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에어컨에서 감동의 바람이 나온다

며칠 전에는 우리집에 최신형 에어컨이 들어왔다. 에어컨은 전원이 켜지는 순간부터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전원이 켜졌습니다. 냉방운전을 시작합니다. 제습을 시작합니다. 희망온도를 24도로 낮춥니다." 내게 필요한 정보들을 주기 위해 새로운 기기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기술의 발달 그 안에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뭔가 큰 울컥함이 느껴졌다. 기술을 계발하고 상품을 생산해내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작은 관심이 동반된 디자인은 누군가의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감동이 될 수 있습니다."

  • 안승준
  • 입력 2017.05.12 11:42
  • 수정 2017.05.12 11:43
ⓒsaravutpoo via Getty Images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는 새로운 기기들의 등장과 그와 함께 발전하고 있는 직관적 조작방식들은 사람들의 삶을 편리함이라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리모콘이 등장하고, 마우스 조작이 가능한 프로그램과 OS가 생겨나고, 터치조작까지 가능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물리적 이동이나 특별한 사전지식에 대한 부담을 상당부분 덜어내게 되었다.

전화걸기부터 인터넷 서핑까지 온갖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스마트폰을 갓난아이나 머리 희끗하신 어르신들까지 특별한 어려움 없이 조작하고 있는 모습들은 변화가 가져온 편리함의 대표적 증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대다수가 반기고 환영하는 기술의 진보가 진행되는 단계마다 시각장애가 있는 나의 삶은 편리해지기보다는 불편해지거나 혹은 불가능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듯하다.

아날로그 녹음기에 의존해서 공부를 하던 어릴적 디지털 카세트의 등장은 시시때때로 앞뒤를 돌려가며 반복학습을 해야 했던 나에겐 그다지 매력적인 등장이 아니었다.

버튼 몇 개만으로 속도까지 조절되는 단순한 녹음기에 익숙했던 나는 구형의 녹음기를 구하기 위해 오히려 몇 값절의 발품을 팔아야만 했었다.

윈도우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DOS만 겨우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의 특성 때문에 한동안 다른이들과의 소통의 부재까지 겪어내야 했다.

친구들이나 동생들이 당시 유행하던 게시판과 채팅 사이트를 이야기할 때 DOS 명령어에 통달한 나의 지식은 별 쓸모없는 소통불가의 외계어일 뿐이었다.

PC가 대중화 되고 문자메시지라는 즉각적이고 부담 없는 원거리 대화채널이 개통되었을 때 나의 친구들은 연애활동의 필수불가결한 도구로 그것을 한껏 활용하기 시작했다.

전화는 뭔가 부담스럽거나 촌스럽다고 느끼던 그 때 그 녀석들의 휴대폰은 수많은 달달메시지의 결과로 버튼이 가장 먼저 고장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내 전화기만은 독야청청 싱싱한 버튼상태를 자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판을 외우는 것이야 나만의 몫이 아니었겠지만 문자메뉴에 진입하는 버튼도 보내는 내용도 받는 내용도 읽어주지 않는 소리 없는 기능들은 내게 지속적인 사용욕구를 보내주지는 못했다.

한두 번이야 주변에 읽어달라는 부탁이 가능하겠지만 손발 오그라드는 스무살 연애 메시지를 하루종일 읽어준다는 것은 부탁하는 입장에서도 반대의 입장에서도 현실적이지는 않았다.

케이블 TV가 보급되고 복잡해진 리모콘도 대부분에게는 다양한 매체접근성과 채널선택의 권리보장으로 기억되겠지만 내겐 또 다른 정보소외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밤 깊은 새벽시간 개최되었던 언젠가의 월드컵 축구 경기 날! 나는 굳은 애국심으로 감겨가는 눈을 참아가며 중계 시작시간을 기다렸다.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다 경기가 시작되던 그 때 벌떡 일어나던 충격으로 리모콘은 바닥에 떨어지고 마침 내 발에 리모콘의 버튼들 몇 개가 눌러졌다.

이런저런 복잡한 메뉴와 모드의 전환이 이루어진 내 방 TV의 상태는 전원을 포함한 모든 버튼의 조작으로도 축구가 끝나는 그 시간까지 나 혼자는 원하는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없었다.

그 밖에도 한 쪽 방향으로 끝없이 돌아가는 보일러 버튼은 나의 방을 찜질방으로 만들기도 하고 화면 읽어주지 않는 밥솥의 예약시간은 깜깜한 새벽 2시를 나의 출근시간으로 착각시키기도 했다.

새로운 기기의 등장과 구입은 언제나 그런 이유로 나에겐 불안함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버튼과 메뉴의 반응을 무작정 외워야 하고 조작 실수에 대비한 다양한 경우의 수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도저히 조작이 불가능해서 단순한 몇 가지 기능만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우리집에 최신형 에어컨이 들어왔다.

다른 이들이라면 짧지 않은 설치시간과 깔끔한 디자인 그리고 최신의 기능들에 온갖 관심을 쏟았겠지만 나는 또 다른 걱정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신중에 신중을 더한 제품이었지만 처음 리모콘을 손에 들고 기기를 조작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 걱정의 상태가 전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에어컨은 전원이 켜지는 순간부터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전원이 켜졌습니다. 냉방운전을 시작합니다. 제습을 시작합니다. 희망온도를 24도로 낮춥니다."

누르는 버튼마다 조작의 상황마다 내게 필요한 정보들을 주기 위해 새로운 기기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100% 세부기능을 모두 읽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걱정을 설렘으로 바꿔주기엔 너무도 충분한 감동이었다.

부족한 부분은 와이파이와 연결된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에서 조작할 수 있는 부가의 기능까지 발견하였다.

기술의 발달 그 안에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뭔가 큰 울컥함이 느껴졌다.

아주 오래전 휴대전화의 문자와 메뉴를 처음 읽어주는 전화기가 나왔을 때 난 그때의 메시지를 몇 년 동안이나 장기보관해 놓았었다.

처음으로 스스로 받아보고 읽어낸 소통과 문자에 대한 감정은 내게 쉽게 잊고 싶은 순간이 아니었다.

며칠 전 설치한 에어컨과의 대화도 내 삶에 있어서 작지 않은 사건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새로운 친구는 나에게 단순한 시원함이 아닌 깊은 상쾌함을 한동안 선물해 줄 듯하다.

기술을 계발하고 상품을 생산해내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작은 관심이 동반된 디자인은 누군가의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감동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빌어서 삼성전자의 이름모를 연구원 혹은 그 팀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기술 #에어컨 #안승준 #테크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