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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국의 많은 성인 남성들은 군복무를 통해 군대를 경험하지만, 사실 그들 중 대다수는 군대와 전쟁의 본질에 대해 무지하다. 대부분의 징집병들은 복무기간 중 상당부분을 사실상 작업으로 허비하고 전역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물자들이 부족하며, 군필자들은 실제 상황 발생 시 과연 내가 가진 장비가 제대로 작동할지 걱정해 본 경험이 한두 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일단 전면전이 발발하면 대량의 인명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초급 간부들과 징집된 병사들의 손실이 막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스1

글 | 안악희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JPD 서울지부장)

한국인들에게 전쟁은 상수로서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위협이다. 또한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에게는 지진의 공포가, 미국 남부 주민들에게는 태풍의 공포가 존재하듯 한국인들에게 전쟁은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경험할 것 같은 공포의 대상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쉽지 않다. 대체 무슨 근거로 도입하게 되었는지 모를 사드 문제도 복잡한데, 트럼프는 연일 위협적인 발언을 쏟아내고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또 미사일을 발사했고, 새 정부는 여러모로 골치아픈 상황을 마주할 듯 하다.

그렇다면 과연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모두 어떻게 될까? 필자는 이 글에서 전쟁 그 자체의 숭고함이나 어느쪽이 정의로운지를 논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런것은 어차피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전쟁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얼마나 정의롭게 상대방을 잘 죽였는지는 후대의 역사가 평가하는 일이고, 정작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이 글은 막상 전쟁이 벌어졌을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지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일단 전쟁이 나면, 남한은 반드시 이긴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성인 남성들은 군복무를 통해 군대를 경험하지만, 사실 그들 중 대다수는 군대와 전쟁의 본질에 대해 무지하다. 게다가 군필자들은 대부분 야전 훈련에서 '가라'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징집병들은 복무기간 중 상당부분을 사실상 작업으로 허비하고 전역한다. 비슷한 군비를 지출하고 있는 독일군이나 이탈리아군의 경우, 이미 상당부분 복무 환경이 효율화 되었기 때문에 같은 기간을 복무한 한국군보다 월등히 높은 숙련도를 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징병제와 모병제의 차이라고만 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물자들이 부족하며, 군필자들은 실제 상황 발생 시 과연 내가 가진 장비가 제대로 작동할지 걱정해 본 경험이 한두 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엉터리 탐지기가 달린 군함이나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은 이러한 불안을 더 가중시킨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일단 전면전이 발발하면 대량의 인명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초급 간부들과 징집된 병사들의 손실이 막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말인 즉슨, 당신의 동생이, 당신의 후배가, 당신의 친구가, 당신의 형/누나가 제일 먼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국군은 휴전선을 따라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는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한다. 첫째로, 한국군은 아직 군의 첨단화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두 번째로는 사실상 한국군에서 인력은 공짜이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병력 충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대의 전쟁에 있어 대부분의 국가들이 첨단화를 통해 자국의 병력 손실을 최소화 하는 쪽으로 가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방부에게는 병력 동원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휴전선 전면전은 이제 역사 속으로 흘러간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재현하게 될 수 있다.

동원령 선포 후, 젊은 예비역 남성들도 속속들이 휴전선 인근 부대로 배치 될 것이다. 전쟁이 1달 이내로 끝나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장기화 된다면 이들의 생사 또한 불분명해진다. 이들 또한 구식 참호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인원들은 페바(FEBA) 이하의 부대들이 북진할 때까지 전투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남한은 반드시 이긴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위에 열거한 단점들이 있다 한들, 한국군의 수준은 북한에 비해 압도적이고, 동맹군 미국도 존재한다. 한국군과 북한군의 군의 화력 규모를 보거나 장비의 수준을 비교해 보아도, 병참 체계와 군자금 수준을 보아도 한국군은 분명히 이길 수밖에 없다. 이곳은 남베트남도 70년대 캄보디아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명들이 희생될지는 알 수 없다. 한국군의 후진적인 의료 후송체계와 인명경시 풍조로 많은 희생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이 끝나도 한국이 북한을 점령한다는 보장이 없다.

