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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쁨'은 형법에서 보호되는 법익이 아니다

항문성교를 한 군인이 내심 '싫다'는 점만으로 그 군인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도 되는 것인가? 항문성교를 한 군인을 찾아내기 위하여 국가(군검찰, 군사법원)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해가면서 수사를 해도 되는 것인가? 더구나 지금 벌어지는 것처럼 그 군인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해도 되는 것인가? 국가가 나서서 누군가를 수사하고 형사 처벌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한데, 왜 이 경우가 그런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합의 하에 한 항문성교로 인하여 '침해되는 법익'은 없고, 단지 '기분 나쁨'은 형법에서 보호되는 법익이 아니다.

ⓒZerbor via Getty Images

바움쿠헨(현직법조인/게이법조회)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선 TV토론회에서 한 "동성애에 반대한다." 발언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파장이 컸다. 그래서인지 서울대 형법학자인 모 교수는 이 발언을 두고 '합헌 결정이 난 군형법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발언일 것이라고 굳이 선해(善解)를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문 후보는 이틀 뒤인 2017. 4. 27. 다음과 같은 해명을 하였다. "그 날 질문을 받은 것은 군대 내 동성애다. 그 부분은 찬성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 (군대에서) 동성에 대한 스토킹이 있을 수 있고 성희롱, 성추행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적법과 위법의 경계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군대 내 동성애 허용은 아직 이르다.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군대 내 동성애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워딩이 부적절하다는 점은 잠시 차치하더라도, 그게 왜 '(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한 정당화 논리가 될 수 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오늘은 차별금지나 평등이 아니라 조금 다른 주제를 잠시 꺼내려고 한다. 자유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다. 아무도 내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고 하는 생명의 자유, 내 몸을 건드릴 수 없다고 하는 신체의 자유, 내 재산을 가져갈 수 없다고 하는 재산의 자유, 내 사생활에 불쑥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생활의 자유 등등. 이 자유는 신성하다. 오죽하면 하늘에서 내려준 권리(天賦人權)라고 할까. 그 누구도, 심지어 국가도, 원칙적으로 이 자유를 앗아갈 수는 없다. 원칙적으로는.

예외가 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가져가거나(살인 등),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거나(상해, 폭행 등), 재산을 침범하거나(절도 등),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하거나(강간 등) 등등의 경우, 국가가 예외적으로 간섭을 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간섭을 해도 된다고 사회적으로 합의가 된 것이다. 그게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의 자유를 최대한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그렇다고 국가가 제멋대로 간섭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나설 수 있는 경우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형법), 국가가 내릴 수 있는 처분(형벌)도 모두 법률로 규정되어 있으며(죄형법정주의), 그 간섭 방식도 아주 시시콜콜할 정도로 모두 정해져 있다(형사소송법). 단지 '기분이 나쁘다고' '내심 반대한다고' 또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국가(경찰, 검찰)가 칼자루를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사람의 자유는 그렇게 가볍게 침범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최근에 그러지 않았는가: "비록 비도덕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그다지 크지 않거나 구체적 법익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없는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대 형법의 추세"라고. (헌법재판소 2015. 2. 26.자 2009헌바17결정, 간통죄 위헌 결정 중 발췌).

그러니 사람에 대한 '구속 수사'는 더더욱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유죄라고 판명되지도 않은 사람을 국가가 가둬놓고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 거니까. 그래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아주 엄격한 절차가 지켜져야 되고, 법에서 정한 구속 사유가 완벽히 충족되어야만 가능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누군가는 군인 간 항문성교가 싫을 수도 있고, 이에 '반대'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생각의 자유는 있으니까. (그 생각을 여과 없이 대외적으로 표현해도 괜찮은지는 또 전혀 다른 주제지만.)

그런데 항문성교를 한 군인이 내심 '싫다'는 점만으로 (1) 그 군인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도 되는 것인가? (2) 항문성교를 한 군인을 찾아내기 위하여 국가(군검찰, 군사법원)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해가면서 수사를 해도 되는 것인가? (3) 더구나 지금 벌어지는 것처럼 그 군인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해도 되는 것인가?

국가가 나서서 누군가를 수사하고 형사 처벌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한데, 왜 이 경우가 그런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합의 하에 한 항문성교로 인하여 '침해되는 법익'은 없고, 단지 '기분 나쁨'은 형법에서 보호되는 법익이 아니다. 도덕적인 차원에서는 흥미로운 논쟁거리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군인 간 자발적 항문성교는 범죄와 처벌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문재인의 "군대 내 동성애에 찬성하지 않는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형법 제92조의6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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