필자는 어쩌면 야당들과 언론, 그리고 국민이 보수 정권들에는 들이대지 않았던 도덕성 검증에 대한 가혹한 잣대야말로 바로 이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숙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써 보게 되었다.

어쩌면 이번에 정부여당이 하고 싶었지만 꺼내지 못한 말이 아닌가 싶은 "왜 더 비도덕적인 쪽은 (지금은 야당 노릇을 하기는 하지만) 소위 자유한국당인데 잘 해 보려 한 문재인 대통령이 한 인사가 약간의 도덕적 흠결만 있어도 더 욕을 먹느냐?"란 종류의 항변은 사실 우리 현대사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온 질문이기도 하다. 당장 문 대통령께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내셨던 이른바 참여정부에서 불법 대선자금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열 배는 더 썼을 것이라는 취지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볼멘 말씀부터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소위 진보파, 민주개혁세력 쪽에서 왜 우리 도덕성을 검증할 때는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냐는 비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해방 직후까지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해방정국에서도 우익들이 도덕적으로 더 타락하고 썩어문드러진 것이 분명한데 왜 때문에 좌익들이 비도덕적인 행태를 한 것이 작은 것이라도 하나라도 발견되면 팥다발 같은 욕은 좌익들만 먹느냐라는 취지의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소설가 이병주 선생님께서는 대하소설 [지리산]에서 등장인물 중 하나인 권창혁이라는 사회민주주의자의 입을 빌려서 대략 다음과 같은 취지로 반박하신 일이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당대에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왜 진보파/민주개혁세력의 도덕성이 더 매섭게 검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 일리 있는 대답인 것 같아 기억을 되살려 여기에 옮겨 보기로 한다.

(해방정국에서의) 우익은 애초에 일제 잔재나 썩어 문드러진 조선왕조밖에는 지킬 것이 없었으니 애초에 사람들이 우익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를 안했다. 그런데 (해방정국에서의) 좌익들은 역사발전의 법칙에 따르면 진리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주장해 왔고, 말끝마다 과학적인 사회주의를 외쳤으며, 친일파를 청산하는 등 우익의 적폐^^들을 뿌리 뽑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해방정국 무렵에) 이 땅에 살던 사람들(조선왕조의 봉건제도와 일제의 가혹한 수탈을 견뎌왔던 민초들)은 좌익들의 그런 말들을 믿었고, 좌익들이 정말 몇천 년에 걸친 불의와 부정을 뿌리 뽑고 새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좌익들이 만들어 낸 세상(즉 북한)은 더 지옥이었고, 그 자들이 비난했던 우익들 적폐^^의 뺨을 치는 부정과 비리도 더 저질렀다. 그렇다면 그 좌익들이 우익들과 미 군정을 비난할 때 적용했던 추상 같은 기준은 자신들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보수파들이야 애초에 그런 도덕성을 무기로 삼은 것도 아니고 근래까지도 박정희의 경제발전이 그들이 내세울 제일 큰 자산이었듯이(이제 그나마도 이번에 503호 정권이 완전히 삽질을 하는 바람에 와장창 깨어지고 말았지만) 도덕성은 잠깐 눈감아주고(응?) 실적을 가지고 승부하자고 하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이른바 진보파/민주개혁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5대 비리 관련자 공직 배제 방침이 환영을 받았듯이 주로 상대방인 보수파의 도덕성이나 비리를 공격하고 자기네 쪽에는 그러한 도덕성 상의 문제가 없음을 암묵적으로 전제하여 왔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먼저 도덕성을 정치 논쟁에서의 중심 의제(agenda)로 삼아 버린 것이다("You opened the door!").

그러니 그렇게 자신들이 정치 논쟁에서의 중심 의제로 삼아 버린 도덕성이라는 항목/기준이 일종의 부메랑 내지 양날의 검이 되어 자신들측 공직 후보자들의 인사들을 검증하는 기준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 그렇게도 부당한 일일까? 그리고 자신들이 비난하여 온 보수측 인사들의 도덕성보다 자신들 편의 도덕성이 겨우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이 그렇게나 떳떳한 일일까?

그렇다면 현 정부측에서도 자신들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에 담아서 우리 정치의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인 5대 비리 관련자의 공직 배제 원칙 같은 것을 이제 와서 자기들에게 불리하다고 하여 사실상 수정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행 중이며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인사에서도 더 가혹한 원칙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동일한 잣대로는 적용하여야 하지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여야5당 원내대표와 오찬 회담을 하기 위해 청와대 상춘재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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