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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어떻게 '동성혼 법제화' 국가가 되었나

2014년 여론조사에서 대만 인구 절반 이상이 동성혼을 지지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아니라 동성혼이다. 대만은 2004년부터 성평등 교육법을 제정, 성평등과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실시했는데 그 영향 덕인지 젊은 층에서는 동성혼 지지율이 80%를 넘기기까지 했다. 2016년 12월에 열린 동성결혼 법제화 음악회에는 25만명이라는 인파가 모여 법제화를 압박했다. 비교적 호의적인 여건이었지만 법 개정까지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만은 아니다.

  • 백승호
  • 입력 2017.05.25 08:12
  • 수정 2017.05.25 08:15

동성혼은 아무것도 망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동성 커플도 이성 커플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 간에 법률상 배우자 관계가 형성되고 배우자간의 권리의무도 부담한다."

지난 5월 24일, 대만 헌법재판소는 동성커플의 결혼을 금지하는 현행 법제도가 위헌이라고 판결,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이 가능한 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헌법재판소는 판결에서 "성적 지향은 바꾸기 어려운 개인의 특성"이라고 전제한 뒤 "결혼이 제공하는 친밀하고 배타적 성격의 영속적 결합"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에게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혼인규정은 이성간 결혼이 생식능력을 필수요건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후손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동성간 결혼을 차별하는데 있어 합리적 이유가 아니"라며 동성결혼이 기존 결혼제도나 사회질서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설명했다.

대만의 헌법재판소가 이성 커플의 결혼만 허용하는 현행 민법상의 혼인제도를 위헌 판결함에 따라 대만 의회는 2년 이내에 관련 법개정을 정비해 동성커플의 결혼신고를 수리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2년 내에 관련 법개정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동성 커플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구 절반 이상이 동성결혼을 지지했던 나라, 하지만 쉽지는 않았던 과정

2014년 여론조사에서 대만 인구 절반 이상이 동성혼을 지지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아니라 동성혼이다. 대만은 2004년부터 성평등 교육법을 제정, 성평등과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실시했는데 그 영향 덕인지 젊은 층에서는 동성혼 지지율이 80%를 넘기기까지 했다. 2016년 12월에 열린 동성결혼 법제화 음악회에는 25만명이라는 인파가 모여 법제화를 압박했다.

비교적 호의적인 여건이었지만 법 개정까지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만은 아니다. 2013년 대만의 성소수자 활동가인 치자웨이가 동성결혼을 신청하고 거부당하자 헌법소원을 제기해 동성혼에 법제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2016년엔 대만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교수가 자신의 동성 파트너가 죽자 파트너의 투병생활에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며 비관, 자살하기도 하였다.

대등했던 동성혼에 대한 여론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몇 달 앞둔 2016년 말 찬성 37.8% 반대 56%까지 악화되기도 했다. 12월에는 동성혼 법제화 촉구 시위 도중 한 시민이 동성혼 반대파에게 폭행을 당해 부상을 입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동성혼 법제화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불거진 반대여론도 이 흐름을 쉽게 막진 못했다. 2016년 11월에는 가오슝 시가, 12월에는 타이베이시가 동성커플에게 증명증의 발급을 시작해 동성커플도 서로 간에 의료보호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대만 시민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한 시민은 시에서 발급하고 있는 동성커플 증명증에 대해 "제도로서 동성 커플에게 결혼과 유사한 혜택을 주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진정한 혼인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성결혼의 법제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투쟁과 집념의 결과로 대만의 동성혼은 마침내 법으로서 보장되게 되었다.

대만 정부의 동성혼 법제화 추진을 비판하는 성소수자 활동가

2016년 11월, 대만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기 하루 전, 대만 국립정치대학교에서 만난 가화 씨는 대만 정부의 동성혼 법제화 추진이 탐탁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중국과의 관계문제로 나라가 한참 시끄러웠을 때, 집권당인 민주진보당이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동성혼 카드를 꺼냈다. 운동의 성과로서 동성혼이 법제화 된 것이 아니라 정당의 정치적 전략으로서 선택된 것이다. 이건 명백한 Pink Washing이다. 이런 방식의 동성혼 추진을 반대한다."

