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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로비에 넘어가지 않고 당당했던 사람 3명

왼쪽부터 박창균, 주진형, 김성민.

삼성의 막강한 권력 앞에 모든 이가 무릎을 꿇지만은 않았다.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전 사장의 문자에는 삼성 관계자들이 정부 기관 관계자, 대학교수 등을 만났지만 설득되지 않은 정황도 드러난다.

그들은 학연이나 전 직장 인연 등으로 삼성 관계자들을 만났지만, 삼성의 논리가 빈약하다거나 옳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삼성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래는 장 전 사장의 문자를 살펴본 결과 로비에 넘어가지 않고 소신을 지킨 것으로 드러난 이들이다.

① 박창균 중앙대 교수

“신인석 교수 오후 2시 미팅 약속 김완표 전무(미래전략실 기획팀 담당임원)와 다녀오십시오.” (장충기 미래전략실 전 사장이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보냄)

삼성 미래전략실은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장 전 사장이 보낸 문자는 신인석 중앙대 교수(자본시장연구원장)를 삼성 관계자들이 만나 합병의 당위성을 설명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위원을 설득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 대상은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의 박창균 전문위원(중앙대 교수)이었다. 김종중 전 사장은 지난 4월 20일 진행된 공판에서 “신인석 원장이 박창균 교수와 친하다고 하니까 박 교수에게 전화를 좀 해달라고 한 것 같다”라고 진술했다.

삼성은 박창균 교수를 직접 만나 설명하기도 했다. 이날 공판에서 삼성물산 합병 주총을 앞두고 김종중 전 사장을 비롯해 삼성경제연구소 차문중 소장, 이영호 부사장 등과 함께 박 교수를 만나 합병 경위를 설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사장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합병 시너지 효과 등에 관해 설명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관련 이야기는 “안 했다”고 밝혔다.

박창균 교수는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 입장을 결정하는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서 중요한 멤버였다. 9명으로 구성된 전문위원회에서 근로자나 사용자의 추천을 받아 선임된 위원들의 입장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전문위원 한명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일한 적이 있어 이해 상충을 이유로 표결할 경우 배제하기로 결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8명 가운데 5명 이상(3분의 2) 찬성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아직 의중이 바깥에 드러나지 않은 박 교수(정부 추천 위원)의 의사가 중요했던 셈이다. 하지만 삼성은 물론 지인을 통한 로비도 박 교수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뜻을 묻지 않고, 자체적으로 투자위원회를 열어 합병에 찬성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났다.

②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전 사장

“장 사장님 주진형과 한참 통화했어. 지난번 반대했고, 이번에도 또 반대할 필요 있냐. 도움 안 된다고 했고. 주(진형)는 중요하고 애널(애널리스트)이 쓰는데 말릴 이유 없다고 했어. 쓸데없는 가정 가지고 불필요한 소란 만들지 말라고 강하게 이야기했는데도 그대로 쓸 가능성이 70%이다. 큰 도움이 안 돼 미안하다”(2015년 7월 6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전 삼성증권 사장)이 장충기 전 사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삼성은 물론 한화의 요청에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22개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합병에 대한 부정적인 리포트를 낸 곳이 주 전 사장의 한화투자증권이었다. 문자메시지는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수차례 주진형 사장에게 리포트를 합병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써 달라고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황영기 회장은 월드뱅크에서 일하던 주 전 사장을 2001년 스카우트하는 등의 인연이 있다. 그런 인연에도 주 전 사장은 황 회장의 청을 거절한 것이다.

더구나 삼성뿐만 아니라 한화에서도 리포트를 두고 압력이 있었다. 주 전 사장은 지난해 11월 <한겨레>와 인터뷰(바로가기)에서 한화그룹의 압력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합병 무산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냈더니, 금춘수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부회장)이 전화를 걸어와 ‘보고서 때문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장충기 사장에게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하는 게 옳다는 추가보고서를 냈더니, 며칠 뒤 김연배 (당시 한화생명) 부회장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지 모른다’고 압박했다.

결국 금춘수 실장한테서 물러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런 폭로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청문회에서 “국내 재벌의 운영은 조직폭력배들과 똑같다”,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증권사들이 입을 다무는 것을 보고 한국인으로서 창피했다” 등 ‘사이다 발언’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③김성민 한양대 교수

“오늘 점심때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과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이 김성민 위원장을 만나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원 박사 이야기 들어보니 김성민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홍과 원이 열심히 설득했는데 김은 삼성의 논리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하니 몇 차례 더 만나야 할 것 같다.”(2015년 7월 4일 이수형 전 미래전략실 기획팀장(부사장)이 장충기 전 사장에게 보낸 메시지)

김성민 교수는 2015년 7월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박창균 교수 등 9명으로 이뤄진 전문위원회를 이끌었고, 이듬해 4월 임기를 마쳤다. 임기 도중 에스케이(SK)와 에스케이씨앤씨(SKC&C)의 합병에 대해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열어 전문위원들과 국민연금은 반대하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김 교수도 박창균 교수처럼 삼성의 접촉 대상이었다. 삼성은 김 교수의 대학 동문인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과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를 통해 김 교수의 뜻을 확인했다. 문자메시지는 김 교수 역시 삼성물산 합병에 부정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성민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원 박사는 식사 자리에 배석만 했을 뿐 별다른 설득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부정적인 기류 속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에스케이의 경우와는 달리,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안건을 올리지 않고 직접 투자위원회를 열어 합병에 찬성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김 교수를 비롯해 전문위원들 모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강하게 항의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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