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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구속된 어느 군인의 다음 차례

A대위의 구속은 미네르바 사건을 연상시킨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하여 크게 화제가 되자 검찰은 그동안 거의 사용되지 않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을 찾아내어 미네르바를 구속기소했다. 내용면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으로 볼 수도 있지만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법을 악용했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A대위 사건에서의 특정한 목적을 뭘까? 육군은 수사관들을 동원하여 군대 내 동성애자들을 색출하려는 시도를 했고, 이에 대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니까 상관없다", "군인 한 명 구속된 것 가지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 글을 찬찬히 읽어보길 바란다.

ⓒ김민수

글 | 인로(현직법조인/게이법조회)

의뢰인의 질문

병원에 아픈 사람이 많듯 변호사 사무실은 힘든 사람들이 넘친다.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잃었다는 중년의 의뢰인은 상담실에서 한참이나 울분을 토했다. 날린 돈도 돈이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이 더 원통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사기죄로 고소하는 방법 및 절차에 대해 안내하자 의뢰인은 물었다.

"변호사님, 고소하면 바로 구속되는 겁니까?"

의뢰인의 분노를 생각하면 이렇게 말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나쁜 놈은 당장 구속시켜서 쓴맛을 보게 해야 합니다. 제가 바로 구속시켜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줄 수는 없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구속은 처벌이 아닙니다. 추가적인 피해나 범죄 은폐를 막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입니다. 과거에는 피의자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속제도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런 일이 많지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격앙된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은 의뢰인은 완전히 납득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설명은 형사소송법 교과서 어디에나 나오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또한 구속영장실질심사제도 도입 이후 검찰의 구속영장청구 건수와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율이 모두 감소했으니, 구속영장이 남용되는 경향이 약해진 건 실무적으로도 맞는 이야기였다.

구속은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렇게 믿었다. A대위가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기 전까지는.

구속의 실체적 의미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한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이 영장을 기각되자 약 한 달 뒤에 다시 영장을 청구했다. 약 7시간 30분이라는 긴 영장실질심사 과정을 거친 뒤에 결국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되었다. 역대 최장 영장실질심사라는 이야기가 많았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8시간 40분가량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면서 기록은 곧 깨졌다. 이들이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구속영장 발부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까닭은 자명하다. 구속은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비단 전직 대통령이나 재벌그룹 총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경찰차만 봐도 괜히 위축되는 사람들이 있다. 꼭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다. 경찰이라는 공권력이 주는 위압감 때문이다.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검찰 수사관이라는 사람이 내가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말하며 출석 운운하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것이 보통 사람의 상식적인 반응이다.

경찰차를 보거나 검찰 사칭 전화만 받아도 이유 없이 기가 죽는데, 구속은 오죽하랴. 평범한 시민에게 구속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특정한 장소에 갇히게 되면 마음대로 움직이고 이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가족, 연인, 친구 등의 소중한 사람들과 강제로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것도 큰 고통이고, 범죄자로 간주되어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하는 일도 고역이다.

그래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온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 불쌍한 척 해서 구속영장 발부를 막아보려고 연기를 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개는 실제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평소에 강인한 모습을 보이던 사람도 법정 앞에서는 바들바들 떨게 마련이다. 아들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치 아들의 부음이라도 들은 것처럼 슬피 울던 한 노파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구속이란 그런 것이다. 추가적인 범행을 막고 범죄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이나, 결코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이 법률에 의한 구속만 가능하다고 천명(제12조)하고 있는 이유, 형사소송법이 불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제198조), 영장실질심사를 거치도록(제201조의2) 한 이유도 무분별한 구속을 막기 위해서이다.

A대위는 왜?

열심히 군복무를 하던 A대위가 갑자기 구속되었다.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구속이 되었을까?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란다.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서 관계를 가진 것이다. 혹시 상대방이 미성년자였을까? 그것도 아니다. 상대는 성인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상대방이 남자군인이었기 때문이다.

동성애라는 말만 들어도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A대위의 구속이 잘된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꼴 보기 싫었던 사람에겐 군사법원의 철퇴가 반가운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거부감을 준다고 사람을 가둘 수는 없다. 명색이 법치국가라면 법을 따라야 한다. "동성애의 배후에는 무서운 사탄이 숨어 있다"는 식의 막돼먹은 언행을 일삼는 사람을 가만히 둘 수밖에 없는 건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행동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인 남성 군인들끼리 성관계를 가지면 처벌한다는 법이 있을까? 놀랍게도 그렇다. 군형법 제92조의6이 바로 그 법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강제적인 관계를 처벌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아서 자발적으로 관계를 가져도 2년 이하의 징역이다. 군대 내에서 관계를 가진 게 아니라 휴가 때 사회에서 관계를 가져도 마찬가지이다.

실정법이 있으면 끝인가?

군형법 제92조의6는 한마디로 희한한 법이다. 하지만 실정법이다. 결론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헌법재판소가 2016년에 해당 법조문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언젠가 법이 개정될 것이라 믿지만 그전까지는 현행 실정법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정법이 존재하고 그 법을 위반했으니 A대위의 구속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실정법이 존재하더라도 그 법에 대한 적용 및 운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다른 문제다.

형법 제126조에는 피의사실공표죄라는 게 있다. 검찰이나 경찰은 피의자의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항을 재판 전에 공개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하지만 주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수사기관은 언론 브리핑이라는 형식으로 피의사실에 대해 이야기해도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법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 6월까지 피의사실공표죄로 고소ㆍ고발된 사건은 총 198건이지만 기소된 건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정도면 사문화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이다.

사형제도도 비슷한 맥락이다. 형법에는 사형이 형벌의 하나로 명시되어 있고 흉악범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실제로 집행된 것은 현재 기준으로 1997년 12월 30일이 마지막이다.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다.

피의사실공표죄로 적극 처벌하자거나 사형을 집행하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알권리(피의사실공표) 혹은 생명권 논란(사형제)을 고려할 때, 두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용하지 않는 것은 일면 타당성을 가진다. 법조문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법에 따른 적극적인 적용 및 운용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그 법이 지방법원에서 스스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할 정도로 타당성에 의문이 있다면 최대한 소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A대위의 구속은 미네르바 사건을 연상시킨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하여 크게 화제가 되자 검찰은 그동안 거의 사용되지 않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을 찾아내어 미네르바를 구속기소했다. 내용면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으로 볼 수도 있지만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법을 악용했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A대위 사건에서의 특정한 목적을 뭘까? 육군은 수사관들을 동원하여 군대 내 동성애자들을 색출하려는 시도를 했고, 이에 대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동성애자를 범법자로 몰아 동성애자 군인을 탄압하고 나아가서는 동성애 자체를 죄악시하여 전체 동성애자의 인권을 침해하려는 목적이 A대위 사건의 기저에 있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A대위의 다음 차례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니까 상관없다", "군인 한 명 구속된 것 가지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 글을 찬찬히 읽어보길 바란다.

"나치는 먼저 공산당을 숙청했다. 난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그 다음엔 유태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조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카톨릭교도들을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였으므로 침묵했다./그리고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나를 위해 나설 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러, "그들이 왔다"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마르틴 니묄러의 글은 약자들의 고통에 침묵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비극을 경고한다. 어조는 담담하지만 분위기는 섬뜩하다.

권력은 가장 약한 부분부터 공격하기 마련이다. 동성애자 군인의 구속을 남의 일로만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다. 자발적인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구속된 군인 다음 차례가 내가 아닐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건 협박이 아니라 현실이다.

"나도 잡아가라" 부산 수갑문화제 (화보) by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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