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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에서 열린 '동성애 혐오 강연'

두 번째 강연 주제는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독재'. 변호사라는 강연자는 강연 내내 '동성애 독재', '표현의 자유'를 자주 입에 올렸다. 차별금지법이 합법화되면 동성애 독재가 시작된다고 주장하던 그는 점점 격앙되더니 소리 높여 "저들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동성애를 외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자유는 무시합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는 혐오할 자유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가 사라지는 독재 시대가 찾아옵니다"라고 주장했다. 헷갈렸다. 이곳은 대학인가.

  • 홍승은
  • 입력 2017.05.26 10:41
  • 수정 2017.05.26 10:56

"요즘 들어 학교에서 유독 동성애 혐오 발언이나 적극적인 행동을 많이 봐요."

한동대에 다니는 학생 A씨는 우려스러운 듯 말했다.

최근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이 동성과 성관계를 한 장교 B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 성소수자 혐오 분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경북 포항 한동대는 지난 24일 〈동성애와 동성애 결혼에 대한 한동대학교의 신학적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동성애 행위는 성경적 진리와 윤리관에 반하는 것, 동성애 행위는 근본에서 인간 개인과 공동체에 해와 병을 가져오는 것, 동성애는 치유하는 것이 참된 인권 회복' 등의 내용이 담긴 이 글은 한동대학교 총장·부총장·교목실장·학생처장이 합의한 것으로, 총학생회나 한동대학생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관련 기사: 독립언론 뉴담 http://newdam.com/49).

이런 가운데 25일 한동대 일부 학생들이 '동성애 바로 알기'란 특강을 열면서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논란은 더욱 증폭되는 모습이다. 이날 행사가 진행된 4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강의실은 꽉 차다 못해 자리가 부족했다.

이날 특강은 한동대학교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청년모임〉(이하 아가청)이 주최했다. 학생 10여 명이 함께하는 '아가청'은 최근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21가지 질문〉 제목의 책자를 만들어 강연 전날 전교생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70페이지가 넘는 책 전반에는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이 아니며, 동성애 항문성교가 에이즈의 주된 원인이며, 성경에도 동성애는 죄라고 적혀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강연 30분 전, 학교 내 동성애 혐오 문화 확산에 반대하는 한동대학교 학생 10여 명이 강의실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든 피켓에는 "동성애 혐오는 치료가 가능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혐오할 자유가 아닙니다", "여기 퀴어 있다"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사진 : 정광준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동성애 혐오 문화 확산' 피켓 시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강연 20분 전부터 학생들이 하나 둘 들어오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강연을 들으려는 학생들의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강의실로 향하는 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지나가던 한 여학생이 말했다.

"퀴어가 뭐였지? 아, 나 배웠었는데..."

한동대 학생인 A씨는 이 강의에 몰려든 학생 수가 너무 많아 놀란 듯했다. A씨는 "이렇게 많은 학생이 모인 적은 처음이에요"라며 "여러 강의에서 과제로 이 특강을 듣도록 했어요.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데, 그중 하나가 이 특강을 듣는 거였어요"라고 말했다. "엑스트라 포인트를 준다는 강의도 있었다고 해요.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듣는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고..."라고 말을 이어가던 A씨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회색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이 '아가청'의 지도 교수이자 동성애 혐오 문화를 주도하는 사람이에요."

그때 한 여학생이 교수를 향해 외쳤다. "교수님 부끄러운 줄 아세요." 지나가던 교수는 발길을 멈추고 여학생 앞에 서더니 "너 뭐라고 했어?"라고 물었다. 여학생이 "부끄러운 줄 아시라고요"라고 말하자 "뭐? 너는 눈을 그렇게 뜨고... 예의를 좀 지켜"라며 여학생에게 삿대질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예의나 좀 지키시죠"라고 다른 학생이 말하자, 교수는 혀를 끌끌 차며 끝까지 예의를 운운하며 지나갔다.

순간, A가 고개를 돌리더니 눈물을 흘렸다.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 교수의 모습. 선량한 얼굴로 '탈동성애자의 간증' '차별금지법을 왜 반대해야 하는지' 이유를 들으러 가는 학생들. 주위에 있던 서너 명의 학생 모두 고개를 떨궜다.

첫 번째 강연인 '게이, 거룩해지다'가 시작됐다.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는 남성은 동성애자였을 때 자신이 얼마나 문란한 생활을 해왔는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제가 아는 동성애 형들은 파트너가 계속 바뀌고, 40대가 되어도 여전히 그러고 있고... 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는 이어서 동성애는 왜곡된 성적 욕망이며 항문 섹스를 하는 관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항문 섹스로 인해 에이즈에 걸렸지만, 감사하게도 자신을 구제해준 여성을 만났다고 했다. 그가 여자를 만났다고 했을 때 청중은 박수쳤고, 아이 낳았다고 했을 때도 큰 박수가 울렸다. 그가 "카톡으로 프러포즈 했다"고 했더니 청중석에서 감탄사가 이어졌고,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말에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강의실 곳곳에서 울렸다. 이곳에서 감수성과 공감은 철저하게 선별적이었다.

두 번째 강연 주제는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독재'. 변호사라는 강연자는 강연 내내 '동성애 독재', '표현의 자유'를 자주 입에 올렸다.

"서구를 중심으로 동성애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져서 동성애 독재가 퍼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담대한 신자들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비겁한 신자들은 거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차별금지법이 합법화되면 동성애 독재가 시작된다고 주장하던 그는 점점 격앙되더니 소리 높여 "저들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동성애를 외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자유는 무시합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는 혐오할 자유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가 사라지는 독재 시대가 찾아옵니다"라고 주장했다. 강의실은 마치 대형교회의 설교 장면 같았다. 헷갈렸다. 이곳은 대학인가 교회인가.

이 많은 학생 중, 성소수자는 한 명도 없었을까. 한 학생이 말했다.

"2년 전에도 같은 강연이 열렸는데, 성소수자인 친구 두 명이 그 강연을 들었어야 했어요."

지금 강의실을 채운 400여 명의 학생 중, 누군가는 성소수자일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불쌍히 여기고, 죄라 하고, 문란하다고 보는 언어와 존재의 폭력에 짓눌리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나는 혹시라도 자리에 있을지 모르는 존재에게 죄의식을 느꼈다.

특강이 진행되는 동안, 아슬아슬한 순간이 이어졌다. 갑자기 학생처장이 나타나서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들의 사진을 찍었고, 한 중년 여성은 강의 내내 피켓 든 학생을 뚫어져라 째려보았다.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나가는 길목에 피켓을 든 학생들이 다시 일렬로 섰다. 한 학생이 걸어가면서 피켓시위 하는 학생을 향해 말했다.

"동성애는 죄예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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