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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보다 심하다, 트럼프의 헌법적 위기

  • 김태성
  • 입력 2017.05.11 15:59
  • 수정 2017.05.11 16:02

도널드 트럼프가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해임한 다음 날 헨리 키신저와 함께 앉아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아이러니는 표현하기조차 힘들다. 코미는 트럼프 측을 수사하던 중이었고, 이번 해임으로 1973년 10월 20일 리처드 닉슨의 ‘토요일 밤의 대학살’ 이래 가장 심각한 헌법적 위기가 불거졌다.

당시 키신저는 국무장관이었고, 캄보디아 ‘비밀’ 폭격 등 해외에서의 여러 파괴적 모험들을 도우며 미국 헌법을 잔뜩 어겼다. 1973년 2월 8일부터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가 1973년 8월 15일에 자금 지원을 끊을 때까지, 닉슨과 키신저는 캄보디아에 23만 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 시골에는 공포가 번졌고 크메르 루즈의 확산에도 영향을 주었다.[그레그 그랜딘, ‘키신저의 그림자’ (2015) p.176]

‘토요일 밤의 대학살’이 있기 한 달 전인 1973년 9월 11일에 키신저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아래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시행해 오던 칠레 정부 전복을 감행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정권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독재 정권 중 하나였다.

닉슨은 국세청과 CIA, FBI를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했으며 공무원들에 대한 불법 도청을 허용했다. 그는 사립 탐정에게 미국 상원의원 미행을 의뢰했고, 미국 전역의 정적들의 사무실을 털게 했다.

닉슨의 범죄 의도를 담은 녹음 테이프 내용:

닉슨은 워싱턴의 브루킹스 연구소 금고 안에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서류가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 믿고, 백악관에서 회의를 열어 부하들이 사무실에 잠입해 서류를 꺼내 오라고 요구했다. “젠장, 들어가서 그 파일들을 가져 와. 금고를 터뜨리고 손에 넣으라고.” 다른 테이프에서는 닉슨은 워터게이트 잠입자들에게 돈을 주어 입을 막으라고 명령했다. 백악관 자문 존 W. 딘에게 “당신이 1백만 달러를 받고, 그걸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저쪽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봐. 내 생각엔 해볼 만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또 다른 테이프에서는 그는 국세청을 이용해 민주당 기부자들을 괴롭히자고 했다. 보좌관 H.R. ‘밥’ 할드먼에게 “밥, 유대인들의 이름을 가져와. 민주당에 돈을 많이 내는 유대인들. 좋아. 이 개새끼들을 수사해 볼 수 있을까?” [조셉 A. 팔레르모, ‘정치, 여론, 대중 문화’ (2004), pp.20~21]

닉슨이 가장 지독한 권력 남용과 노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키신저는 내내 공모자였다. 그러므로 행정부의 권력 남용(키신저의 경우는 무고한 사람들을 잔뜩 죽이기도 했다)에 있어, 트럼프가 상의하기 가장 좋은 사람은 아마 전범 헨리 키신저였을 것이다.

워터게이트 2.0

FBI 코미 국장이 트럼프 측과 외세의 관련 수사에 대한 추가 자금을 요청하자마자 트럼프가 격식도 차리지 않고 코미를 해임한 것은 이제까지 보인 권위주의적 권력 남용의 뚜렷한 패턴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트럼프는 쉬지 않고 트윗을 쓰고, 버릇없는 6살 아이처럼 짜증을 내며 사람들을 비난한다. 자신이 이끄는 정부의 분권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으며, 무슬림 입국 금지 등 자신이 서명한 헌법에 어긋나는 행정명령을 법원에서 기각할 때마다 사법부를 욕한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비난하는 자유 언론은 ‘가짜 뉴스’라며 공격한다. 또 전세계 여러 독재자들을 흠모한다고 말한 바 있다.

공화당이 먼저다

지극히 당파적인 공화당 상원 원내 대표 미치 맥코널(그의 아내는 교통부 장관이다)은 트럼프가 길거리에서 총을 꺼내 사람을 쏜다 해도 트럼프의 편을 들 것이다. 트럼프 측이 러시아 정부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자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부대변인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지만, 트럼프 측의 행동은 그와는 다르다.

우리는 트럼프가 미국의 제도와 정치적 규범, 전통에 대한 존중이 없는 거짓말쟁이이자 선동가, 위선자라는 걸 안다. 트럼프의 백악관은 거짓말과 프로파간다를 내뱉고 관심을 딴데로 돌리며 중상모략을 해서 헌법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민주당 상원 원내 대표를 툭하면 ‘울보 척’이라고 부르는 대통령은 야당과 협치하는 데는 털끝 만큼도 관심이 없다. 켈리앤의 헛소리와 허커비의 남부 시골 사람다운 매력으로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는 없다. 행정부가 법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경호 담당자 키스 실러를 보내 코미가 로스 앤젤레스에 있을 때 해임장을 FBI 본부에 전달했다. 워싱턴의 기준으로도 심한 짓이다.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에 대해 떠벌렸던 이야기가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듯, 그가 후보 시절 코미를 요란하게 칭찬했던 것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트럼프가 했던 짓은 단순하다. 자신이 연루되었을지도 모를 모든 심각한 수사에 급제동을 건 것이다.

맥락이 중요하다

현재의 헌법적 위기와 워터게이트의 가장 큰 차이는 정치적 맥락이다. 1970년대 초에 민주당은 하원과 상원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그 당시의 공화당원들 다수는 공공 서비스와 애국에 대한 헌신을 가지고 있었다.

상하원을 장악한 지금의 공화당원들은 너무나 비겁하고 부패해서, 이미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나라라도 팔 용의가 있다. 미치 맥코널은 워터게이트 이후 가장 심각한 헌법적 위기일지도 모를 이번 사건을 수사할 특별 위원회를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상원에서 잘라내겠다고 이미 분명히 말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같은 권위주의적 광인의 권력 남용조차 묵인한다.

앨라배마의 제프 세션스를 법무장관으로 앉히고 코미를 해임한 트럼프는 이제 자신의 꼭두각시들이 연방 경찰과 사법부를 통제하게 할 수 있다 (독일에서 게슈타포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코미가 3월 20일에 FBI는 트럼프 선본측이 러시아 정부와 관계가 있는지 수사하고 있다고 의회에 알리는 순간, 트럼프는 코미를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정말 아무 의혹도 없다면, 부패한 러시아 올리가르히들과 의심스러운 재정적 연관이 없다면, 트럼프는 왜 소득세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가? 마이클 플린의 부정이 밝혀졌는데도 왜 그의 편을 드는가? 왜 법무부 장관 대행을 해임하며 당파적이라 비난하는가? 코미는 왜 해임하는가?

1973년에 트위터가 있었다 해도, 닉슨의 트윗이 이토록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웠을까. 닉슨은 사기꾼이었지만 미친 파시스트적 어린애 같은 사기꾼은 아니었다.

늘 그랬듯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자신의 위엄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괴상한 욕설을 퍼붓고 있다. 그러니 어린애 같은 심술쟁이 대통령의 말로 마무리하겠다.

“민주당은 몇 달째 코미 국장에 대해 불평해왔다. 그가 해임되자 그들은 피해입은 척 한다. 위선자들!”

아래 슬라이드는 옆으로 밀면 된다.

 

*허프포스트US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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