[참고] 대만은 국민당이 일당독제를 하던 나라였다. 직선제도 우리보다 늦은 1996년에서야 도입되었다. 2000년에 처음 민주진보당이 정권을 교체했으며 2008년에는 다시 국민당, 2016년에는 다시 민진당이 집권했다. 국민당은 친중국 성향을 보이며 민진당은 반중국 성향을 보이는데 중국에 대한 입장차이가 대만 사회의 뜨거운 감자이며 양 정당이 두드러지는 차이점 중 하나다.

DDpink wash. DDP는 민주진보당을 의미하며 Pink washing은 LGBT의제를 전면에 내세워 다른 의제를 감추는 행위를 뜻한다. 실제로 시애틀의 LGBT활동가들은 이스라엘이 '성소수자 천국'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우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살육을 감추고 있다며 이를 Pink washing으로 명명, 시에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이스라엘의 LGBT 행사를 보이콧한 바 있다

차별금지법이 요원하고, 대통령 후보들이 대선 토론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느냐 마느냐'로 논쟁하는 한국사람으로선 입이 딱 벌어질 이야기였다. 물론 대만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정말 한국과는 논의의 차원이 달랐다.

동성혼 법제화는 겨우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을 의미할 뿐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기대감을 묻자 가화 씨는 내게 이렇게 답했다.

"동성혼은 종착점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그저 한 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동성혼이 법제화되었다고 해서 여성혐오적인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동성결혼과 여성혐오를 넘어 궁극적인 성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

실제로 대만도 한국과 같이 여성혐오가 만연하다. 한국의 '김치녀'와 비슷한 말로 모조(엄마돼지)란 말을 사용하며 여성을 비하한다. 여성에게 외모꾸미기를 강요하며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난 여성혐오자가 아니야. 난 여자를 좋아해. 다만 모조들이 싫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내뱉는다고 한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도 비슷하다'고 답했다.

가화 씨는 내게 성소수자 운동도 너무 남성 중심적이라며 이런 문화에 반대하는 의미로 LGBTQIA중 게이를 의미하는 G를 일부로 잘 보이지 않게 써두었다고 말해주었다.

대만에도 미러링이 있다. 가화씨는 '난 남자를 좋아해. 다만 돼지들이 싫을 뿐'이라는 피켓도 보여주었다.

가화씨는 동성혼을 넘어 진정한 성평등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계속 싸우고 있듯, 여성혐오의 세상에도 계속 맞서야 한다는 가화 씨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한국은 차별금지법 발의를 위한 의원 10명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으며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김치녀'라는 낙인이 여전히 유효하다.

평화로웠던 대만의 퀴어퍼레이드, 생존을 위협받는 한국의 성소수자들

부슬비가 내리던 타이베이의 퀴어퍼레이드는 말 그대로 평화로웠다. 한국처럼 기독교인들이 발레공연과 북소리가 없어서 심심할 정도였다. 이따금 지나가는 시민들은 원래 자주 있는 일마냥 큰 관심도 없어보였다.

지나다 보니 인상적인 피켓이 보였다. 엄마와 아들이 퍼레이드에 함께 참여했는데, 엄마는 '나는 58살이고요. 아들이 결혼하는 걸 보고 싶어요'라고 쓰여 있는 피켓을, 아들은 '나는 28살이고요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쓰여 있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아마 올해의 대만 퀴어퍼레이드는 어느 해보다 뜨거운 축제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7월에 열릴 한국 퀴어퍼레이드가 예년처럼 마냥 기대되지는 않는다. 대만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된 바로 그날, 한국에선 게이라는 이유로 한 군인이 붙잡혔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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