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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첫날처럼 웃으며 돌아오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앞으로 5년간 정말 무거운 짐을 지게 된 문재인 대통령이 이웃 주민들의 환호 속에 자택을 떠나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과연 문 대통령은 5년 후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까. 광화문 시대를 열어 국민들과 소통하겠다 한 약속을 지켜낼 수 있을까. 나는 자기 신분이나 상황에 따라 태도를 완전히 달리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가난하다 돈이 생기는 경우, 한직에 있다 좋은 보직을 얻게 되는 경우, 평범한 사람이었다 유명인이 되는 경우 사람들은 한결같음을 유지하지 못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아침 자택을 떠나며 품었던 마음을 꿋꿋이 지키며 국민들의 목소리에 열심히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 손미나
  • 입력 2017.05.10 07:57
  • 수정 2017.05.10 09:54
ⓒ뉴스1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촛불의 힘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었다는 뿌듯함,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 정말로 새세상이 열릴까 하는 의구심, 이 모든 것이 뒤섞인 묘한 기분이다. 지금처럼 역사의 한 순간을 깊숙이 함께 걷고 있다는 걸 실감한 적이 있었던가. 이번처럼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와 마주 앉아 뜨겁게 정치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던가.

대한민국 역사의 새 챕터가 열린 것은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젯밤 광화문에서 외친 것처럼 '위대한 국민의 위대한 승리'이기에 자랑스럽게 여겨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축배를 들기보다 차분함을 유지하며 그 어느 때보다 명민하게 머리를 굴려야 할 때이다. 우리는 이제껏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많은 기대를 했지만 정권 말기가 되면 어김 없이 실망하곤 했다. 특히 지난 박근혜 정권은 단순히 대통령 직무 수행에 관한 실망감을 넘어 온 국민을 배신감과 분노, 자괴감에 떨게 했다.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청춘을 바쳐 이룩한 민주주의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과거로 되돌리는 중죄를 저질렀다. 비록 주말마다 추위 속에 촛불을 들며 개인적 삶의 기쁨은 사치인 듯 느껴야 했지만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가 혹독한 것임을 배울 수 있던 건 큰 소득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으로도 오천만의 인생을 갉아먹은 사실은 되돌이킬 수 없기에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의 수장이 고작 5년의 임기만 끝나면 온갖 비리와 범죄에 연루되어 죄수복을 입고 구치소로 끌려 들어가는 장면을 트라우마 없이 지켜볼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 탄핵, 대통령 선거 등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뉴스를 도배하다시피 한 지난 6개월 동안 문득문득 떠오르던 추억 한 조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추억이 담긴 반가운 사진 한 장이 거짓말처럼 내 손에 들어왔다. 2003년, 한-칠레FTA 체결을 위해 방한한 라고스 칠레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할 때 현장 연출을 맡은 PD선배가 찍은 것인데 우연히 그 사진을 발견했다며 보내주신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 시대를 맞은 지금, 겉옷만 갈아입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개혁과 소통, 통합의 새역사를 써주시길 바라며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겨있다. 대학시절 열심히 공부한 스페인어를 국가 원수와의 단독 인터뷰에 써먹을 수 있었던 건 개인적으로 매우 가슴 뛰는 경험이었음을 고백한다. 또, 그런 기회를 얻는 아나운서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일생 기억에 남을 사건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 한 장의 사진 뒤에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우선 방송 현장의 분위기를 조금 설명해야겠다. 그날 난 무척 흥분되고 긴장한 상태로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의외로 수더분하고 인자한 라고스 대통령의 태도에 큰 감동을 받았다. 공직에 몸담는 경우 하나같이 권위적인 우리와는 정말 천지차이였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인터뷰를 마칠 무렵이 되자 대통령과 꽤 친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도 그랬는지 개인 명함을 주시며 칠레에 오면 연락하라고 당부까지 하셨다. 수행비서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저분의 말씀은 진심이니 혹시 칠레 오게 되면 꼭 연락하세요!' 그때만 해도 내가 언제 남미를 가겠나 싶었는데 그로부터 1년 후 스페인 유학을 갔고 친구들과 칠레를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속는 셈 치고 연락을 시도했고 실제로 대통령은 나를 만나주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칠레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으며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라고스 대통령이 민간인을 만나는 건 너무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인 걸. 그분은 주말마다 대통령 궁 앞에 나와서 국민들과 같이 대화하고 아이들과 놀아주셔. 가끔은 대통령인지 친척 할아버지인지 헷갈려. 그래서 우리 칠레 사람들이 대통령을 정말 좋아한다니까!"

지난해부터 온 국민을 좌절시키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라고스 대통령 생각이 많이 났다. 소통은커녕 자물쇠처럼 입을 꾹 닫아버린 대통령과 정부, 그들에게 라고스 대통령을 조금만 본받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앞으로 5년간 정말 무거운 짐을 지게 된 문재인 대통령이 이웃 주민들의 환호 속에 자택을 떠나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과연 문 대통령은 5년 후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까. 광화문 시대를 열어 국민들과 소통하겠다 한 약속을 지켜낼 수 있을까. 나는 자기 신분이나 상황에 따라 태도를 완전히 달리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가난하다 돈이 생기는 경우, 한직에 있다 좋은 보직을 얻게 되는 경우, 평범한 사람이었다 유명인이 되는 경우 사람들은 한결같음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 간절함으로 힘을 실어준 이들,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믿어준 마음을 저버리는 자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맡게 되는 것이 순리다.

소통의 첫 걸음은 열심히 듣는 것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아침 자택을 떠나며 품었던 마음을 꿋꿋이 지키며 국민들의 목소리에 열심히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촛불을 들었든 태극기를 들었든 상관없이 좋은 나라를 위한 염원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오천만 국민 모두를 끌어안고 충실한 나라의 일꾼으로 사명을 다해주길, 그리하여 5년의 임기가 끝났을 때 죄인으로 심판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박수 받으며 금의환향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관저가 청와대가 되든 광화문 어디가 되든 큰 상관 없겠으나, 라고스 전 칠레 대통령처럼 국민과의 사이에 담을 쌓는 대신 소통의 창을 활짝 열어두는 5년의 시간을 약속하고 반드시 지켜주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물론 우리 국민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이 있다. 선거는 막을 내렸고 패배한 후보들도 모두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전에 없이 식탁 위를 오가던 고성과 불신의 목소리들, 이념과 세대간의 갈등에서 벗어나 온 국민이 새로운 리더에게 힘을 실어줘야만 한다. 소통과 화합은 양방의 노력으로만 가능한 것인데 지금 우리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가 가슴 뛰는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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