남한이 전쟁에서 이긴 후, 한반도에는 비로소 평화가 찾아 올 것인가?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 둘 필요가 있다.

남한의 헌법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건, 북한은 일단 유엔에 가입한 160개국과 수교한 국가다. 외교력이나 국력이 남한에 비해 한참 낮고, 핵실험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위신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엄연하게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국가"를 한국이 무력으로 점령한다고 할 때, 과연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은, 국제사회는 이것을 묵인할 것인지 의문이다. 한 국가를 병합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도 통일을 하기 위해 남베트남 임시정부를 내세워서 합의 하에 흡수하는 방식으로 마무리지었다. 남한군이 북진한다고 해서 모두가 박수를 쳐 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설령 점령했다 하더라도 주변국의 간섭으로 후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역사적으로 너무나도 많았다. 북한을 함락시킨다 해도 국제 정치의 역학관계로 인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휴전선 이북 지역에서 돌아올 수도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김정은도, 북한 군부도 쓰러트리지 못하고 단순히 힘의 우위만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상처뿐인 영광을 얻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코 앞에 친미 국가가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용인할 것인가?

한국은 국제 정치에서, 동아시아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까? 물론 예전에 비해 국가의 위상도 높아졌고 경제력도 막강해 졌기 때문에 한국이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동아시아의 패권국가들이 국제 정세를 자기들 입맛대로 휘젓는 동안, 한국은 별 다른 제스쳐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정권 붕괴 후 한국이 단독으로 북한 지역에 통치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필자는 언론계에서 나도는 "북한 분할통치설"이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전쟁은 한국이 하고, 희생도 한국인이 한 뒤, 통치는 4개국이 나눠서 할 수도 있다.

과연 북한 주민들은 우호적일 것인가?

설령 북한을 남한이 점령했다 하더라도, 2천5백만에 달하는 북한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고, 정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전쟁보다 더 중요한 작업은 전쟁 이후다. 무력으로 한 지역을 점령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지역을 완전히 국민 국가의 일원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과 동화 과정을 필요로 한다.

2000년대부터 탈북자들이 남한 정착에 실패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물론 남한 사람도 살기 힘든 환경에서 북한 사람들이라고 잘 적응 하겠냐마는,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남한 사회의 차별과 냉대"를 큰 문제점으로 꼽는다. 사실 한국은 규모상으로는 훌륭한 경제 대국이지만 아직 평등에 대한 개념과 인권에 대한 개념의 확산이 지체되어 있는 형편이다. 사람을 출신과 성별로 차등을 두고, 그러한 대우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여전하다. 사회적 변화의 속도는 경제적 변화의 속도를 여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은 또 하나의 2등 국민으로 취급당할 위험이 있다. 한국은 이미 오랜기간 특정 지역을 차별한 사례가 있다. 심지어 전라도 차별 이전에 서북 차별이 있었다. 21세기 한국에서 서북 차별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더욱 심한 분열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허울뿐인 국가 안에서 소모적인 분쟁과 적대 행위가 끊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북한에는 오랫동안 "남조선 군정"에 대한 가설이 있다. 한국군이 60만 대군을 유지하는 이유는 북진통일 후 북한 지역에 군정을 실시하기 위함이라는 가설이다. 물론 이것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감군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유사시 북한지역 안정화에 필요한 병력"이므로 60만 대군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이 통일 된 이후, 마냥 좋은 일만 있으리라고 예상했건만, 독일인들에게 있어 현실은 달랐다. 특히 동독 주민들에게는 서독인들이 "점령군 행세"를 한다며 불만이 많았다. 설령 자신들이 사회주의 통일당 독재하에서 살아왔다 하더라도, 동독 사람들이 미개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동독이 과거의 세월까지 모두 삭제당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서독은 과거의 잔재는 도매금으로 "나쁜 것"으로 간주하여 전부 일소하기 시작했다. 비록 주체사상의 아래에서 살아왔고, 외부 정보와 차단된 국가에서 살아왔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세월이 송두리째 박살나는 것을 본 북한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마냥 좋아할까? 아니면 북한의 "좋았던 날들"과 일부 좋았던 제도들을 상기하며 남쪽에서 온 "서울 깍쟁이"들에게 적대감을 가질까? 이것을 단순히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의 우매함으로 볼 수 있을까? 그들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자세를 남한 정부는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갈등이 길어지고, 통합에 실패하게 되면 어디서든 극단주의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전쟁이라는 환경은 일반인들이 무기를 입수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북한군이 소지하고 있던 많은 숫자의 개인화기는 '망실' 될 것이다. 이 낡은 무기들이 북한군에 존재할 때는 북한군의 후진성을 상징하겠지만, 민간인들이 입수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심지어 이들은 10대 시절부터 군사훈련을 받아 왔으며 사실상 군사화된 사회에서 살아왔다. 이들 중 일부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괄시는 받지 않은" 시대를 그리워 하며 개마고원을 무대로 주체사상 유격대를 조직한다면, 한국은 오랫동안 골치아픈 상황을 겪어야 한다. 우리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생각보다 오랜 시간동안 유격전이 지속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생명을 희생한 젊은이들은 보상 받을 수 있을까?

