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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여론에 기름 부은 ‘이영렬 만찬

  • 강병진
  • 입력 2017.05.15 18:39
  • 수정 2017.05.15 18:40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의 만찬 회동이 15일 <한겨레> 보도로 알려지면서, 검찰 내부는 종일 술렁였다. 안 국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1천회 이상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만찬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조사자와 피조사자 관계였던 검찰 최고 수뇌부들이 서로 돈봉투까지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검찰 내부에서는 이들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내부 비판과 함께, 검찰개혁 여론이 한층 거세질 것을 예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바깥에서 검찰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지 검찰 내부에선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국민이 보기엔 서로 감싸고 보호하며 자기들 권력 지키는 데 급급한 집단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도 “안 국장이 금일봉을 건넸다는데, 밖에서 보기엔 사건을 무리 없이 잘 처리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수사 대상으로 거론됐던 사람이 수사 뒤 그런 의미로 돈을 건네면 사후수뢰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 지검장은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한 지난 11일 서울중앙지검 전 직원에게 문자를 보내 “전 직원은 공직자로서 언행에 신중을 기하고 품위에 어긋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무 기강을 엄정히 유지해달라”는 당부 문자를 보낸 바 있다. 한 평검사는 “지검장 자신은 (법무부 간부를 만나 금일봉을 주고받은) 매우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 후배 검사들에게는 조심하라는 문자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부적절한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검찰 내부에선 이 지검장이 사후에 낸 해명조차 국민의 눈높이와는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지검장은 이날 <한겨레> 보도와 관련해 “중앙 검사장은 (봉투를 받은) 법무부 과장의 ‘상급자’로서, 이 모임(만찬)에 부적절한 의도가 있을 이유가 없다”는 해명 자료를 냈다.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 각 국실의 후배 간부 검사들을 돌아가면서 만나고 있었고, 만찬 당일은 ‘법무부 검찰국’ 후배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해명 자체가 검찰이 장악한 법무부의 현실과, 상급기관을 인정하지 않는 검찰의 ‘부적절한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조직법 32조는 “검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검찰청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앙지검장이 법무부 과장의 ‘선배’일 수는 있어도 ‘상급자’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은 법무부 장관 이하 주요 요직을 검사들이 독차지하고 있어, 검찰에 대한 지휘·통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됐다. ‘법무부에 검사를 줄이고 행정직 공무원이 주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법무부 탈검찰화’ 공약이 얼마나 절실한지 보여준 셈이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공직기강과 윤리에 어긋나는지 즉각 조사해야 하며, 이 지검장과 안 국장 등에게 마땅히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하며, “고위직 검사가 법무부 파견 검사들을 관리하는 모습은 왜 법무부와 검찰이 한 몸처럼 검찰개혁에 저항해왔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일부 간부들의 인식도 검찰개혁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드러냈다. 검찰 핵심 요직을 맡은 한 중견 간부는 “큰 수사가 끝나고 술 마신 걸로 (언론에서) 그러면, 우리는 술을 먹지 말라는 거냐. 나도 (현 직책을) 떠날 때 (후배들에게) 20만~30만원씩 금일봉 주고 그런다”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선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이 주고받은 ‘현금 봉투’도 “검찰 내부 관행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이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지방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이번 사건의 경우 시점의 부적절함을 떠나 관행으로 보기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봉투에 든 돈은 이른바 ‘특수활동비 예산’에서 나오는 세금이다. 일선에서 고생하는 평검사들은 받아볼 수도 없을뿐더러, 법무부에서 중앙지검에 돈을 줬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려는 일부 엘리트 검사들의 도덕적 해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뒤숭숭한 검찰 분위기와 맞물려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김수남 검찰총장의 퇴임식도 무거운 분위기였다. 김 총장은 퇴임사에서 “지금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우리 검찰도 국민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그동안 잘못된 점, 부족한 점이 없었는지 스스로를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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