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군형법 제92조의6은 위헌무효이다" 했던 말 또 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지나치게 절망하지는 말자. 군형법상 추행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3번의 판단을 내린 바 있었는데 2002년 결정에서는 2인, 2011년 결정에서는 3인의 반대의견이 있었고 2016년엔 4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에는 지난 5월19일 차기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임명된 김이수 재판관도 있었다. 이렇듯 군형법상 추행죄를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소수의견'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가만히 입을 닥치고 언제 올지 모르는 '나중'을 기다렸기 때문이 아니라 계속하여 군형법상 추행죄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군형법 추행죄가 폐지될 때까지, 나아가 성소수자 인권이 위협받지 않는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 설치고 말하고 비판할 것이다.

ⓒ뉴스1

삼백(현직 법조인/게이법조회)

군형법 제92조의6의 추행죄와 관련하여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게이법조회로부터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또 무슨 얘길 해야 하지'였다. 그러나 금세 생각을 바꾸어 글을 쓰겠다고 답장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2011년 즈음에 학부 여성주의 토론수업에서 이 주제를 놓고 어떤 분과 논쟁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의 논지는 "군기를 해칠 우려가 있다.", "나도 성추행을 당할까봐 무서웠다(물론 그는 군대에서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였는데 너무 코웃음을 쳐서 죄송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무려 헌법재판소'씩이나'에서 군형법상 추행죄가 합헌이라고 결정하는 것(헌법재판소 2016. 7. 28. 선고 2012헌바258 결정)에 기함을 했던 지난 여름이 떠올랐다. 또한 최근 군에서 동성애자 군인을 함정수사하고, 전역을 며칠 앞둔 동성애자 A대위를 입건하여 징역 2년을 구형하는 꼴을 목도했다. 짧은 순간 현재의 상황을 떠올리니까 '말해도 못 알아먹으니 또 말을 해야 되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들으시라고, 수많은 법조인과 수많은 인권운동가들이 했던 똑같은 말에 토씨만 조금 바꿔 한마디 더 보탠다.

군형법 제92조의6이 금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 법전을 봐도 모르겠는데

군형법 제92조의6을 살펴보면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며, 동법 제1조 제1항은 "이 법은 이 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대한민국 군인에게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제92조의6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조문인데 이를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이란 다름 아닌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의 확립'이라고 한다.

만일 이 조문이 군인과 군인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유형력의 행사를 통하여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 즉 강제추행(형법 제298조)과 동일한 규정이었다면 아마 군형법에 동일한 조문을 집어넣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로 "심판대상조항은 '폭행·협박에 의한 강제추행'을 그 적용범위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군형법 제92조의6에서 말하는 '그 밖의 추행'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규범 구조상 '항문성교'와 '그 밖의 추행'을 구분하고 있으므로 항문성교가 아닌 다른 모든 성적 접촉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하는가? 어디까지는 추행이고 어디까지는 아닌가에 대하여 법적으로 예측가능성이 없는 것, 즉 법전에 기술된 구성요건 자체만으로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를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라고 하고 이는 법학 개론서를 한두 페이지만 펼쳐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군형법 제92조의6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군기가 뭔데

군형법 제92조의6이 방지하고자 하는 행위가 위에서 언급했듯 '강제추행'이 아니라면, 즉 어떤 군인이 다른 군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강제로 침해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결국 이는 동성 군인 간의 자유로운 성행위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그 행위에 '추행'이라는 편견의 언어를 덧씌워서 말이다. 그렇다면 왜 자유로운 성행위를 굳이 처벌하겠다고 저 난리를 치는가? 우습게도 군형법 제92조의6의 존속을 옹호하는 측에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군기타령뿐이다. 고장 난 알람시계처럼 시끄럽기만 하고 알맹이가 없다.

다시금 군형법 제92조의6을 살펴보면, 이는 형벌규범, 즉 어떤 행위를 금지하고, 그 금지된 행위를 한 경우에 국가공권력으로 처벌하는 법규범이다. 따라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금지되는 행위가 국민의 기본권 행사의 일환이라면 헌법상 기본권의 제약에 관한 비례원칙을 준수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이 경우 형벌법규라는 점을 감안하여 그 심사척도는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사안에서는 '군기'라는 공익과 국민의 기본권, 즉 동성애자 군인의 성적자기결정권 행사라는 사익의 비교교량이 문제가 되고, 후자를 전자로 인해 제약하고자 할 때는 비례원칙에 따라 엄밀하게 논증해야 한다. 특히 '군기'와 같은 굉장히 추상적인 공익을 들어 형벌까지 가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국가 스스로 '항문성교' 또는 '그 밖의 추행'이 가져다줄 군기 문란에의 인과관계를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논증하지 않을 경우에는 군형법 제92조의6은 기본권에 대한 과잉적인 침해에 해당하여 위헌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계속 떠들고 계속 비판할 것이다

이러한 너무나 법리적으로 명백한 사안을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상황은 다소 절망적이다. 전 대통령을 탄핵씩이나 시켜버린 헌법재판소에서 법리를 이해 못 하실 리는 없고, 결국은 법리 외에 다른 고려사항이 개입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다른 고려사항이란 무엇인가? 혹시 종교? 성소수자 혐오?

물론 지나치게 절망하지는 말자. 군형법상 추행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3번의 판단을 내린 바 있었는데 2002년 결정에서는 2인, 2011년 결정에서는 3인의 반대의견이 있었고 2016년엔 4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에는 지난 5월19일 차기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임명된 김이수 재판관도 있었다.

이렇듯 군형법상 추행죄를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소수의견'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가만히 입을 닥치고 언제 올지 모르는 '나중'을 기다렸기 때문이 아니라 계속하여 군형법상 추행죄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군형법 추행죄가 폐지될 때까지, 나아가 성소수자 인권이 위협받지 않는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 설치고 말하고 비판할 것이다. 다시금 말한다. 군사법원은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위헌무효라고 선언해야 한다. A대위를 석방하라. 개인의 자유로운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형벌로 규율하지 말라.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군형법 #게이법조회 #사회 #동성애 #성소수자 #김이수 #헌법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