한국군에는 이중배상 금지규정이 있다. 국가배상법에 따르면 군인, 군무원과 경찰은 직무 중 죽거나 다쳐도 국가에 손해배상을 할 수 없다. 이들은 오로지 법정 배상금만 받을 수 있다. 이 법은 황당하게도 보수 우익들이 칭송해 마지 않는 박정희 정권 시기에 생겼다. 앞서 이야기했듯,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엄청난 병력이 소모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법정 배상금만 받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거리에는 수많은 상이용사들이 넘쳐날 것이고, 이들은 국가로부터 충분한 배상을 받지 못한 상태로 계속 남을 것이다.

또한 한국군은 참전 용사들에 대해 배상을 할 만한 시스템도, 자금도 없다. 법률상으로는 작전시 부상을 입거나 희생당한 장병들에게 배상을 하도록 되어있지만, 만 단위의 희생자가 발생하면 한국 정부는 이들에게 전부 배상을 할 수 있을까? 1차대전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보너스 아미" 사건이 한국에서 재발할 수 있다. 당시 1차대전 참전용사들에게 제대로 미국 정부가 배상을 하지 않았고, 결국 불만이 누적되어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미국 정부는 이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는 대신 폭력 진압으로 답했다. 과연 한국 정부는 대규모 전쟁 후 배상금을 지급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결론적으로, 한국은 절대로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 또한 한국 정부는 지금 전쟁을 할 준비가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다. 또한 전쟁을 한다 해도 제살 깎아먹는 행동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렇게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고 수도권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대한민국이 어디까지 재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고,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국제정치다. 가장 성공적인 정치는 상대방을 회유하고 설득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피를 피로 씻는 행동은 언젠가는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더이상 자신의 주장이 타인과 다르다 해서 물리적 고통을 당하거나 생명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물리력을 이용한 정치를 복원하자고 하는 것은 자유와 평화를 기초로 다진 민주주의를 완전히 전복시키자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다.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닥쳐올 때, 종종 호전적인 언론인들이나 소수의 별스러운 정치적 관점을 가진 분들이 국민들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쟁이 나면 사람이 죽게 되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제일 먼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을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도망쳤다는 사실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새 정부는 대화와 타협으로 남북관계를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 모두 함께 군사주의적 모험을 일삼으려는 자들을 사회에서 일소하자. 그리고 새 정부는 평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지나치게 비대해진 인력 중심의 군 구조도 개편해야 한다. 인력을 무한정 공급받아 소모시키는 현재의 징병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더이상 사람들이 대량으로 소모되는 사회가 재림해서는 안된다.

* 이 글은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의 블로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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